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결혼식에 가면 행복한 부부를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도 어느 순간엔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까. 이성애적 결합과 정형화된 예식문화에 일단은 따분한 기분부터 드는데도 나의 어떤 부분은 예식이라는 그 경건한 분위기 속에 끝내 항복하고 젖어들고 만다. 첫사랑이 결혼할 때도, 친구들이 내 마음에 들기도 하고 때론 성에 안 차기도 하는 남자들과 하나둘씩 결혼할 때도 식장에서 눈물이 났다.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함께했던 동료 중에도 남자와 결혼한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 식장에서도 난 (단지 배신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소망으로 눈물이 났을 것 같다(결혼식에 초대받지는 않아서 경험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이쯤 되면 그냥 내가 눈물이 많은가? 아니, 나처럼 우는 사람 분명히 더 있겠지? (그쵸, 여러분?!)
지난 9월의 어느 특별한 결혼식에서도 코끝 찡해지고 말았다. 우리 상담소 회원인 ♡고망님과 제이님의 결혼식♡이었다. 상담소 사무국 활동가인 적분, 시녕과 같이 간 자리였는데, 아마 회원분들이 더 계셨다면 나처럼 뭉클해하셨으리라 생각한다. 그 아름답던 결혼식 현장을 부족한 글로나마 스케치한다.
9월 25일(일) 오후, 깊어지는 가을을 알리는 화창한 날씨에 ‘하늘도 축복하나 보다’라고 의미부여하며 들뜬 마음으로 예식장으로 향했다. 로비에 들어서니 ‘와 진짜 결혼식이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커다란 예식홀의 로비에서 하객을 맞이하는 양가 부모님, 멋진 예복을 갖춰 입은 주인공들, 그들을 축하해주는 수많은 하객들, 열심히 그 모습을 담아내는 사진사… 예식의 주인공들이 신부(여)와 신랑(남)이 아닌 ‘신부들’이었다는 점을 빼면 여느 결혼식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이전에 가본 퀴어 결혼식은 가령 호텔 룸을 빌리고 소수의 친구들 앞에서 언약식 정도의 간소화된 절차로 진행되곤 했다. 그 소박함에서 전해지는 애틋함과 진심도 물론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결혼식은 그 규모나 형식 면에서 확실히 다르달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신기하고 감개무량해서 로비에서부터 마음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소수자의 삶이 온당히 존중받기 위해서는 보통과 보편에 속하지 않는 ‘비정상성’을 문제시하는 잣대에 대항하는 운동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예컨대 결혼식을 하지 않는 선택도 소중하다는 인식이나 일대일 결합이 아닌 다른 방식의 가족 구성도 가능하다는 목소리와 같이.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만큼이나 왜 소수자에게는 ‘보통’과 ‘보편’의 일상이 자동적으로 배제되는지를 묻고 이에 대항하려는 노력, 우리가 누리지 못할 거라고 너무나 당연시되는 그 평범한 일상을 누려보려는 흐름도 중요하지 않을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세상의 벽을 문제시하며 마침내 그 벽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꾸자꾸 담장을 넘어 침입하고 틈을 내려는 시도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언뜻 ‘평범한’ 결혼식장처럼 보이는 로비 풍경이 그런 점에서 더욱 색다르고 각별하게 다가왔다.
로비에서 두 신부들과 사진을 찍고 부푼 마음으로 식장 안에 들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객석은 둥근 원탁으로 되어 있었는데,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듯 상담소 회원인 미율님—고망님과는 상담소에서 ‘시작은 책읽기’ 소모임을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과 그 애인분을 만나 동석하게 되었다. 또 유튜브 채널 <레즈커플 고망튜브>의 구독자 초청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소피아님과 영화님 커플도 자리를 함께했다. 어린 자녀와 함께 가족 단위로 앉거나 남녀가 어울려 앉은 좌석도 있었지만, 우린 그야말로 여성 성소수자로만 구성된 테이블이어서 금세 담소를 나누며 편해졌다.
어머니들이 화촉을 밝히며 시작된 예식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웠다. 제이님의 반려견 ‘자몽’이 들러리로 나선 입장 장면도 어찌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인계되는 ‘순결’을 상징하는 ‘버진로드’의 가부장적 의미를 벗어나 소중한 반려견과 함께 귀여운 입장을 만들어낸 신부들의 재기에 다시금 감탄했다. 성혼선언문은 하객들이 다 함께 낭독했고, 축사는 제이님의 중학교 시절 미술학원 선생님과 고망님의 오랜 절친이 맡는 등 예식의 모든 순간순간을 아기자기하면서도 의미있게 꾸렸다는 게 와닿았다.
무엇보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온 가족의 축복 속에서 식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고망님과 제이님의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아마도) 친척들은 모두 밝고 환한 얼굴로 예식에 함께해주고 계셨다. 예식 후 식사시간에는 신부들과 함께 테이블을 돌며 인사도 나누어주셨다. 나도 애인과 ‘(현재 관심은 없지만) 만약 우리가 결혼식을 하면 부모님과 친척들이 참석해서 축복해주실까?’ 진지하게 대화해보았는데, 확신할 수 없었다. 나와 애인은 십몇년째 함께하고 있는 장기 연애 관계다 보니 서로의 부모형제 집에 인사를 가고 생신모임과 같은 가족행사에 함께할 일도 종종 있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의 ‘식구’가 되는 데는 다종다양한 어려움과 부침이 많다. 더군다나 결혼식이라니, 그건 너무나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이런 결혼식이 성사되기까지 고망님과 제이님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때론 다투고 화해하기도 하며, 또 웃고 울며 큰 애를 썼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한 동시에, 두 신부가 정말 대단하고 의지 굳은 이들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두분의 결혼식에 가족이 참석한 것은 무엇보다 두분에게 뜻깊은 일이겠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다른 소수자들과 하객들 모두에게 큰 에너지이자 의미가 되는 것 같았다. 성별도 정체성도 가족형태도 다 다른 하객들이 끊임없이 보내는 진심 어린 박수와 환호에, 그리고 기쁘고 뿌듯한 표정을 머금은 가족들의 모습에 나 역시 큰 힘을 얻었다. 두분과의 얕은 인연으로 참석하게 된 내가 다 위로받는 느낌, 응원과 지지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신부들과 부모님이 맞절을 할 때 어찌 코끝 찡해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이런 결혼식에 더 자주 초대받고 싶다. 신부들이 지혜롭게 살뜰하게 준비한 결혼식, 참석한 모든 하객이 진심으로 함께 웃고 울고 축하할 수 있는 결혼식, 변함없이 서로를 아끼고 위하겠다는 언약이 경건하게 빛나는 결혼식. 레즈비언으로 살아오면서도 미처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진 못했던 ‘온 가족의 축복 속에 이루어지는 결혼식’을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 또 얼마나 다양한 결혼식이 가능할까도 궁금하다. 여러 인권 의제들이 결합해서 마치 인권선언식처럼 거행되는 거창한 결혼식은 어떨까, 예전처럼 신나게 치르는 집단 비혼식(?) 같은 이벤트도 또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떤 또다른 신박한 결혼식이 있을까. 어떤 자리든 또 한국레즈비언상담소를 초대해주시기를 바란다. 내 축복의 눈물샘도 언제나 준비되어 있을 거다.
나루(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
※고망, 제이 결혼식의 식전 영상과 식중 영상 등을 <레즈커플 고망튜브>에서 함께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c/%EA%B3%A0%EB%A7%9D%ED%8A%9C%EB%B8%8C/featu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