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동안
장면 하나. 오래된 집들이 우거져 있는 낡은 동네, 상담소 사무실은 그곳에 있다. 회의 중에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가 들리면 지레 놀라 숨죽여 발음하는 레.즈.비.언.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 따위의 단어. 누군가 부주의하게 말소리를 키웠다면, 그녀에게 가만히 손가락으로 표한다. 소리가 너무 커요, 밖에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장면 둘. 활동가 중 한 명이 가끔 꾸는 악몽은 우리를 질리게 한다. 한 남자가 사무실 근처의 지하철역 출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는 말한다. 네가 지금 어디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네가 그렇게 꽁꽁 숨기고 있는 곳의 위치를 나는 알고 있다고. 꿈속에서의 협박과 위협. 그는 소스라치며 눈을 뜬다. 그러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가다듬어지지 않아 사무실에 앉아서도 표정이 서늘해진다고 했다.
장면 셋. 레즈비언 친구 하나는 꼭 한 번씩, 우리 나중에 다같이 모여 살자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서로 가까이 닿는 곳에라도 살자고 부탁하고 확인한다. 결혼이나 고립이라는 단어 없이도 우리는 그 당부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다. 우리의 미래가 나의 그것을 확인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너무나도 불확실하여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확인받는다. 미처 의식하지 못 하는 순간마다 나의 방심을 일깨우기라도 하는 양. 모퉁이 저편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담겨 있지 않을 수많은 것들이 담겨 떠돈다. 아마도 저것은 나의 두려움이 될 씨앗이다. 우리를 향한 것이 분명한 저 검은 구름을,
나는 불안이라고 이름 붙인다.
불안은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과는 또 다르게 나 개인의 골칫거리였다. 나는 세상의 모든 걱정을 혼자 하는 사람처럼 쉽게 평온함을 잃었기 때문에, 불안은 나 자신 내면의 문제와 맞닿아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레즈비언으로서의 불안 또한 개인의 성격 문제로 치부해 왔다.
따라서 나는 레즈비언이다, 라는 명제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내가 불안을 쉬이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만 짐작했던 것 같다. 레즈비언이라는 말 자체에는 그 어떤 불안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나의 결론을 타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곧 레즈비언이라는 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라져간 사람들이 있다. 많은 레즈비언이 이제는 아니라는 고백과 함께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지운다. 결혼을 해야겠다고, 더 이상은 이렇게 만날 수 없다고 못을 박는 누군가의 옛 애인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남은 우리들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 순간에 함께 모여 위로할 수 있는 힘도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처의 밑바닥에 자리한 불안은 누가 덮어줄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이런 이야기가 반복될 것이라는 짐작 뿐. 언제 들을지 모를 누군가의 소식 때문에 잠을 설치고 담배를 무는 건, 그저 혼자만의 일상이 아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과 상처는 ‘우리의 불안’이라는 말로 묶을 수 있는 어떤 공감대를 형성한다.
물론 세계 안에서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은 당장 다음 달에 어떤 사고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할지 짐작할 수 있는가.) 따라서 레즈비언이 아닌 사람들도 수많은 예측과 그보다 더 많은 침묵으로 알 수 없는 미래를 견제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행운은 어느 만큼인지, 내가 견디어야 할 시련은 아직도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앞으로의 삶을 점치는 수많은 행동들은-모두 내 마음이 불안하여. 내일이 되어도, 그 전 날 무사히 보낸 하루도 불안이라는 유령을 물리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러나 레즈비언의 불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라는, 이 조마조마한 마음. 제도적 형식으로서의 가족이 내게는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날 불안하게 한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닥쳐올 재난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느끼는 이 불안과 어둠은 이미 그러한 경험을 했든 그렇지 않든 가끔 우리를 장악한다.
극복되어야 한다. 불안에 잠식되었다면 빠져나올 수 있도록 나를 추슬러야 한다.
가끔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라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잠시라도 가라앉기를 바란다. 마음이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하는 끝도 없는 낙천성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주어진 삶과 다를 것이 분명한 내 삶을 분주하게 준비해 보기도 한다. 불안한 마음을 꼭꼭 가두어 둘 수 있는 마음의 빈 곳이 남아 있기를 기도하며, 기록으로 남겨 보기도 한다.
혼자서, 다른 누구와, 집요한 불안의 공격을 막아낸다. 의식이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다. 노력은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어떤 날은 불안한 감정이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울적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직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 가끔은 잊을 수도 있고 지나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다. 환영일 수도 있고 실제일 수도 있지만 불안은 내가 다룰 수 있는 나 자신의 것임을, 이제는 안다.
처음 상담소를 찾았을 때를 기억한다. 가파른 언덕 위에 숨겨져 있던 사무실에 당도하여, 나는 또 다른 레즈비언의 존재에 한없이 낯설어 했다. 그러나 곧 이것이 어떤 시작이며 또 다른 세계가 내게 열린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은 그 보다 뒤에 기억을 곱씹으며 입 속에 자리 잡은 일종의 후기이리라.)
당시, 다른 세계에 대한 기대라는 감정 보다 더 먼저 몸이 반응한 것은 안도의 한숨이었다.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다, 라고 깨달았던 짧은 시간. 상담소에 나의 이름을 올리며,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망설임 끝에 나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순간만큼이나, 짜릿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 밤이면 가끔 ‘우리’를 떠올린다. 그 사실을 떠올릴 수 있도록, 애써 흔적을 찾는다. 뒤엉킨 감정들이 가라앉아 평온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이런 시도를 거듭했음에도 언제나 아득함이 더해갈 뿐이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속아 주기도 하지만.
◎ 원영 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