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명 서 >
반인권적 학도호국단 운영을 즉각 중단하라!
–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 각하와
교육부의 정보 비공개 방침을 강력 규탄한다.
지난해 6월 교육부의 학도호국단 운영에 대해 한 학생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접수번호 05-0002310)을 냈다. 진정의 요지는 “당사자인 학생이나 보호자인 학부모의 동의 없이 편성, 운영 중인 학도호국단은 헌법 제 11조, 유엔 <아동의 무력분쟁 관여에 관한 선택의정서> 제 1조를 위반한 인권침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그 진정 사건에 대해 3월 30일 각하 결정을 통보하였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각하 결정문과 4월 6일 진정인과의 통화에서 학도호국단이 현재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전시대비 계획으로서 가까운 시일 내에 시행될 가능성이 없어, 국가인권위원회 법에서 규정하는 국가기관의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한다고 말했다. 이는 교육부의 불법적이고 반인권적 학도호국단 운영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형식적인 이유로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학도호국단은 1949년 처음 설치된 이래 폐지와 부활을 거듭하다 지난 85년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이었다. 그러다 지난 2001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교육부가 학생 당사자나 보호자 동의 없이 비밀리에 학도호국단을 불법 편성·운영하고 있음이 드러난 바 있다. 지난해에 드러난 ‘전시 학생호국단 운영 계획’ 문서는 당사자인 학생들의 동의 없이 학생들을 전시에 동원하도록 학생들에게 준(準) 군사번호를 부여, 군사조직으로 편성토록 지시하는 내용과 좌경 교사와 학생을 격리시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학도호국단 운영 계획 자체가 국제인권조약 위반이다.
인권위는, 각하 결정의 이유로 지금은 전시가 아니므로 문서상의 학도호국단 운영에 의해 현재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18세 미만 청소년을 비밀리에 전쟁에 동원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것은 이미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이는 청소년들이 반인권적 상황 속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2000년 유엔에서 채택된 <아동의 무력분쟁 관여에 관한 선택의정서> 1조는 “당사국은 18세 미만의 군대구성원이 적대행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기 위해 실행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이는 91년부터 한국도 적용을 받고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 38조(“(전략)당사국은 무력분쟁의 영향을 받는 아동의 보호 및 배려를 확보하기 위하여 실행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에도 위배된다. 학교는 군대와는 반대되는, 인권의식을 학습하고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처럼 학교를 준군사기관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과거 일제치하나 군사정권 시절을 연상시킬 정도다.
당사자의 사전 동의 없이 비밀리에 학도호국단을 운영해 왔다는 것도 심각한 인권침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12조는 청소년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있어 청소년은 스스로를 대변할 권리가 있고 당사국은 그것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청소년 당사자의 사전 동의도 없이 그들을 전시 학도호국단으로 편성해 놓고 있다. 이는 정부가 시민을, 특히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정부는 청소년을 하나의 선택권을 가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전시에 얼마든지 동원될 수 있는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소위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참여정부’ 시대에도 이러한 반민주적인 행태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좌경’ 교사의 동향을 철저히 파악하고 좌경 교사나 “순화가 곤란한” 학생을 전쟁이 일어나는 즉시 다른 학생들로부터 격리한다는 내용 역시 학생과 교사에 대한 평시 사상검증이나 비밀감시가 이루어져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비록 지난해 교육부가 이 내용을 삭제했다고는 하나, 학도호국단이 운영되는 한 전시를 대비한 평시 비밀감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가 형식적인 이유로 인권침해의 현재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학도호국단 운영 자체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내놓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보 비공개는 당사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
더군다나 진정인이 국가인권위를 상대로 낸 학도호국단 운영 관련 문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도 국가인권위는 얼마 전 교육부의 비공개 요청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결정을 통보해 왔다. 교육부는 이번 진정사건을 조사한 국가인권위에도 핵심 문서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의적으로 규정된 ‘국가기밀’을 방패삼아 시민의 인권과 직결된 전시동원 계획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교육부의 태도는 학생 당사자는 물론, 전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비록 교육부가 지난해 문제가 되었던 내용은 모두 삭제했다고 말하기는 하나,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학도호국단 운영 계획에 또 다른 문제는 남아있지 않은지 학생 당사자와 시민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만약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면 학도호국단이 운영되는지 여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자신들의 불법적이고 옳지 못한 행위를 은폐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거센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학도호국단 운영에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교육부의 태도에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학도호국단 운영 자체가 명백한 잘못임에도 당장의 실질적 침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각하 결정을 내린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국가인권위의 인권의식 수준에 의문을 품게 할 정도이다. 이는 국가인권위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인권문제에 대처할 뿐이며, 인권침해를 예방하거나 잠정적 인권침해를 뿌리 뽑을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위가 정말 인권을 생각한다면, 설령 진정은 각하처리 하더라도 학도호국단에 대한 별도의 권고나 의견을 교육부에 표명해야 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 인권 외면 말고, 즉각 학도호국단 운영 중단을 위한 대처 방법을 강구하라!
교육부는 불법적 학도호국단 운영을 즉시 중단하라!
2006. 5. 3
광주인권운동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은평구위원회 청소년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부산인권센터, 불교인권위원회, 새사회연대, 인권교육을위한교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발전하는학생회 가자, 인권운동사랑방, 전주청소년인권모임,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평화인권연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희망사회당 청소년자치위원회(준), 희망사회당 학생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