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료 정보
자료명: <더러운 날>
자료 형태: 영상, 비디오.
촬영일시: 1997년 10월(추정)
촬영장소: 끼리끼리사무소 근처/라브리스/고마 등.
러닝타임: 약 30분
소장: 한국레즈비언상담소
2. 리뷰: 사회의 폭력적 시선 사이에서 부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짧은 단상. <더러운 날>
(이 리뷰는 바다님, 한비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더러운 날>. 제목부터 강렬한 이 영상의 제목을 처음 알게 된 건 <끼리끼리 송년회(레스보스)> 영상에서였다. ‘레즈가 만든 레즈 영상물’이란 설명이 적혀있었던 이 영상은 유독 나의 흥미를 끌었다. 감사하게도 영상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썼던 바다님과 영상편집 및 촬영을 맡았던 한비님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두 분을 만나 이 영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그리고 영상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끼리끼리 초기에는 다수의 레즈비언들이 커뮤니티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당시에는 말 그대로 ‘레즈비언들이 모이는 것’이 가장 큰 운동이었다. 90년대 중후반, 끼리끼리는 레스보스에서 함께 모이거나 MT를 가는 등의 활동을 통해 이 서울이란 도시에서 레즈비언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갔고, 운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나갔다. 이 때 많은 후원회원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후원을 했던 ‘한선배님’이 끼리끼리 3주년을 기념하며 캠코더를 선물하셨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영상물들이 이 캠코더로 찍혔다고 하니, 한선배님의 후원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캠코더도 생겼겠다, 평소 영상에 관심이 많았던 영탄님이 바다님께 끼리끼리 3주년 기념 행사에 틀 영화를 찍어보자고 제의했고, 그 날로 촬영과 출연을 함께 할 회원들을 섭외하여 <더러운 날>이 나오게 되었다. <더러운 날>은 끼리끼리 사무소와 그 근처(영상을 보면 신촌의 옛 모습들을 중간중간 엿볼 수 있다), 라브리스, 고마 등의 장소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그 해 10월에 라브리스가 오픈을 해서 장소를 딱히 빌리지 않아도 됐었다고 한다.
<더러운 날>에는 한국에서 부치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다. 바다님은 이 영상의 내용을 구상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얘길 써보자. 그 전엔 불편한 걸 모르고 살았는데 (끼리끼리에 와보니) 그 동안 억울한 게 많았더라. 그런 얘기들을 넣어보자-해서 당시에 이슈화됐던 직장 상사와 직원간의 성희롱, 성폭력 문제도 넣어보고, 길거리에서 여자가 담배피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또..내가 나답게 입고 가면 왠지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았던 그런 것도 넣어보자.”
당시 활동가들이 삶에서 느끼고 있었던 직간접적인 폭력은 이 영상에서 자동차의 날카로운 크랙션 소리, 담배피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린치 등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옷’으로 상징되는 부치의 고단한(?) 삶의 잔상이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지만 진지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치와 여성, 이 두 정체성과 연관된 폭력적 시선은 비단 그 당시에만 유효한 프레임은 아닐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언제나 마주칠 수 있는 시선들. 힐난과 호기심이 뒤섞인 시선 속에서 영상 속 주인공은 때론 그 무게 앞에 내가 아닌 척 해보기도 하고, 그 무게에 눌려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자신을 향한 폭력을 묵과하지 않고, 소리침으로써 저항을 시작한다. 영상에 깃들어있는 건강한 고민과 긍정적인 표현은 영상을 다 본 후에도 마음 한 켠에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선의 폭력에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을 모든 부치와 레즈비언, 그리고 여성들에게 이 영상이 단비가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