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레즈비언④] 인터넷 레즈비언 연애사
야릉
이성애자들도 아는 유명한 레즈비언 커플이 하나 있다. 인터넷 연예뉴스 기자들의 공로로,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린제이 로한과 사만다 론슨이다. (실제로 그들이 레즈비언인지, 그리고 커플인지는 모른다. 진실엔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까.) 아무튼, 한국의 레즈비언들이 그들의 소식을 접하며 만끽하는 즐거움이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이성애자들의 호기심과 애정(?) 또한 대단하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너무 편협한 존재로만 보았기 때문일까?
연예인 레즈비언
웬만한 인터넷 신문들은 바다 건너, 이름도 다양한 연예정보사이트에서 폭로된 그들의 관계를 기사화하여 그들이 얼마나 유난스럽게 사랑하는 사이인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긁어모아 전달하는 열성을 보인다. 해외 인기 여배우의 동성애 의혹이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뜨는 영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의 연애는 동경의 대상이건, 판타지의 소재이건,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건 간에 인터넷 사용자 다수가 공유하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연예인들의 동성애는 다소 충격적이더라도 “예쁘니까 봐줄만 한” 것이다.
한국의 한 언론사에 나온 관련 기사 목록
연애인 레즈비언
한편, 그저 소박한 ‘연애인’들의 소소한 이야기는 주로 상담소에서 히트를 친다. 홈페이지 게시판으로 들어오는 상담 요청 글의 상당수는 어디 가서 ‘말도 한번 못해본 사랑’에 관한 것이다. 레즈비언상담소니 뭔가 레즈비언들만의 고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시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지나치게 사적이고 시시콜콜한 연애사를 늘어놓아, 왜 그런 이야기를 여기까지 와서 털어놓는지 난감한 경우가 있다. 이성애자들이라면 상담소까지 찾아갈 필요 없이, 그저 옆에 있는 지인에게 털어놓으면 그만인 주제들이다. 그런데 언젠가 상담소에서 내가 맡은 연애사의 기승전결을 찾다 지칠 무렵, 어떤 내담자가 남긴 말이 있다. 밖에 나가 용기내서 운이라도 떼면, “예쁜 애가 왜 그러냐” 한다고.
레즈비언들의 연애를 공적으로 지지하기
인권운동의 거창한 틀 안에서 레즈비언을 생각한다며, 이리저리 머리 굴릴 때 가끔 놓치고 마는 것이 있다. 인터넷으로 접하게 되는 굵직하고 무거운 논의들에 압도당해서 레즈비언들이 당장 눈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누구에게는 가장 심각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적인 문제’라며 외면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적인 연애 고민마저도 상담소에 찾아가서 풀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나의 권리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음을 가장 절실히 느끼지 않을까 싶다.
가끔 레즈비언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십기사의 댓글에서 찾아보곤 한다. 물론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아니므로 대부분은 ‘실제’, ‘보통의’ 레즈비언들의 연애에 대한 이성애자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확인해보는 장이 될 뿐이지만. 그러한 기사를 보면, 그들의 존재와 그들의 연애사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만큼, 나의 연애 고민들도 이성애자들에게 좀 더 편하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무너지고 만다. 연예인에 대한 환상과는 모순되게 터져 나오는 ‘보통의’ 레즈비언에 대한 혐오성 발언들은, 많은 레즈비언들이 결국 상담소에 찾아와 자기의 연애 문제들을 처음으로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레즈비언으로 의심되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진실이건 거짓이건 까발려지고, 재미있게 버무려진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도 레즈비언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아직까지 오프라인처럼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이 정작 귀를 기울여야 할, 보통의 레즈비언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드러낼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들의 연애 고민은 물론이다. 가벼이 듣고 흘려도 될 레즈비언 이야기와 귀를 열고 들어야 하는 레즈비언 이야기는 이처럼 뒤바뀌어있다.
린제이 로한의 가십만큼 흥행하진 않겠지만, 레즈비언들의 연애를 공적인 이름으로 지지해주는 일은 필요하다. 그들에게 더 이상 연애가 듣고 말하기 조마조마한 일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야릉님은 레즈비언 상담소 활동가입니다.
http://hr-oreum.net/article.php?id=1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