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익명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
– 2008년 총선시기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인권단체 입장
지난 3월 27일부터 공직선거법에 따른 인터넷실명제가 실시되고 있다.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고 실명을 확인받은 사람만이 인터넷언론 기사에 덧글을 달 수 있다. 공공기관이나 포털 등 주요 인터넷사이트에는 이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에 의해 상시적인 인터넷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최근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을 빌미로 인터넷실명제가 더욱 확대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는 오직 실명 확인을 한 사람만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권단체들은 인터넷실명제의 확산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명 표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자유권이고, 소수자와 약자가 두려움 없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려면 익명으로 발언할 수 있는 자유 또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이름없는 시민의 과감한 비판과 용감한 고발은 언제나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어 왔고, 익명 표현을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이다.
특히 어느 나라에서나 선거시기에는 국민에게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으며, 비밀투표의 원칙에서도 볼 수 있듯 선거시기 익명의 자유는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선거시기에 실명으로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도록 하는 인터넷실명제는 국민의 정치참여를 중대하게 가로막는 것이다.
실명을 사용할 것인지 익명을 사용할 것인지는 개인과 공동체가 선택할 문제이다. 국가가 과태료 1천만원을 부과해가며 국민에게 실명을 밝히도록 강제하고 의견 발표를 위축시키는 것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검열에 다름이 없다. 또한 소수의견이기 때문에, 편견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개인정보 침해의 우려 때문에 의견 밝히기를 꺼리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불공정한 선거운동이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발언에 대하여 반대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현실 공간에서 그러하듯 사후에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면 될 일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국민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후보자를 비방하거나 악플을 올릴 것이라고 전제하고 사전에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는 것은, 인권 침해이다.
국가적인 인터넷실명제를 빌미로 수많은 인터넷사이트에서 주민등록번호와 개인정보를 마구 수집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위협하고 개인정보의 오남용과 유출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최근 정부도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인터넷사이트에서 주민등록번호의 대체수단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정보인권을 온전히 실현하는 길은 무차별적인 실명 확인과 개인정보 수집을 중단하는 길 뿐이다.
익명이 범죄시되는 사회 속에서 인권은 기대할 수 없다. 실명 확인의 강박 속에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다. 특히 수사편의를 명분으로 실명제를 확대한다면, 이는 경찰국가의 부활을 가져올 것이다. 인권침해적 인터넷실명제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2008년 4월 3일 (인권단체 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