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카 님, 답변을 드립니다.

즈카 님, 상담원입니다.

지난 달 하순에 글을 남기셨는데 벌써 오월도 한창입니다.

답변을 너무 오래 기다리시도록 한 거 같아요.

상담 지연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해요.

 

짧지만 강렬한 사연 잘 읽어 보았어요.

 

상담원은 우선 즈카 님이

본인의 성정체성에 대해 당당하신 거 같아

정말 반갑고 다행스럽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제목인 “올해로 열다섯인 레즈비언입니다” 에서도,

사연 첫줄인 “레즈비언이며 현재 여자친구가 있습니다”에서도,

즈카 님 스스로 가지고 계신 자긍심과 확신이 느껴져서

어쩐지 흐뭇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친구 한명에게 커밍아웃을 했으나

그리 좋은 반응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로 커밍아웃을 하셨는지

그 친구는 뭐라고 하며 어떤 제스쳐를 취한 건지

이후 그 친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궁금하고 마음이 쓰이네요.

 

그 경험을 한 뒤로 커밍아웃이 망설여지신다니

혹여 상처를 많이 받으셨나 싶어

속상하기도 하고요.

 

커밍아웃은 

내가 하고 싶은 상대에게

내가 하고 싶은 때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포인트는 내가 믿는 사람,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한다는 데 있어요.

 

그리고 꼭 염두에 두셔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날 잡고 마주 앉아 나 레즈비언이야, 하고 말하는 게

커밍아웃의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우리 사회는 아직 동성애에 대한 이해도가 대체로 많이 낮은 편이지요.

동성애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람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혐오하고 보는 사람들을 마주치기가

더 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정보도 많이 없고 이해도도 많이 떨어지는 상황인만큼

꼭 동성애자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사람이라 해도

동성애자인 친구, 가족, 지인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서툴기 그지 없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커밍아웃이란 한 순간의 선언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나와 내가 커밍아웃한 상대가 새롭게 관계를 맺어가는 

꾸준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동성애에 대해 

잘 이해 못하는 게 있으면 가르쳐 줘야하고

나한테 서운하게 대하면

왜 그러는지 같이 살피고 넘어가야 하고

궁금해 하는 게 있으면 하나하나 설명해 줘야 하지요.

 

내 연애가 시작되고 끝나는 과정

내가 이반 친구들과 어울리며 꾸려가는 삶의 방식 등을

상대방과 조금씩 조금씩 공유하며 접촉면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도

상대방이 새롭게 이해해야 할 요소들이 끊임없이 생겨날 거고요.

 

그 과정들을 기꺼이 헤쳐 나가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단단히 먹어질 때

그리고 내가 그 마음을 먹고 다가갈 만큼

상대가 나에게 중요하고 귀한 사람일 때

그 때 그 사람에게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부모님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까다로운 커밍아웃 상대일 수도 있지요.

자식인 내 인생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분들일 터이고

두 분은 현재 법적으로도 미성년자인 즈카 님의 보호자이니까요.

 

두 분이 동성애를 그리 좋게 보지 않으신다면

커밍아웃 이후 부모님이 보이실 반응들을 다각도로 예상해서

각각의 상황에 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 둔 뒤

커밍아웃을 하셔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시기도 현명하게 조율하시기를 권해요.

지금 당장 밝히고 부모님을 설득해 나갈지

내가 자립할 기반을 닦고 더 이상 부모님 슬하에 살지 않을 때

그 때 말을 꺼내는 게 나을지

즈카 님 가족 상황 및 부모님 성격 등을 잘 고려하셔서

결정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나저나

상담원은 즈카 님과 좀 더 상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즈카 님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면 알 수록

상담도 더 자세해질 수 있답니다.

 

안 좋게 결론이 난

첫번째 커밍아웃에 대한 하소연도

동성애를 별로 안 좋게 보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즈카 님과 보다 속속들이 나눠보고 싶어요.

 

언제 여유될 때 다시 한 번 글 남겨 주시지 않겠어요?

전화를 주셔도 되고요. (상담전화: 02-718-3542 / 월-금 오전 10시-오후 6시)

우리 이렇게 서로 대화의 물꼬를 텄으니

앞으로도 쭉 같이 이야기 해 나가도록 해요.

 

그럼 즈카 님이 혹여 필요할 경우

부모님께 소개해 드릴 만한

성소수자 가족 모임 두 곳을 알려드리면서

오늘 상담은 짧게 마무리 할게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http://chingusai.net)

성소수자 가족모임

http://chingusai.net/xe/family_gathering

 

동성애자인권연대 (http://www.lgbtpride.or.kr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모임

http://cafe.naver.com/rainbowmamapapa/30

 

이런 모임들을 잘 활용하시면

부모님이 두 분끼리서만 고민하지 않으셔도 돼서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다른 데는 눈치 보시느라 편히 말 못하셔도

비슷한 처지의 부모와 가족들이 모인 곳에서라면

당신들 사연도 보다 쉽게 털어놓고 대화에 참여하실 수 있겠지요.

 

물론 저희 상담소를 알려드려도 좋아요.

저희는 즈카 님 같은 이반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 상담도 진행한답니다.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즈카 님과 부모님이 다 같이 저희 상담소를 찾아

면접 상담을 해 봐도 좋고 말이죠.

 

상담원이 드린 말씀들이

즈카 님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더 많은 이야기 상세히 나누게 되길 바라며

이번 상담글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상담원이었습니다.

 

201405H12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