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님, 답변 드릴게요.

번개님, 반갑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시라고요.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부모님이 동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하신다고요.
번개님, 상담소에 방문하시길 정말 잘하셨어요.

먼저,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번개님 예전에는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나 이 고생인가 싶어서
젖가슴을 주먹으로 패기도했다고 하셨죠.
남자로 성전환 수술이라도 할까 고민도 많이 했다고요.
요새 들어서는 현실을 이해하기로 하셨다고 했는데요.

몇 가지 여쭈어보고 싶어지네요.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남자처럼 되고 싶었던 것인가요,
아니면 젖가슴을 비롯해 자신의 신체 자체가 싫었기 때문인가요?
그런 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정말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젖가슴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젖가슴이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사실 알고보면 자신의 신체에 대해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자신의 성격이 남성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남자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신체의 여성적인 특성들에 불만을 갖기도 하고,
반대로 여성적으로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보다 여성스러운 몸을 갖기를 원하기도 하지요.
그런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성형수술을 하기도 해요.

그리고 어떤 경우는,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죠.
자신의 육체를 꼭 바꿔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고 판단하는 경우
성전환 수술을 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그런 결정은 아무 때나 갑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고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느낌들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정보를 얻는 과정을 거친답니다.

그런데 번개님의 경우는,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그렇다면 자신의 몸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누구나 자기 신체에 대해 못마땅한 면들이 있을 거예요.
특히 여성을 사랑한다면, 남성처럼 되어야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레즈비언이라면 많이 해보았을 거예요.
그래서 번개님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 같아요.

그런데 번개님,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자신이 남자처럼 되어야 한다는 건 결코 아니에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또한 다른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인생을 함께하기도 한답니다.

사람을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있죠.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가지고 인정해줘야
자기 스스로에 대한 애정도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넓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 번개님,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만큼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도 예쁘게 봐주려고 노력해보세요.
젖가슴을 때리거나 하는 식으로 학대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 그럼 번개님 부모님에 대한 얘길 해볼까요.

레즈비언상담소에 와서 이 곳 저 곳 둘러본 뒤에
부모님께 레즈비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쭈었더니
"나쁜 짓이다", "미친 거다"라고 말씀하셨다고요.
충격을 많이 받으셨겠네요.

번개님,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생각을 해보세요.
부모님 세대엔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많은 부모님들이 동성애가 뭔지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으니까,
부모님의 반응은 어찌보면 대부분 그 세대 분들의 반응일 거예요.

번개님,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요.
자신이 이성애자로 살 건지, 동성애자로 살 건지에 대해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 느끼는 것과 원하는 것이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그 다음 문제에요.

부모님이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시는 것도 아니고,
번개님이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이 대신 느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우리 사회는 여성이 여성에게 끌리는 것에 대해
인정해주지도 않고 안좋은 시선을 보내잖아요.
그러나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이 사회가 문제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세상에는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들도 많고,
누가 뭐라고 하든, 사회에서 불이익을 주든 아랑곳하지 않고
용감하게 사랑과 관계를 키워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여성들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이성애자들도 있답니다.
이 점 절대로 잊지 마세요.

번개님은 부모님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고,
들키면 맞을 것 같고,
심하면 죽으려고 하실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시는데요.
사실 많은 레즈비언들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답니다.

그렇다고 모든 길이 다 막혀있는 것은 아니에요.
부모님들도 자식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조금씩 부모님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도 있고,
도저히 대화할 수 없는 관계라면
부모님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나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죠.

번개님, 일단은요. 딸이 동성애자란 걸
지금 당장 부모님이 알아차리시는 것도 아니고
또 번개님이 '나는 동성애자에요'라고 지금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런 문제는 많은 생각과 준비가 필요하답니다.
그러니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세요.

레즈비언들은 긴 시간에 걸쳐서,
부모님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란 걸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부모님의 이해를 구한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부모님의 반응만 보고서 너무 애태우지는 마세요.
부모님에게도 생각할 시간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어떻게 얘기를 해야 부모님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지,
그 이후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많은 것들을 고민해봐야해요.

어떤 사람들은 굳이 말로 얘기하지 않고,
눈치껏 부모님이 딸이 동성애자란 걸 알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해요.
물론 끝끝내 부모님에게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요.

번개님, 지금 번개님이 느끼는 것들이나 생각하는 것들은
다 인생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양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는
날 때부터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경험과 느낌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니까요.
번개님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조급하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결정내리려 하지 마시고요.

번개님, 앞으로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을 거예요.
그런 경험이 다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해가는 과정이죠.
사람은 자신을 알아가는 만큼 세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답니다.

그러니 번개님, 앞으로도 고민거리가 있거나 의문점이 생기면
지금처럼 또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세요.
동성애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보시고요.
정성껏 답변과 조언을 드릴게요.

그럼 꼭 힘내시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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