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5월까지
레주파 닥터롸잇 코너에
케이, 원영, 나루가 출연했습니다.
주제는 각 상담원들의 ‘기억에 남는 상담’ 이었는데요.
그 원고들을 이 곳을 방문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어
홈페이지에 게시합니다.
인용시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www.lsangdam.org
– 상담팀.
2007년 3월 둘째주 lezpa 방송
‘기억에 남는 상담’
– 케이.
이렇게 말하면 믿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제까지 내가 했던 상담 하나하나가 다 기억이 난다. 어떤 상담을 언제 어떻게 했느냐를 아무 메모도 보지 않고 모조리 떠올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한 상담은 그 상담을 할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내담자에게 어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건넸었는지 하는 것들이 첫 문단만 읽어도, 혹은 내담자 아이디만 봐도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상담이라는 게 굉장히 밀도가 높은 감정 노동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이나 초조함 등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는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 상담을 시작할 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상담소에 회원 가입 한 것이 4년 전 이맘때. 그 당시는 나 스스로조차 간신히 레즈비언으로 정체화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나와는 다른 상황, 훨씬 더 적대적인 상황 속에서 레즈비언으로 버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가 몹시 떨어졌고, 그런 상태는 그 해 10월부터 갑작스레 상담을 시작하게 되던 때까지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집을 읽고, 나를 돌이켜 보고, 활동하고, 고민하면서도 나는 점점 더 어렵다, 모르겠다는 느낌만 가지게 되었다.
지금이야 유급 상근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화 상담을 맡고 있지 않지만, 상근자로 처음 전화 상담을 받기 시작했던 몇 년 전에는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덜덜 떨기 시작해서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을 못한 채로 전화를 끊은 다음 혼자 눈물만 뚝뚝 흘리기 일쑤였다. 뭐랄까, 상담소 활동가나 회원들 같이 내가 얼굴을 아는 레즈비언들 외에 이 세상에 또 한 명의 레즈비언이 있어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상담원인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느낌. 그 느낌만으로도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몸 둘 바를 몰랐다.
상담원은 내담자에게 이 세상과 연결된 단 한 가닥의 끈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럽게 살아 온 내담자가 움켜 쥘 마지막 지푸라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들은 내게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말투 하나하나에 내담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도 있고 한 줄기 빛을 본 듯 눈을 반짝반짝 빛낼 수도 있다 생각하니 내담자가 꺼내 놓는 이야기에 네, 하고 응수할 때조차 내 목소리는 떨렸다. 그런데 그 때 당시 내가 사귀고 있던 사람이 나를 이렇게 격려했다. “케이, 네가 자기 이야기를 그저 들어준다는 것 만으로도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힘이 날 거야.” 첫 상담 전화를 끊고 엉엉 우는 나에게 그 말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상담은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거야, 라는 식의 조언이 아니어서 어쩌면 더 감동받고 힘을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것만큼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상담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건, 메일을 적어 보내는 사람이건,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사람이건, 상담원과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이건, 그렇게 상담을 청해 오는 사람들은 굉장한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타인에게 자기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 현재의 괴로움을 직면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내재돼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라는 사실. 상담원인 나의 역할은 이 사람들에게 내재돼 있는 그 힘을 이 사람들 스스로 끄집어 낼 수 있게 돕는 것이어야 하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써 무조건적인 도움을 베푸는 시혜적인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나는 수년간의 상담을 통해 배우고 있다. 내담자의 변화와 결단으로부터 상담원 또한 힘을 얻게 된다는 깨달음 역시 내겐 너무나 소중하다. 상담원은 내담자의 고통을 결코 완벽히 해결해 줄 순 없지만, 내담자가 고통의 시간을 헤쳐 나가는 길을 함께 갈 수는 있다. 결국, 내담자와 상담원은 동행하는 관계라는 것.
여기까지 써 내려 오다 보니, 기억에 남는 어떠한 상담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그간 상담활동을 하면서 갖게 된 소회를 끌러 놓은 느낌이 든다. 앞서 내가 해 온 모든 상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다른 상담에 비해 좀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상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내가 한 최초의 면접 상담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내담자의 신원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정을 설명할 순 없기에 굉장히 대략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내게 남은 그 상담의 무게감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담자와 그녀의 애인은 둘 다 기혼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관계를 온전히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신실한 마음을 갖고 사랑하고 있었고, 둘이서 꾸려가는 삶을 꿈꾸고 있었다. 각각의 가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서로 불가피하게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도 길었지만 이 두 사람은 차츰 차츰 자신들이 그리는 두 사람의 미래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분투하고 있었다. 그렇다, ‘분투’ 라는 말이 이 두 사람의 당시 모습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확한 낱말이라 하겠다.
이 내담자와는 몇 차례의 면접 상담을 진행하고, 그 뒤로는 간헐적으로 전화 상담을 진행했는데 이는 전화가 점점 뜸하게 오면서 자연스럽게 상담이 종결된 케이스다. 애초부터 정해진 회기를 두고 구조화 했던 상담이 아니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인 격으로 마무리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나 역시 얼마나 많이 울고 가슴을 쳤는지 모른다. 내담자와 애인의 신변이 위험해 지는 상황도 있었고, 이 두 사람이 굉장히 약해지는 순간들도 있었으며, 내가 이들의 상황에 압도되어 혼자 크게 앓은 적도 있었다.
우리는 상근자의 근무 외 시간에 상담전화를 상근자의 휴대폰으로 돌려놓고 전화를 받는데, 당시 나는 주말이 아닌 어떤 휴일 즈음 굉장히 번화한 거리를 거닐던 중 이 내담자로부터 아주 심각하고 슬픈 정황을 전해 듣고 통화를 마친 뒤 그 정신없이 돌아가는 거리의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약속 상대가 나올 때까지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것 같지만, 그 전화를 받으며 내담자를 격려하는 나로부터 세상의 모든 밝은 빛과 명랑한 소리들이 비껴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앞으로는 아무도 없는 텅 빈 터널이 뚫리는 것 같았다.
그 통화가 더욱 절절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 이후로 부쩍 전화가 걸려오는 빈도가 낮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다음에 걸려온 전화가 아마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이 두 통화 사이에는 거의 삼사 개월 가량의 기간이 존재했다.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그 석달 넉달의 시간 동안 나는 이 내담자가 떠오르는 잦은 순간마다 전전긍긍하며 걱정을 했다. 내담자와 그녀의 애인은 건강한가, 다치지는 않았는가, 둘이 함께 있기는 한가, 내가 도와야 할 상황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는가, 하는 등의 고민으로 한 번 생각의 실마리를 잡으면 잠도 쉽사리 이루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마지막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내담자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앞으로도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들이 많겠지만, 어떻게든 버텨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내담자의 나지막하고 조용한 목소리에는 이미 고난의 시간을 지나오며 단단해진 내면의 에너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내담자에게 나는 백번 절이라도 할 마음으로 나 역시 감사하다고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감사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이십대 초중반의 상담원에게 신뢰를 주고 자신을 보여준 그녀 덕에 나는 그녀가 고비를 넘어가는 과정을 함께 겪으며 한층 더 성숙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상담소의 사무방 문에는 면접 상담을 한창 진행하던 시기 내담자가 선물한 그림천이 한 장 걸려있다. 이 그림은 내담자가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고자 떠났던 여행길에 사 온 그림이며, 그렇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이 상담으로부터 길어 올린 나와 내담자의 에너지를 상기시킨다. 내담자로부터 개인적인 사례를 절대로 받지 않는 것이 상담소의 엄정한 관례이지만, 정성과 의지가 담긴 소박한 선물이라 뿌리치기 어려워 본디 이런 걸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거듭 전하며 받았던 선물이다. 이따금씩 이 천에 그려진 강인한 여성의 상징이라는 한 여신의 모습을 보며 밀려드는 상담 속에서 지치는 내 마음을 추스른다. 앞으로도 상담속에서 스스로 성숙하는 그런 상담원이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2007년 4월 둘째주 lezpa 방송
‘기억에 남는 상담’
– 원영.
1.
돌이켜 보면 나 자신도 혼자 커 온 게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성별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그리운 마음이 짙어져 나 자신도 가누지 못한 채 앓았던 때에도 내 곁에는 레즈비언 친구들이 ‘함께’였습니다. 그들은 내게 마음은 잘못이 아니라고 일러 주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손짓하는 곳을 바라보며, 이 넓은 세상만큼이나 많은 수의 레즈비언들이 튼튼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비교적 금세 털고 일어난 경우입니다. 그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저도 그런 힘이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상담원이 내담자의 문제를 전부 해결해 주거나 정답을 알려 주는 건 아닙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말 기운 나는 일 아닐까 싶어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처럼, 내담자들도 내가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며 힘을 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상담소가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
지인들에게 상담을 하고 있다고 하면, 상담은 별로 소용없지 않냐, 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대답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는 자기 스스로만이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상담자가 아무리 감정 이입을 해 주어도 결국 내 문제라는 생각으로 더 공허해진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런 말들이 오갈 때마다 상담이라는 것 자체가 좀 지나친 소통 방식은 아닐까, 하고 회의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또 솔직히 말하자면, 저 자신도 상담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부드럽지만은 않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매일 다르고 같은 상담들을 겪으면서 저는 점차 ‘상담은 꼭 필요한 치유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몸이 다쳤을 때 치료가 필요한 것처럼, 마음도 다치면 치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사실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아요. 응어리가 상처인 줄도 모르고, 힘든 것이 내 탓이라고만 생각하며 견디어 내고는 하지요. 하지만 힘들고 아프고 또 상처 나는 건, 부끄럽다거나 혼자서만 이겨내야 하는 시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송을 통해 상담 게시판에 글을 썼다가 지우고, 상담 전화를 걸어 놓고도 머뭇거리는 내담자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세요, 우리는 당신 편이에요.”
3.
이번에 할 이야기는… 반전일까요. 내담자에게 기운만 북돋는 말만 하다가 이런 말을 꺼내려니 참 어렵네요.
먼저, 상담원에게 의존하려는 내담자들이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상담원은 늘 하는 일이 상담이기에, 이런 경우를 두고 귀찮다거나 하는 등의 말씀(고자질? 하하)을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성정체성을 둘러싼 고민을 해결하는 것, 오래 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색해 가는 과정과 물음에는 언제나 상담소가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상담원은 내담자가 씩씩해질 수 있는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이지, 옆에서 항상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매일 매일 자신의 일상을 일기처럼 적어 보내주시는 분들이나, 스스로 생각해야 되는 부분마저 상담원에게 재차 물어오는 내담자 분들이 간혹 있어요. 그럴 때면 혼자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완곡하게 풀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고립되고 외로운 상황에서 막막한 상태일 때와 정신적인 독립을 회피하는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다른 경우는 교제 상담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 사람의 마음이 뭔지 궁금해요.” “제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이렇게 생겼는데요. 이반일까요.” “애인이 저와 헤어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오늘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했는데요. 그 애가 절 좋아하는 게 맞는 건가요.” 이런 질문들은 대답해 드리기 참 곤란합니다. 상담원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애인 자랑을 좀 과하게 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좋아하는 분에게 차인 다음 날, 혹은 솔로 생활에 칼을 갈고 있을 때, 이런 달달한 상담을 해야 하는 마음이 참 프로페셜널해지지 않더라고요. ^^; 물론 모든 상담이 다 소중하고 중요하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분들은 성정체성과 무관한 상담을 하기도 해요. “집이 너무 엄해요.” 등. 그런데요.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성정체성과 연결 지어지는 고민을 상담하는 곳이라, 안타깝지만 다른 분야의 상담은 전문 상담 기관을 찾으시는 것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4.
주제가 기억에 남는 상담이라 했는데, 상담을 하면서 드는 생각,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야기한 꼴이 되었네요. 저야말로 청명님과 상담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참 묘합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또 만나요~
2007년 5월 둘째주 lezpa 방송
‘기억에 남는 상담’
– 나루.
(상담팀장 주: 상담사례보고회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5월로 예정되었던 것이 아직 작업 완료가 안 되어서, 한달여 일정이 미뤄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5월에 있을 상담사례보고회를 준비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진행해왔던 상담들을 다시 돌아봤습니다. 1년이나 지난 상담일지인데도, 내담글의 첫 문장만 봐도 ‘아, 이 분이구나. 이러저러한 사정을 가지고 있었지.’ 하고 떠올려 낼 수 있었습니다. 케이님과 원영님도 앞서 이야기했지만, 모든 상담들이 각각의 느낌으로 제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가 봅니다.
여러 상담 중에는 저를 웃게 했던 상담도, 울게 했던 상담도 있습니다. 내담자의 사정은 몹시 딱한데 그에 비해 내가 할 수 있는 바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밤잠을 설쳤던 경우도 있고 말이에요. 특히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 남았던 상담을 하나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상담에 대한 비밀보호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를 삭제하고 소개해 드려야겠습니다.
당시 내담자는 이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고 극심한 성폭력 후유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온라인 상으로만 무려 6개의 상담을 처리해야 했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상담 글이 써지지 않았어요. 결국 그리 공들이지는 못한 답변을 올리게 됐죠. 제가 답글을 올리자마자 내담자가 그에 대한 반응으로 바로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새로이 올라온 내담자의 글에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어요. 그리고 얼마 뒤, 내담자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자살은 미수로 그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도록 내담자에게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상담원이 누군가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정말 공들여 상담을 했다면, 조금이나마 내담자에게 힘이 됐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너무 후회스러웠어요.
제가 상담글을 올리는 즉시 내담자가 그것을 읽고 또 다른 내담글을 올렸다는 것은, 내담자가 저의 상담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 답변이 달리는지, 무슨 내용일지,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그때, 숱한 성폭력 상담에 무뎌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담자에게 참으로 중요한 답변임에도, 저에게는 늘 해왔던 상담 중 하나가 되어 버리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거예요. 특히 그 날은, 이튿날 있을 지방으로의 출장 때문에 무척 바쁜데 상담이 6개나 올라와 지치는 날이기도 했어요.
한편 저 역시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해서, 내담자의 폭력 피해를 다루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내담자의 경험을 들여다보는 것은 내 경험을 직면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내담자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상처부터 치유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폭력의 후유증들을 스스로 잘 다스려 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은, 저는 여전히 기억을 직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이제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과거의 상처를 애써 덮어버리고 치유의 과정에서 회피하고 있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게다가 ‘나도 견디어 냈는데, 나도 살아냈는데’라는 생각은 ‘그러니 당신도 괜찮을 것이다, 살아내야만 한다.’는 식의 오만한 자세를 갖게 합니다.
비단 상담원이 아니더라도, 저는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타인의 상황에 대해서는 여러 조언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상처는 돌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또한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거리를 두거나 그것을 되도록 들추지 않는 것을 통해 강하고 독립적인 자아 정체감을 유지해온 사람들은, 상대에게도 강하고 씩씩하게 되기를 은연 중에 강요합니다. 타인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공감하는 것은 자신이 쌓고 유지해왔던 강인함을 스스로 배신하고 헛된 노력으로 만드는 일인데다가, 타인의 나약하고 의존적인 모습에 영향을 받아 겨우겨우 지켜왔던 벽들이 허물어지지는 않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제가 요즘 상담을 하며 몰두하는 측면도 이런 것들입니다. 즉 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치유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일상 곳곳에서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친밀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기 십상입니다. 친구들과는 원만한 관계를 맺지만 애인과는 그러지 못하는 것, 어느 정도의 친밀함은 용인하지만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 끊임없이 애인을 시험에 빠트려서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는 것, 그러면서도 자신은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비하하는 것. 이러한 태도는 결국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여러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아마 많은 수의 여성들이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그 밖의 폭력 피해의 경험이나 내면의 큰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고 말이에요. 대부분 ‘이제 그런 일들은 나와 상관이 없다, 다 지나간 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밤중에 그 기억들이 떠올라 두려워서 떨기도 하고 슬퍼서 울기도 하며 수치스러워서 소리를 내지르기도 할거에요.
그런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네요. 당신이 겪은 폭력은 당신 탓이 전혀 아니었다고, 당신은 마땅히 사랑 받고 축복 받으며 살아가야 할 여성이라고. 그리고 아주 더디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치유해 나갈 수 있다는 말도 전하고 싶어요. 수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딛고 일어섰고, 저 역시 그러했어요. 또한 극심한 성폭력 후유증에 시달려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래도 지금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그 내담자 분도 그럴 거에요. 서로가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상담을 통해 많이 배우고 성숙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제가 만났던 여러 내담자들이 어딘가에서 꿋꿋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렇게 믿어요. 그리고 앞으로 만날 내담자 분들과도, 서로 힘이 되는 관계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