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웩, 레즈 냄새!"라는 내 목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려퍼지면 내 친구들은 서로 낄낄 거리며 그 애를 바라본다. 그 애는 고개를 숙이고 못 들은 척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지나친다. 전교생이 알고 있다. 그 애가 레즈비언이란 걸. 그 애는 머리가 짧다. 여자인데도 교복 바지를 입었고, 여자인데도 여자 친구가 있다. 그 애의 특유의 냄새. 나는 그걸 레즈 냄새라고 부른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와 같은 반이 된 그 애는, 짧은 머리 탓인지 입학하자마자 레즈비언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고 딱 봐도 레즈비언인 머리 짧은 선배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몇 번 보인 뒤엔 그 애가 레즈비언이란 건 기정사실화 되었다. 입학 당시 소위 '논다'고 표현하는 무리중 하나인 나는 어렵지 않게 그 애를 괴롭혔고 다른 아이들로부터 그 애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그 애는 3년 내내 나와 같은 반이었고 그 애는 이름으로 불리는 날보다 '이레즈'라고 불리는 날이 더 많았다.
이예진. 왜 유독 걔가 그렇게 못 견디게 싫었을까 자문자답할 때면 나는 항상 그 애의 냄새를 원인으로 돌렸는데, 다른 애들에겐 없는 묘한 냄새가 그 애에겐 있었다.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 그 애 특유의 냄새. 그 냄새를 빌미삼아 그 애가 지나갈 때 "레즈냄새"라고 빈정거리던 것이 어느새 내 친구들에게도 퍼져서 정말 그 애에게 무슨 냄새라도 나는 양 나와 내 친구들은 철없이 그 애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2002년, 월드컵에 남녀노소 모두 미쳐 있던 그 때에 응원을 하기 위해 찾은 시청에서 그 애를 우연히 보게 됐고 학교에서의 내 기억과 너무 다른 그 애의 유쾌한 웃음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그 애의 시야 밖으로 숨게 되던 순간부터가 어쩌면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호모포비아인 레즈비언의 성장기임과 동시에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개념에 있어서 남에겐 깐깐하고 자신에겐 너무나 관대한 나의 연애 담이자, 하늘이 내린 축복받은 게이다를 십분 발휘하는 무용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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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발총 같은 내 질문에 이예진은 눈동자만 굴린다. 이게 괘씸하고 이게 싫고 이게 짜증나서 얘를 가만 둘 수가 없어. 무슨 인연인지 같은 고등학교에 온 것도 모자라서 고등학교에서도 3년 내내 같은 반인건 아무튼 얘와 인연은 인연인가보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껄렁껄렁하게 다니며 남 지적하기 좋아하던 나와 내 친구들도 결국엔 모의고사 성적에 울고 웃게 되었고 중학교 때 소위 놀았다는 타이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조금은 부끄럽기도 한 일이란걸 깨닫게 된 건 입학 후 꽤 일찍이었다. 유일하게 이예진과 나의 관계만 중학교 때와 다름이 없었다. 나는 그 애가 지나가면 레즈 냄새가 난다며 짜증을 냈고, 그 애는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못 들은 척 내 옆을 지나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레즈는 어떻게 섹스해? 너 여자랑 해봤어? 너네 엄만 너 레즈인거 알아? 너 쭉 레즈로 살거야?"
무례한 많은 질문에 그 애는 아무 대꾸도 없이 눈동자만 굴린다. 이 모습이 날 너무 화나게 하는데 묘한 긴장감이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 넌 왜 화를 안내? 속에선 천불이 난다. 대답 좀 해. 나 역시 눈동자만 굴리며 그 애 앞에 서있다.
"김유라, 넌 이게 재밌어?"라는 이예진의 말에 뒷목이 울린다. 한 번도 이 애는 나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다. 나는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곤 대꾸 없이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열아홉 살. 혼란스러운 5월. 나는 이예진을 향한 나의 관심을 그 애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에서 오는 경멸과 분노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언제부터인지, 관심 받고 싶어 좋아하는 여자애의 치마를 들치는 남자 초등학생 같은 마음으로 그 애의 신경을 괜히 긁는다는 걸 느껴버렸다. 자각을 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 애가 지나갈 때 '레즈'라는 단어를 입에 올려 그 애를 조롱하지 않았고, 시선도 관심도 주지 않았다. 딱히 짝사랑을 하는 듯한 감정도 아니었고 단지 그 애에게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작은 마음이 혹여 커질까봐 매일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 애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관심인지, 내가 레즈레즈 거리며 경멸하던 그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이상한 관심인지 혼란스러웠다.
다행히도, 고3의 입시준비는 내가 잡생각과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내버려둘 만큼 널널하지 못했고, 나는 떨어진 수시에 속 쓰려하며 수능을 준비했다. 수능을 치룬 유독 추웠던 11월의 수능날, 담임선생님이 너흰 그래도 05년도 시험이라 다행이라며 06년도에 고3이었으면 월드컵도 못 봤을 거란 문자를 받고 2002년 시청에서 본 그 애의 웃는 얼굴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더니 심장에 박혔다. 아, 그때부터구나. 자각하고 인정하고 납득하자 그 애에 대한 내 감정의 혼란은 끝났다.
그래, 난 그 애를 좋아한 거다. 지금도 좋아하고. 수능이 끝나 미성년자도 뚫리는 술집이니 클럽이니를 전전하며 소모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도 그 애에 대한 갈증은 가시질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19살에서 20살이 되었고, 졸업을 앞둔 2월의 어느 날 그 아이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알게 된 그 애의 번호는 매일 밤 내가 핸드폰을 들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힘겹게 그 애의 번호를 누르고 컬러링을 듣게 된 졸업 전 날 그 애의 '여보세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졸업식 날, 괜한 꾀병을 부려 학교에 가지 않았다. 혹여나 그 애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오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마다 괜히 그 애 특유의 냄새가, 내가 '레즈냄새'라며 그 애를 깎아내리던 그 냄새가 언뜻 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겁쟁이였다. 다시 그 애의 전화번호를 누를 용기는 없었다. 문득 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나는 이예진만 좋은 거야, 아님 여자가 좋은 거야?'
혼란은 때론 두려움이 되었고 가끔은 이런 고민을 하게 한 이예진을 미워하기도 하면서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06학번 김유라. 대학생이란 타이틀을 달고 대학생활을 만끽하며 잠시 그런 혼란스러움과 이예진에 대해 무뎌져가던 쯤 학교 근처를 거닐던 순간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조건반사적으로 '레즈냄새'라고 혼잣말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여야할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 냄새는 문득 문득 내가 길 한복판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게 만들었다. 역시나 그 아이는 없었다.
대학생활은 무난하고 무던하게 흘러갔고 남들 다 하는 영어공부에 대외활동과 교환학생을 거쳐 취업준비로 정신없어진 졸업반이 되는 동안 내게는 모태솔로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 붙었다. 딱히 이예진을 못 잊어서가 아니었다. 마음에 차는 남자가 없었고, 그렇다고 여자를 찾아 사귈 정도의 용기가 없었다.
하반기 공채 면접으로 분주하던 때에, 면접을 보러간 회사에서 나는 운명처럼 그 '레즈냄새'를 맡았다. 이번엔 확신에 가까울 정도로 그 아이의 냄새와 닮아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 시야에 들어온 그녀를 보았다.
아….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작가 코멘트)
작가명은 단순히 제가 이기는걸 좋아해서 승리입니다. 제목은 단순히 주인공들이 토끼띠라서 두 토끼입니다. 우리 모두 게이프라이드를 높이고 밥을 꼭꼭 씹어먹고 L단체들을 후원하는 멋진 삶을 살아봅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