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3. 31.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인권의 관점에서 미디어를 통한 트랜스젠더 재현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오늘 3. 31.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Visibility)로, 자신답게 살아가는 모든 트랜스젠더들의 존재를 축하하고 이들이 마주하는 차별의 현실을 알리는 날이다. 그리고 지난 주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두 차례의 방송이 이루어졌다. 3. 24. 방영된 MBC PD수첩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와, 3. 27. 방영된 KBS 시사직격 <시민 – 트랜스젠더>이다.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앞두고 공영방송에서 연속적으로 트랜스젠더 이슈가 다루어진 것이다.
두 방송의 구성,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공통적으로 다양한 성별정체성, 연령, 직업 등을 가진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보여줬다. 아직까지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가 낯설고 이로 인한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닌 사회 속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생생히 나타낸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는 올해 초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합격생 A씨 등 트랜스젠더로서 자신들을 용기 있게 드러낸 여러 당사자들이 이루어낸 성과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트랜스젠더 인권의 관점에서 미디어를 통한 트랜스젠더 재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려했을 때, 두 방송 모두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특히 올해와 같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차별과 혐오가 여실히 드러나고 이와 더불어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도 커진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MBC, KBS 두 공영방송사를 비롯하여 미디어 전반이 트랜스젠더의 이슈를 다룸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할 지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미디어는 트랜스젠더 묘사에 있어 차별적 편견을 강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트랜스젠더를 포함 사회적 소수자들을 묘사하는 말에는 차별적 편견에서 비롯한 것들이 있다. 가령 두 방송 모두 트랜스젠더를 묘사함에 있어 “여자(남자) 몸에 갇힌 남자(여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인격적 고통을 사회구조적 차별과는 무관한 개인적 몸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잘못된 몸을 고치기 위한 외과적 수술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져올 수 있는 표현이다. 언론들은 이처럼 트랜스젠더에 대한 묘사가 오히려 편견을 강화하지 않는지 먼저 신중한 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미디어는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에 대해서는 중립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소수자를 다루는 미디어에 있어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표현들이 반대의견으로서 다루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개인의 존재 자체를 반대하고 삭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이 존재를 부정하는 표현들은 명백한 혐오표현이며 미디어는 중립, 기계적 공정성에만 몰두해 이를 하나의 의견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위 방송들 중, 특히 PD수첩의 경우 이와 같은 혐오표현이 찬반 대립 의견 중의 하나로서 다루어진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셋째, 미디어는 전문가의 의견을 다룸에 있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인권 이슈에 대해 논의함에 있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 소수자 이슈를 다룸에 있어 소수자 당사자는 단지 당사자로서 이야기하고 비당사자 전문가는 전문가로서 이야기하는 구도가 반복될 경우, 이는 당사자를 타자화시킬 위험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 미국의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을 다루는 단체인 GLAAD는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비트랜스젠더 게스트가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의해라,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마지막으로, 미디어는 가시화를 넘어 사회 변화를 위한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가시화의 목적은 단지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지점들을 드러내는 것에 있다. 트랜스젠더의 가시화 역시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 화장실 등 공간부터 법적 신분제도까지 – 차별과 혐오를 야기하는 여러 성별이분법적 사회구조의 모순점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그렇기에 미디어를 통한 트랜스젠더 재현은 “트랜스젠더가 우리 곁에 있다”를 넘어, 이를 보는 시청자들 스스로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를 성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20년 올해 한국 사회는 각양각색의 트랜스젠더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을 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이번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한국사회가 이러한 만남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변화해 나가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미디어가 자신들의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변화를 위한 한 축이 되어주기를 촉구한다.
2020. 3. 31.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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