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로 동성애자인 제 자신이 더 싫어졌어요.
성폭력은 이성 간에도 동성 간에도 발생하며, 가해자나 피해자의 성정체성이나 성별정체성과도 상관없이 일어납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건 절대로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빌미를 제공한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은 평소에도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자기 삶을 원체 긍정하기 어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를 심지어 동성한테 입었으니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더 끔찍하게 느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성폭력 피해와 성정체성이 구분이 안 되면서 자기 비하가 더 심해지는 상황이리라 짐작해봅니다.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여전히 동성에게 끌린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가 용납이 안 되는지도 모릅니다.
특정 성별의 사람에게 입은 성폭력 피해를 그 성별 전반에 대한 거부감으로 연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당 성별 전반에 거부감이 든다면 물론 그 거부감 자체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해자가 증오스러울 뿐 그 성별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꾸준히 관심이 간다면 그 역시 고스란히 존중해주어야 하지요. 동성 간에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동성애 자체를 문제 있는 것으로 만든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폭력은 폭력이고 관계는 관계입니다. 두 가지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이성 간에 성폭력이 일어난다고 해서 이성애 자체를 문제라고 보는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평적인 방식으로 관계 맺는 동성 커플이나 서로 존중하며 함께 즐기는 성관계 사례들을 두루 접하면서 동성애, 동성교제, 동성 간 성관계 등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씩 줄여나가 보면 어떨까요. 끌리는 동성의 파트너가 있어 인연이 닿을 경우 둘이 서로 여러 가지를 조율하고 배려하며 관계 맺는 경험도 해 보시고요. 동성 간 성폭력의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아파하는 마음과 동성애자로서 누군가를 욕망하고 원하는 마음은 당신 안에서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