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말고는 이반 친구가 없는데 이래도 괜찮을까요?
이반 친구가 꼭 있어야만 한다거나 없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선택 사항으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반 친구가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이반들이 있는 한편 특별히 이반 친구를 따로 만들지 않고도 무리 없이 살아가는 이반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사자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에 따라 이반 친구들과 얼마나 어떻게 어울릴지에 대해 느끼는 필요성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만일 생활 공간과 소속 공동체에서 자신의 성정체성과 교제 관계를 인정받고 지지 받아 왔다면 나를 이해해 줄 이반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인과의 관계가 여러 지인들에게 알려져 있어 교제 관계에서 발생할 법한 고민거리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도움 받아 왔다면 고립감도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왔겠지요. 이에 비해 둘 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미처 커밍아웃 하지 못한 데다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커플이라면 두 사람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지지 받을 이반 친구들의 존재가 절실할 것입니다. 애인은 나 말고도 이반 친구가 꽤 있는데 나는 아는 이반이라고는 애인 뿐이라면 나 또한 나를 지켜봐 줄 이반 친구들을 갖고 싶어질 테고 말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이반 친구가 없는데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은 어쩌면 이반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서 자라고 있다 보니 생겨나지 않았을까요? 이반이라면 누구나 이반 친구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반 친구는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 있는 게 훨씬 더 좋다는 말씀만은 드리고자 합니다. 이반으로서 세상을 헤쳐가는 데는 이른바 일반들이 가진 것과는 다른 감각과 사고가 필요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일반들은 겪지 않아 모를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반의 존재와 이반들의 관계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이반으로 살아가며 잘 버텨내기 위해서는 고유한 생존의 지혜를 벼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삶의 지혜란 이반들이 서로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격려할 때 더 잘 배우기 마련이고요.
나 같은 사람이 나처럼 어딘가에서 살고 있으려니 하고 대충 짐작만 하는 것과 실제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직접 교류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일입니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차츰차츰 나와 보세요. 찬찬히 인간 관계를 늘려가는 겁니다. 새로운 발견을 거듭하고 의지가 되는 기분을 느끼면서 이반으로서의 자긍심도 더 튼튼히 다져가게 될 거예요. 애인과의 교제도 두 사람이 서로만 바라보고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충만해질 테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