삥꾸 님, 답변을 드립니다.

 

삥꾸 님, 답변이 많이 늦었습니다.

지난 달 중순에 글을 남기셨는데 벌써 유월도 한창이네요.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여자친구와의 교제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이

몹시 격렬하게 반대하실 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서 두 분의 교제를 금지하고 있다 적으셨는데

몇 주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어떤가요.

 

혹여 계속 부모님의 험한 말이나 매질에 시달리고 계신 건 아닌지

만나지 못하는 여자친구와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일상 생활은 괜찮은지

두루 마음이 쓰입니다.

 

외국에 계시다고 말씀하셨는데 외국 어디에서 살고 계시는지요.

 

나라마다 지역마다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동성애자를 비롯한 여러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일 경우

삥꾸 님이 지역 사회에서 도움 받을 길이

있을 터이거든요.

 

그렇게

상대적으로 환경이 좋은 상황이라면 

동성애자인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모임이라던가

부모님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동성애자 당사자를 지원해 주는 상담 프로그램 같은 게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 상담글을 보시거든

다시 한 번 이곳 게시판에 사연을 남겨

살고 계시는 국가/지역에 대해 상담원에게 알려주세요.

해당 지역에 관련 단체 및 기관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만일 지역을 적을 때

삥꾸 님과 가족의 신상이 드러날 게 걱정된다면

글을 비밀로 잠그어 올리시면 된답니다.

 

꼭 다시 연락 주셔야 해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기독인들도 기독인 나름이라

동성애라면 절대 죄악으로 여기고 반대하는 목사님들이 있는 한편

당신 자신이 동성애자인 목사님도 있고

동성애자 이성애자 가리지 않고 교인이라면 모두 평등하게 대하는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목사님도 있는데요.

 

삥꾸 님 아버지는 앞의 경우에 속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렇게 결사 반대를 하시면

자식 입장에서 그 뜻을 거스르며 원하는 대로 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조금이라도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미가 보이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꾸만 움츠러드시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꼼짝 못하는 상황 속에서

삥꾸 님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하실지요.

여자친구는 또 얼마나 보고 싶고요.

 

이해해 주신다는 여자친구 가족 분들께

삥꾸 님 부모님을 만나 설득해 봐 주시면 어떻겠나

부탁을 해 볼 수도 있겠지만요.

 

자식을 어떻게 기르는가에 대해

남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한다는 사실에

삥꾸 님 부모님이 오히려 더 노하시는 건 아닐까 싶어

그 방법을 쉽게 권해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삥꾸 님 부모님의 입장에서 보면

안 그래도 그 집 자식이 내 딸한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 못 만나게 하는 건데

그 부모까지 나서서 뭐라고 한다고

불쾌해 하실 수 있는 법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역효과만 나겠지요.

 

삥꾸 님이라도 여자친구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며

그 분들로부터라도 지지받는 경험을

하실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여자친구와도 못 만나고 있는 사정이니

여자친구 가족들과 만나는 건

당장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감시망이 좀 풀리면

그때라도 여자친구 가족들을 만나

두 분이 커플로서 인정받는 자리를 가져 보시면

어떨까 해요.

 

지금은 일단 부모님께 저희 상담소를 소개해 드려 보는 게 어떨까요?

 

홈페이지를 알려 드리고 저희에게 부모님의 고민을 털어 놓도록 권해 드리는 거에요.

상담소는 동성애자 당사자 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가족과 지인들 상담도 한답니다.

당사자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걸 궁극적인 목표로 하여 상담하지요.

가족-지인으로서 겪는 갈등과 고민을 기본적으로 다루면서 말이에요.

 

부모님도 어디 가서 쉽게 털어놓지 못할 사연일 터이니

말할 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면

반가우실 수 있어요.

우리 딸이 대체 왜 이러는 거냐 하소연 하시고 싶어서라도

여길 찾아 오실 수 있답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 대한 정보를

부모님께 꼭 드리셔요.

 

직접 말로 꺼냈다가는 또 난리가 날 것 같다면

홈페이지 주소,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부모님이 늘 보시는 곳에 놓아두어 보셔도 좋을 거예요.

 

상담소 홈페이지 보시면 <고민있어요?> 항목에

“성소수자의 가족과 친구”를 위한 글들이 몇 개 있으니

그걸 보시라는 메모를 곁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담소 > 고민있어요? > 성소수자의 가족과 친구

바로가기 http://lsangdam.org/faq/성소수자의%20가족과%20친구/

 

그런데 사실 상담원은 부모님이 

삥꾸 님의 동성 교제 사실을 아시자마자

다짜고짜 폭력을 휘두르셨다는 부분이 마음에 계속 걸리네요.

동성애, 동성 교제가 삥꾸 님과 부모님 사이에 화제로 오르기만 하면

그런 폭력 상황이 또 발생할까봐서요.

 

강제로 치료를 받게 하려고 하신다거나

집에 가둬 버린다거나 하는

초강수를 부모님이 두시고자 마음 먹으면

삥꾸 님은 속수무책 당하기 쉬운 처지이니

정말 걱정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삥꾸 님이 부모님 슬하를 벗어나 자립할 때까지만이라도

부모님 말을 알아들은 척 

동성애자 아닌 척

여자친구도 더 이상 안 만나는 척

그렇게 숨죽이고 살면서

부모님의 간섭을 피하는 게

현명한 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대화의 여지 없이

폭력부터 나온 상황이니

당장 말로 설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거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요.

 

그렇게 만일 좀 몸을 낮춰서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보자는 전략을 쓴다 해도

삥꾸 님은 계속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걸 바꿀 필요 없어요.

잘못되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잘 알고 계시지요?

 

여자친구와도 요령껏 어떻게든 비밀리에 만남을 지속해 나가고

삥꾸 님과 삥꾸 님의 교제를 지지해 줄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늘려나가셔요.

 

삥꾸 님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부모님과 부딪쳐 나가는 과정에서도

큰 힘이 될 거거든요.

 

살고 계시는 곳에 그런 모임이 있다면 참 좋겠는데요.

지역에 따라 운이 좋으면 기독인 동성애자 모임도 있을지 모른답니다!

삥꾸 님이 부모님과 어떻게 이야기 해 나가면 좋을지

본인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많은 도움을 줄 사람들이

바로 그런 모임에 있을 터이고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상담원이 같이 알아 봐 드릴테니

어디서 살고 계시는지에 대한 정보를 담아

한 번 더 글 남겨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그리고 앞으로 

부모님과의 갈등이 어떻게 풀려나가는지

혹은 어떻게 심화되는지

상담소에 이따금씩 알려주시지 않겠어요?

폭력적인 상황이 계속되면 그걸 막기 위해

보다 본격적인 조치를 취할 길을 고민해 봐야 할 거 같아서요.

 

여자친구와 예전처럼 만나지는 못한다해도

몰래 하는 연락을 통해서나마

서로 애틋한 마음 잘 이어가시기를 바라며

오늘 답변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연락 주시기를 기다릴게요.

 

20150606H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