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선천적인 건가요, 후천적인 건가요?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를 궁금해 하고 계시는군요. 그런데 이 질문에는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답변을 할 수 없을 거예요. 동성애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하는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 동성애에 대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일도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누군가 자신을 동성애자로서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가 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일 거예요. 동성애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왜 동성애자가 되는 거지?"라고 묻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야 하나? 동성애자는 어떤 차별을 받고 있을까, 그 차별을 사라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좋겠어요.
사실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를 밝혀내려는 연구는 계속 있어왔죠. 그러한 연구의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편견이 깔려있었어요. 동성애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성애의 원인을 알고자 하는 것이지요. 사회에서 이성애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성애의 원인을 묻지 않고 알아내고자 하는 연구도 하지 않잖아요.
동성애에 대해 편견을 가진 연구자들이 시도한 연구의 결과가 어떻겠어요? 엉터리 연구결과를 내놓고선 이를 통해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답니다.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면서, 그 원인이 귓속의 구조에 있다고 보기도 하고, 뇌의 이상에 있다고 보기도 했죠. 그래서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뇌 전두엽 절제수술을 하기도 하고, 전기충격요법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끔찍한 일이죠.
반면 동성애자 정체성을 후천적인 것으로 보는 경우에는, 남성으로부터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레즈비언이 된다는 설도 있었고, 여자들끼리 모여 있는 환경에 있으면 레즈비언이 된다는 설도 있었죠. 남성의 경우엔 같은 남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거나 가정환경이 불우하건 혹은 누나가 많아서 게이가 된다는 설도 있었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가만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여성들은 이성으로부터 폭력을 겪거나 동성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레즈비언이 된다고 하면서, 남성들은 동성으로부터 폭력을 겪거나 이성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게이가 된다고 하고 있잖아요? 또 한 가지, 이성으로부터 성폭력을 겪거나 가정폭력을 겪은 여성들이 레즈비언이 되는 거라면 우리 사회에선 레즈비언이 과반수를 차지하겠군요. 이처럼 선천적 원인설이나 후천적 원인설이나 말이 안 되고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은 동일하네요.
자, 그럼 실제로 동성애자들은 자신이 동성애자가 된 이유에 대해,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건 사람마다 각기 다르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있어서 동성애 정체성은 선천적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후천적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렇게 각자 판단한 원인은 적어도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진실에 가깝겠지요.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혐오하면서 동성애의 원인을 궁금해 하는 것과는 달리,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동성애자로 받아들이면서 그 이유에 대해 탐색해보는 과정은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자신을 이성애자와는 ‘다른'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 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차별을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할 정체성을 선택할 때, 자신이 언제부터, 왜, 동성애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특정한 이유를 제공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원인을 탐색해보는 과정 속에서, 이제까지 이성애중심적인 환경 속에서 무시하고 살 수밖에 없었고 선택적으로 지워버렸던 기억을 정리할 수도 있지요. '아 중학교 1학년 때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을 단순히 우정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사랑이었던 거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기억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지금껏 미워하고 싫어했던 그 감정들과 경험들을 소중하고 존중할만한 것으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동성애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각기 다른 원인을 떠올릴 수 있고, 그만큼 동성애자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하는 문제는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지요.
자, 이제 동성애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나요? 중요한 것은 동성애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혹은 타인의 삶) 그 자체를 존중해주는 태도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동성애에 대한 어떤 질문이 떠오른다면, 그 질문을 역으로 이성애자에게 던져본다면 어떨까요. ‘이성애가 선천적인 것일까, 후천적인 것일까' 하는 질문이 황당하게 느껴진다면, 동성애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느껴진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