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과 사귀고 있지만 레즈비언이고 싶진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동성과 사귀고 있지만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 이름 붙이고 싶지 않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터입니다. 사회적인 낙인과 편견의 대상이 되는 성정체성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하기가 겁날 수도 있고, 이제까지 이성의 상대에게 이끌림을 경험해 보았든 그렇지 않든 그럴 가능성을 항상 열어 놓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내 감정과 경험을 굳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생각할 법도 합니다.
본인의 성정체성을 탐색하고 규정하는 작업은 본인의 몫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특정한 성정체성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는 레즈비언이다, 여성동성애자다, 이렇게 규정하지 않는다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과 그 사람과의 교제를 부정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성정체성을 반드시 특정하게 정하고 넘어가야만 할 절대적인 당위도 없습니다. 지금 관계 자체에 충실하고 자기 감정을 소중히 여길 수만 있다면 정체성을 규정할지 말지 여부나 어떤 정체성으로 규정할지 등은 덜 중요한 문제일 터입니다. 한편 만일 지금 당장은 동성과 사귀지만 이성에 대한 끌림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이라면 스스로를 바이섹슈얼, 즉, 양성애자로 정체화 할 수도 있습니다.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이 영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데에 이러한 고민이 담겨 있다면 바이섹슈얼 정체성도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
다만 여자로서 여자만 좋아하는 게 분명하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충분히 예상될 만큼 내심 확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자기 검열 때문에 레즈비언이고 싶지 않은 거라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과 혐오가 존재하는 건 분명하지만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수많은 레즈비언들이 더불어 그 어려움을 헤쳐 가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자기가 하는 사랑을 지키며 떳떳이 살아갑니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고민할 때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당신은 여자를 사랑하는 수많은 용감한 여자들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