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법무부의 ‘국적 및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안 철회를 요구한다!
지난 11월 4일 법무부는 ‘국적 및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하며, 새로운 신분등록제에 대한 정부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법안은 현행 호주제와 호적제에서 지적되었던 비판을 수용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기존 호주제에서 차별을 야기해온 여러 요소들을 형태만 바꾸어 계속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행 호적부보다도 개인정보 보호에 더욱 치명적일 수 있는 형태의 증명서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는 법무부의 ‘국적 및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안)’이 성평등, 개인정보 보호, 다양한 형태의 가족차별 금지 등의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못함을 밝히며, 이를 강력히 비판한다.
첫째, 법무부 안은 새로운 법률의 주무부처를 법무부 자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수사기관인 검찰을 지휘하는 기관임과 동시에 인권침해에 앞장서왔던 과거의 행적을 놓고 볼 때 과연 법무부가 새로운 신분증명제도의 주무부처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호주제 폐지 및 새로운 신분증명에 관한 논의를 할 때마다 법무부가 취했던 행위는 인권존중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성평등, 개인정보 보호, 다양한 형태의 가족차별 금지에 관련해서 법무부는 그 동안 수준 이하의 인식을 보여주었다. 법무부의 안은 더욱 강력한 국민감시와 통제의 틀을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더구나 법무부가 광범위하게 수집한 국민의 개인정보를 하부기관인 검찰이 수사에 사용한다면 이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검찰을 빅브라더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법무부 안은 ‘개인별 신분등록제도’를 도입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본적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등록준거지를 신설하는 등 사실상 호주를 중심으로 ‘가(家)별 편제방식’을 취하는 현행 호적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법률명에서부터 ‘가족관계의 등록’에 주안점을 맞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적취득자는 본(本)을 정하도록 하고, 모든 국민들이 ‘본적’ 개념과 유사한 ‘등록준거지’를 정하도록 하는 등, 가(家)별 편제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 호적법에서나 필요한 요소들을 새로운 법제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 가족 구성원의 모든 인적사항을 보여주었던 기존 호적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해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이 부분에 대해 전혀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 가족을 통해야만 개인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구태의연한 법무부의 발상은 결국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보호하기는 커녕 이들에 대한 차별을 불러일으키고 말 것이다.
셋째, 법무부안에는 여전히 개인정보를 크게 침해하고 있다. 법무부 안은 ‘국적및가족관계등록부’를 기본으로 두고, 여러 증명서들을 각기 다른 형태로 발급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증명원의 목적에 따라 기록 내용들이 보여 지고 발급된다고 하나, 이는 기본적으로 모든 자료가 통합되어있는 단일한 정보 축적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논리이다. 게다가 법무부의 안에서 각 증명서들은 현재의 신분상태뿐만 아니라 그 변동사항까지도 한눈에 드러나도록 기록하고 있다. 특히 가족증명서에는 본인을 비롯하여 부모 및 양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및 자녀의 개인정보를 모두 수록하며, 심지어 기본증명서, 혼인증명서, 입양증명서, 가족증명서의 내용이 모두 담겨있는 ‘상세증명서’까지도 별도로 만들어두고 있다. 진학이나 취업 시에 당연하다는 듯이 과도한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가족증명서로도 모자라 상세증명서까지 만들어두는 것은, ‘신분관계’가 얼마나 민감한 개인정보이며 심각한 차별을 야기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법무부의 수준을 드러낸다. 더불어 수사업무를 지휘하는 국가!
기관인 법무부가 전 국민의 신분등록정보를 수집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아직 권위주의 정권의 역사가 완전히 청산되지도 않았고, 국민들이 공권력의 감시 속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위협적인 사안이 되기에 충분하다.
넷째, 자식이 모의 성을 따를 경우, 취지 및 사유를 담은 신고서를 작성하야 하는 것은 성평등에 어긋나고 출생신고 과정에서 혼인 중인 자와 혼인 외의 자를 구별하여 신고하는 것도 차별을 자아낼 수 있다. 개정 민법의 취지를 볼 때 자식의 성을 모의 것으로 하는 합의가 있을 경우 이를 혼인 신고 시에 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출생신고 과정에서 또다시 이에 대한 사항을 신고할 필요는 없다.
이상과 같은 법무부의 안의 문제점으로 미루어볼 때 공동행동은 법무부가 신분등록제도에 대한 논의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오히려 더 후퇴시키고 있다고 판단한다. 공동행동은 법무부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 수준을 신뢰할 수 없으며, 성 평등한 사회 건설에 대한 의지를 신뢰할 수 없으며, 인권이 존중받는 발전적 제도를 구축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신뢰할 수 없다.
공동행동은 법무부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다.
하나, 과거의 권위주의적 역사로 회귀하려드는 법무부는 현재 입법 추진 중인 ‘국적 및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당장 철회하라!
하나, 법무부는 새로운 신분등록제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원칙부터 다시 사고할 것을 촉구한다!
2005년 11월 25일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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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