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서 올려주신 두 번 째 상담글 잘 읽어보았어요.
첫 번째 글, 두 번째 글 모두 읽어보면서
님의 고민 속 많은 부분에
상당 수 레즈비언들도 공감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답니다.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분들이 님처럼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레즈비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성애자 여성들에 비해 어떤 안정감이나 편안함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이십대는 자유롭게 연애하고, 사랑하고, 즐겨도 되는 나이라면
삼십대는 자신의 인생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결혼을 통해
이후의 삶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준비를 시작하는 나이로
생각합니다.
님께서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무언가 부족한 사람처럼 취급당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불안함 때문인 것도
님이 이러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감정이겠지요.
님께서 하고 있는 결혼에 대한 생각들, 불안감이
그저 추상적인 불안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말씀하신 부분에
깊이 공감합니다.
님께서는 여자를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님이 계속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한,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살지 않는 한,
님께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스트레스를 주고
끊임없이 님을 모자라거나 어딘가 부족한 사람 취급을 할 것이랍니다.
님께서는 이런 스트레스를 감당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것인지
이성애자 행세를 하면서 '안정감'을 추구할 것인지
그 혼란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님께 필요한 것은 결국
안정적인 결혼생활이나 이성애자 여성의 삶이 아니라
"당신은 꽤 괞찮은 사람이에요"라거나 혹은
"당신은 지금 잘 해나가고 있어요"라는 주위 사람들의 지지가 아닐까요?
님은 자신이 느끼기에도 모자람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 또한
님이 모자람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것이 분명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정말 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성애자만이 완벽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우리 사회에 있는 것이라면
님이 굳이 그 사회에 맞추어 살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님께 도움이 될 만한 방법에 대해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았어요.
님께서는 그 사회에 완벽하게 속해 있는 사람들 외에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얘기를 나누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 해요.
적어도 님과 같이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님이 '남자와 결혼하는 상상'으로 얻는 위안보다는
더 친밀하고, 님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로 같은 고민을 하고, 서로의 고민에 대해 들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얼만큼 어느 정도로 친밀하게 지속적으로 있는가는
그 사람의 고민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s님.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
사람들에게 혼란이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님께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믿음이나 신뢰가 많이 깨졌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혼란스러워 하시는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렇게 상담소를 찾아 글을 남기시는 행동은
사실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님께 아직 많은 자신감, 신뢰, 내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용기가 남아 있다는 증거이죠.
님께서 자신을 믿고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님께서 하루 빨리 이런 불안감에서 벗아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님께서 혼란스러워 하신 부분에 대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5.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