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족정책 톺아보기] 다른 가족구성, 다른 주거정책
3차 가족정책포럼 “주거권, 가족정책 그리고 계급”
케이
대안적 가족구성권을 고민할 때 우회할 수 없는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주거권이다. 어떤 식으로 가족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실질적인 거주나 생활의 터전을 더 풍요롭게 보장받는 이와 그 보장을 상대적, 절대적으로 덜 받는 이가 나뉘기 때문이다. 이 때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확장시키는 작업과 다양한 위치의 존재들이 저마다의 삶의 맥락에 맞게 누려야 할 주거권을 요구하는 작업은 긴밀하게 맞물린다. 또한 가족이 구성되는 방식 및 그 형태를 좌우하는 요소에는 계급, 성별, 연령, 지역, 장애, 성/성별정체성, 인종 등의 다양한 매개 변수가 존재한다. 때문에 주거권에 대한 모색 역시 그처럼 여러 변수들에 따르는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살피며 진행될 필요가 있다.
사실 꾸리고 있는 가족 형태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뭐가 어떻든, 통념상 번듯해 보이는 집을 구입하고 그걸 유지할 돈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는 소위 ‘능력 있는’ 사람들의 경우 자기 집 사서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물론 주거권이란 집의 소유와 거주 그 자체를 넘어선 주거의 여러 국면을 아우르는 것이지만, 내가 내 의지로 굴릴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집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주거와 관련된 여타 문제들을 압도하는 요소이다. 한국 사회가 손낙구 씨의 표현대로 ‘부동산 계급 사회’에 다름 아니라면, 자기 명의의 주택을 포함하여 이런저런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상층 계급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주거권을 생존권 혹은 기본권으로서 느낄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할 것이다. 가령, 주택마련 대출, 전세자금 대출, 전세담보 대출 등의 대출 관련 정책이나 공공임대주택정책 등으로부터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이들은 자기 집 없고 자기 집 가지기 어려운 이들이다.
3차 가족정책포럼이 진행되는 모습.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을 남부러울 것 없이 소유하고 있는 이라고 해도 예를 들어 동성 배우자에 대한 상속이나 증여의 문제에 연루되면 큰 걱정거리를 안게 된다. 또한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거의 보장받지 못하는 이른바 ‘미성년자’의 경우, 자신이 원치 않는 방식으로 가족이 재구성되고 거주 형태가 변화하는 상황에 던져질 때, 아무리 살 곳 그 자체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과는 별도의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역시 무주택자이면서 임대주택 구하기도 어려운 조건과 다른 삶의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할 경우, 적절한 주거권을 보장받는 일은 한층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무주택자의 빈곤은 그/녀가 자신의 욕구에 따라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제한하고, 혼인/혈연/출산을 매개로 하지 않은 관계는 제도의 지원체계로부터 밀려남으로써 주택 등에 대한 공공 정책의 수혜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 더 어렵게 살게 된다. 가난해서 집이 없고, 집이 없어 더 가난해진다. 동성 커플은 혼인 관계 및 직계존비속 관계를 중심으로 매겨지는 청약 가점 우선순위를 거들떠 볼 수도 없다. 그런 장벽 때문에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삶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주거권, 가족구성권으로 보다
다양한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이 저마다 제대로 주거권을 보장받으려면 주택정책과 가족정책(에 전제된 규범적 가족상)이 더불어 변화해야 한다. 주택정책은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 구성에 걸맞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주택정책을 좌우하는 가족정책에 전제된 ‘정상가족’ 규범 자체가 깨져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 비혼 여성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의 경우 상호적인 부양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공공임대주택 청약 가점은 고사하고 청약을 신청하는 단위조차 될 수 없는데, 실질적인 생활공동체로, 가족으로 이들을 인정하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이 같은 공동체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여 거주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가족을 규정하는 경계를 넓히는 작업이고, 가족구성의 변화를 제도에 반영하는 작업이다.
한편 주택정책 측면에서 보자면, 비혼 여성 공동체를 굳이 넓은 의미의 가족으로 포섭해 내지 않더라도, 즉, 비혼 여성들끼리 모여 산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들이 현행법상 가족이 아닌 것과 무관하게) 공공임대주택 신청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족’이라는 것이 이성애/혼인/혈연이라는 요소로 잔뜩 물들어 있는 단위라면 그런 식의 ‘가족’ 외에 다른 사회적 단위들이 등장해서 ‘가족’과 겨뤄보면 어떨까. 가령, 진보신당에서 고민하고 있는 ‘주거연대협약’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대안이라 볼 수 있다.
집 없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가장 기본적 주택정책 중 하나는 아마도 공공임대주택 수량이 실질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청약자격, 입주자격도 실제 청약하고 입주할 물량이 있어야 논의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 단순히 전체 물량의 증가만이 중요한 것 역시 아니다. 주택의 설계도 문제다. 기존 ‘정상가족’ 중심으로 설계된 물량이 공공임대주택의 대부분을 차지할 때, 물리적으로 공평하게 공간을 나누어 쓰고 싶은 이들은 곤혹스러워진다. 방 크기의 차이가 현격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증가하는 1인가구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물량도 중요하다. 1인가구의 주거 수요는 그간 주로 민간임대로 충당해 왔는데, 주거비용은 낮추되 주거의 질은 높이는 공공임대가 늘어날 필요가 절실하다.
이러한 공공임대주택 확충만이 주거권 보장의 만능해결사인 것은 당연히 아니기에 여타 정책에서의 변화 역시 시급하다. 일례로, 단독세대주의 경우 만 35세 이상이 돼야만 국민주택기금 저소득가구 전세자금 대출 자격이 된다. 이 역시 혼인과 출산을 매개로 구성된 가족 단위에 우선 혜택을 주겠다는 점을 (은근히, 아니, 대놓고?) 전제로 한 요건으로 좀 더 현실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독신/비혼/1인가구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제도의 혜택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 세입자 권리 보장도 더욱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터무니없이 오른 전세금에 값싼 집을 갑자기 알아보러 돌아다녀야 하지 않아도 되도록, 사람이 살 수 없는 (살아서는 안 되는) 환경의 공간에 속아서 입주하게 된 뒤 땅을 치게 되는 일이 없도록, 동성 배우자와 함께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이 드러내는 노골적 동성애 혐오를 묵묵히 견디지 않아도 되도록, 내 돈 들여 보일러 고치느라 화병나지 않아도 되도록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세입자 권리 보장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정책과 주택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어디서 어떻게 무슨 수로 살아갈지 머리를 싸맨다. 사람의 삶 살이에 맞춤한 제도의 운용을 기대하는 일이 과한 희망이 아니길 바라며, 모두가 누우면 따뜻하고 아침이면 볕드는 집에 안심하고 누워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
케이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97 호 [입력] 2010년 04월 07일 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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