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님, 답변을 드립니다.

지렁이 님, 상담원입니다. 

 

다른 어떤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상담이 많이 지연된 바에 대해 먼저

사과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2월 하순 즈음 글을 남기셨는데

그 뒤로 달이 바뀌고 계절이 달라졌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고 말았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적으신 사연은 거듭 꼼꼼히 잘 읽어 보았습니다.

본격적인 연애의 모색을 삼십대에 접어든 뒤 시작하셨군요.

 

몇년 전 

나도 연애를 해 보자고 마음 먹고 노력하기 시작해서

삼십대 중반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자 남자 불문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는 경험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경험을 해 오셨네요.

 

그런데

남자에 대한 마음이 상대적으로 분명한 연애 감정인 것과 달리

여자에 대한 마음은 좀 더 복잡하고 그만큼 감정도 더 격렬하게 터져나와

과연 내가 여자를 정말 좋아하는 게 맞나

내가 여자와 진심으로 교제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싶으시고요.

 

상담원은 일단 

본인의 성격 때문에든

유년 시절의 상처 때문에든

부모님의 단속 때문에든

연애를 미처 시도해 보지 못하던 시절을 헤치고 나와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본인이 진짜로 바라는 관계란 어떤 건지

열심히 궁리하고 탐색하시는 지렁이 님 모습이

정말 근사하고 훌륭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익숙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기가

왠지 더 저어되고 겁이 나기 마련인데

지렁이 님은 마치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며

그간 놓친 기회들을 벌충이라도 하듯

서슴없이 사랑에 빠지고

주저 없이 솔직하게 고백하시는 듯 해서요.

용감하고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세로라면

인연도 금세 만나게 되실 것 같고

지금으로서는 누군지 모를 그 사람과 

후회없이 사랑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에너지가 많으신만큼 말입니다.

 

하지만

만일 여자에 대한 자기 감정이

힘차다 못해 집착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하다면

그게 상대방과 지렁이 님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마음 다스리는 법을 스스로 마련하셔야 할 것 같아요.

 

어쩌다가 그렇게 격렬하고 폭력적인 감정들을 품게 되었는지 (혹은 되는지)

자기 마음 움직이는 모양과 방향을 한 번 쯤

세심하게 들여다 봐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사랑이라는 감정,

이끌림이라는 감정에는

평온하고 따스하고 긍정적인 빛깔의 마음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선망, 질투, 증오, 분노, 집착, 소유욕 등의 부정적인 빛깔의 마음도

자주 연루되곤 해요.

 

가령

나를 잊고 몰두하게 되는 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낭만적이지만 

분명 자기 파괴적인 요소 또한 가지고 있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내 것으로로 만들고 싶어하고 가두려 하면서

상대방에게 폭력적으로 구는 사랑이란

사랑이란 이름 자체가 무색할 만큼

양자 모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 겁니다.

 

저는 지렁이 님이

여자를 좋아하는 경험들 가운데서

스스로 포착하신 자기 마음 속 부정적인 감정의 조각들을

심리상담 전문가들과 함께 들여다 보는 작업을 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왜 나는 여자에게 매혹되면서도 그녀들을 못 견뎌하고 질투, 집착, 파괴욕구에 사로잡히는가?

왜 나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동시에 자괴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고통받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 보면서 상담가와 더불어 살펴보는 겁니다.

마음의 작용 과정 중 어떤 부분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깊이 탐구해 보는 거죠.

 

그 부분을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시면

여자에 대한 감정도 보다 온전히, 안전히 느끼게 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당장 누굴 사귀어서 

내 파괴욕구나 격렬한 감정 동요가

어떤 반응을 일으키나를 살펴보는 시도보다는

느긋하게 인연을 기다리되/찾되

그러는 동안 자기 마음을 돌보는 작업을 해 보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봐도 좋겠다 싶으실 경우 

성적지향/성정체성을 토대로 한 차별이나 편견없이

성소수자 친화적인 상담을 제공하는

아래 두 곳의 문을 두드려 보시기를 권합니다.

 

두 곳 모두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게이,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저마다의 모습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한 명 한 명의 경험의 결을 존중하는 쪽으로

심리 상담 지원을 하는 기관이므로

그 점에 관해서는 믿고 문의하셔도 됩니다.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

http://traumahealingcenter.org

 

별의별 상담소

http://www.878878.net

 

아무쪼록 자기 감정에 대해

여유를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살펴보는

그런 기회를 꼭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당장 연애부터 시작하지는 않는다 해도

관련 정보들은 손에 많이 쥐실수록 

본인에게 도움이 될 터이므로

다음 링크에 게시돼 있는 웹사이트들을 방문해 
두루 둘러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http://lsangdam.org/link/커뮤니티/

 

해당 사이트들을 통해
모임 광고, 업소 광고, 단체 홍보, 행사 홍보들을 만나실 수도 있고

그곳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성격의 게시판들을 통해

지역별, 연령별, 취미별, 직종별 (기타 여러 요소별) 로 

가입자들과 친목을 다질 수도 있습니다.

채팅이 가능한 곳도 물론 있습니다.

청주, 대전 쪽의 모임이나 업소 정보 또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또 게시물들을 토대로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성기구의 판매나 대여 등에 대한 정보 역시

이용자들간의 정보 공유 혹은 배너 광고 등으로

어렵지 않게 얻게 되실 거고요.

 

상담원은 다만 섹스 토이 등의 성기구는

가급적 대여나 공유를 하지 않으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성기구란 대개 몸 안팎을 드나들어야 하는 기구들인 만큼

위생과 청결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여나 공유의 과정에서 아무래도 소홀해지기 쉬운 부분이죠.

되도록이면 품목들을 온라인 상에서 잘 살펴 보시고

관심이 많이 가는 것들 중 선별하여 구입하셔서 사용해 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상담원이 드린 정보들이

지렁이 님의 자아 탐색과 연애 모색에

두루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레즈비언으로 정체화 하게 되시던

바이섹슈얼로 정체화 하게 되시던

정체성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 중

새로운 고민이 생기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다시 이곳 찾아 주세요.

 

아,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이신 성정체성 테스트 내용 말입니다.

대개 인터넷에 떠도는 심리 테스트, 성격 테스트, 정체성 테스트들은

그냥 가볍게 재미삼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진지하게 생각하셔야 할만큼 

신뢰도 높은 자료가 아니니까요.

 

그럼 오늘 답변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상담원이었습니다.

 

201403H18

 


상담소 1

댓글 1개

지렁이님의 코멘트

지렁이
오우~
정말 그야말로 '상담'게시판이네요.
이렇게 세심하게 얘기해주시고.
사실 글올리고 나서 얼마있다가 공지에 올려놓으신 글을 보고,  직접 찾아볼 수 있겠고 그래야겠다 싶어. 수고도 덜어 드릴겸해서 글을 내리려고 생각했었는데, 깜빡하고 이제 왔더니 이미 이런 정성과 수고를 들인 이야기를 해 주셨네요.
알려주신 정보들도 좋지만, 그보다 이렇게 사랑을 가지고 관심을 주신것이 좋고, 위안이 되고 힘이 될것같고, 또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공부가 될것같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