애인을 사랑하지만 성욕도 없고 성관계도 싫은데 저는 무성애자인가요?
애인이 있고 그 애인을 사랑하지만 성욕이나 성관계에 대한 욕구는 들지 않는 상황이군요. 자신을 알아가는 데는 여러 길이 열려 있지만, 우선 그러한 상태가 일시적인지 혹은 장기적으로 잘 변하지 않는 기질로 여겨지는지 차분히 돌아본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가령 본래 성욕 자체가 없어 왔고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 같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을 때 어떤 분들은 스스로를 무성애자로 정체화하기도 합니다. 혹은 본래 그러지는 않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가 최근 성적인 자극이 느껴지지 않고 성관계도 즐겁지 않은 경우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이라면 변화가 생긴 계기를 살펴보거나 연인과의 관계를 여러모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라 해서 삶과 사랑의 형태가 모두 동일하지 않듯 무성애자도 다양한 삶의 모습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성욕을 전혀 혹은 거의 느끼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성욕을 이따금 느끼지만 그것이 타인을 향하지 않거나 실제 성관계에 대한 욕망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성욕과 함께 연애 감정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에게 이끌리고 교제도 하지만 성욕은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도 존재합니다. 또한 성욕의 여부나 정도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성관계를 맺는 무성애자도 있습니다. 즉 무성애자가 느끼는 끌림과 욕망의 정도나 그에 따른 행위 방식은 저마다 다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정체성이란 어떤 정답처럼 미리 제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기질과 행위를 종합해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여러 경향 중 본인은 어떤 쪽에 가까운지 살펴보면 어떨까요. 그 경향성이 자신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여겨진다면 스스로를 무성애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되거나 반드시 무성애자다 아니다 구분하고 싶지 않다면 그에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고민에 대해 연인과 충분한 대화를 나눠보기를 권합니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서 꼭 성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연인 간에 성욕을 느끼지 않고 성관계를 갖지 않는 일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쪽에서 성욕을 느끼지 않고 성관계를 싫어하는 게 만약 관계에 위기나 갈등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면, 이를 단순히 성욕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두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고 조정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자신을 탐색하고 받아들이는 데 받아들이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저마다 다를 수 있기에 조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좋습니다. 본인을 무성애자라 이름 붙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사랑의 형태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