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레즈비언인데 지금 연인과 헤어지면 새로운 여자와 사랑할 수 있을지 겁이 납니다.
지금 관계가 끝나더라도 새로운 관계는 분명히 다시 오리라고 장담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무작정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며 위로하고 격려해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서로가 끌려 사랑에 빠지는 소중한 인연이란 우리 인생에 그리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나 아무도 다시는 못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일도 아니고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될 지 예측해 맞추기도 불가능합니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날 수도 있지만 못 만날 수도 있다는 반반의 가능성은 그래서 일단 인정하고 봐야 합니다. 곁에 누가 있건 없건 각각의 상황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나가리라는 마음의 준비도 해 놓고 봐야 합니다.
다만 지레 비관적인 마음을 먹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충분한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의 사랑에 온 힘을 다해 왔다고는 해도 혹여 이 사랑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이 스며 나오리라 믿어보세요. 누군가를 마음에 들일 그런 여유 공간을 실제로 조금씩 늘려가면서 말입니다. 더불어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당연히 있을 뿐 아니라 분명 나만의 매력을 갖고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마 안 될 거라는 체념에 잠기기보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곁을 내어주세요.
그런데 어쩌면 당신을 짓누르는 고민은 새로운 누군가와 만나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 자체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사랑하게 될 일이야 있을 법 하다. 하지만 과연 그 관계를 시작하고 지키려면 이미 그간의 동성교제로 두루 거쳐 온 무수한 난관들을 반복하여 겪게 되지 않을까,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피로해져 버렸대도 십분 이해합니다. 낙인과 차별 속에서 내가 나로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기란 실로 피로한 일이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일을 겪어온 당신은 유경험자로서 알게 모르게 레즈비언으로서의 여러 가지 생존 요령을 쌓아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훨씬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담소는 당신이 새로운 사랑을 일궈내는 과정을 오롯이 혼자서만 다 감당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벅찰 때면 도움을 요청해 주세요. 같이 아파하고 고민하며 대응책을 고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