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사)한국상담심리학회의 ‘전환치료’ 시도한 학회원에 대한 영구제명결정을 환영하며, 동시에 학회의 미온적인 입장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
한국상담심리학회(이하 ‘학회’)는 지난 2월 8일 동성애를 이상성욕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심리치료를 시도한 상담사를 영구제명했다고 밝혔다. 해당 상담사의 이러한 행위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별 표현을 병리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바꾸려 하는 소위 ‘전환치료’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미 학계에서 비과학적, 비윤리적 치료행위로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학회의 이번 제명 결정은 지극히 당연하며, 학회가 2018년 개정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상담심리사 윤리강령>에 비추어봐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제명 사실이 알려진 뒤 불과 일주일 뒤인 15일, 학회는 공지를 통해 해당 상담사에 대한 주된 제명이유는 ‘전환치료’가 아닌 여러 윤리규정의 위반이기에 기사 수정을 요청하고 있고, 이번 제명이 ‘동성애 찬반논쟁’에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밝혔다. ‘전환치료’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윤리규정의 중대한 위반임에도 학회가 이를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동성애 찬반논쟁이라는 말을 통해 마치 동성애라는 개인의 성적지향이,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가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성소수자 혐오와 편견이 담긴 이야기까지 한 것이다.
이러한 학회의 입장 공지는 제명결정의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켰을 뿐만 아니라, 학회가 ‘전환치료’의 문제, 성소수자 인권 현실에 대해 어떤 이해를 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게 한다. 개인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은 인간의 다양한 특성 중의 하나로서 치료의 대상이 아님은 이미 확립된 사실이다. 이에 따라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와 1990년 세계보건기구는 각각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하였고, 2016년 세계정신의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성적지향, 끌림, 행동, 성별정체성이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 행동이며 치료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나아가 2018년 세계보건기구는 국제질병사인분류 제11판을 개정하며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병리화한 성주체성장애와 성전환증을 모두 삭제하였다. 이러한 변화들은 개인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강제로 바꾸려는 시도가 어떠한 효과도 없다는 무수한 과학적 연구결과에 따른 것이다.
또한 여러 연구들은 ‘전환치료’의 시도가 효과가 없을 뿐더러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며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에 전환치료는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극도의 폭력으로서 용납될 수 없다는 점 역시 확립되어 있다. 2011년 유엔 인권최고대표(UN OHCHR)은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의료에서의 차별 사례로 비과학적이고 해로운 ‘전환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을 지적하였고, 2018년 유럽평의회는 ‘전환치료’는 무익하고 매우 해롭기에 회원국들이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2015년 한국정부에게 ‘전환치료’의 선전, 혐오발언을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용납할 수 없음을 명시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처럼 전환치료의 무익성과 이로 인한 해악이 분명함에도 한국에서는 소위 ‘탈동성애’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공공연하게 전환치료가 이루어져 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단지 종교시설만이 아닌 심리상담사, 의료인 등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전환치료근절네트워크가 실시한 ‘성소수자 상담실태조사’에 따르면 ‘전환치료’를 경험한 사람 중 10.5%가 상담사로부터, 4.7%가 정신과 의사로부터 ‘전환치료’ 권유를 받았다 응답했다. 이미 비과학적, 비윤리적으로 공인된 상담, 치료 행위가 심리상담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학회가 일말의 책임감을 가져왔다면, 앞서와 같은 공지는 절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일찍이 과학자 칼세이건은 비과학적 미신이 만연하고 이것이 해악을 가져오는 세상을 가리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는 이미 수십년전에 없어졌어야 할 ‘탈동성애’, ‘전환치료’의 악령이 출몰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악령을 만들고 퍼뜨린 사람들의 책임도 있지만 짐짓 중립적인 태도로 해야 할 역할을 다하지 않은 전문가들의 책임도 크다. 무지개행동은 학회가 더 이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전문가집단으로서의 소양을 다하길 바란다. 학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기사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사회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는 것임을 학회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9. 2. 20.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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