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입니다.

사촌동생이 "십대 이반"인 것 같다고 하셨네요.
머리를 짧게 깍고, 겉 모습 치장하는데 심하게 돈을 많이 쓰고
집 밖에 자주 나가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줄 모른다고요.

님은 스스로도 이반이라고 칭했던 경험이 있는데,
예전에 그랬다고 말씀하신 걸로 봐서,
현재는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네요.

동성애든 이성애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마음에 담는 것이라고 확신을 하게 되셨다고요.

그런데 사촌동생의 경우,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라기보다 "유행이반"인 것 같고,
육체적 쾌락이나 희열을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 걱정인 거죠?
님이 사촌동생을 걱정해주는 마음 이해가 갑니다.
아끼는 동생인 것 같네요.

님,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요청하셨는데요.
먼저 사촌동생이 17살이라고 하셨는데,
그 나이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깨닫거나 고민할 수 있다고 봐요.
동성이든 이성이든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귈 수 있는 나이죠.

물론 사촌동생이 동성친구와 사귀거나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해서
평생 동성애자로 살 게 될 것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죠.
그것은 이성친구와 만나는 경우도 마찬가지랍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어서
동성을 사랑했던 사람이 나중에 이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오랜 기간 이성애자로 살았던 사람이 중년이 되어서야
자신이 동성애자란 걸 깨닫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지금의 경험들에 대해 무시해버리거나,
한 순간 느끼는 감정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겨선 안되지 않을까 해요.
다 자기 스스로와 인생에 대해 알아가는 '성장의 과정'인 것이죠.

님의 눈에 사촌동생이 철 없어 보이고, 유행을 좇는 것으로 보이고,
특히 진지하게 사랑을 고민하지 않고 외모에 집착하거나
육체적인 욕망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보여서
걱정되고 안쓰러운 것 같네요.

물론 님의 생각대로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진지해야 하죠.
사랑에 있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스킨십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서로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거죠.

유행하는 외모를 하고서, 무리지어 다니고,
사람들 보란 듯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모습이
님이 보기에 좋지 않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런데 님, "유행이반"이든 아니든 간에
청소년들이 유행하는 스타일로 외모를 꾸미고 다니거나,
또래 문화에 동참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친구들을 보면 사랑에 대해, 관계에 대해, 인생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도록 권하고 싶어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런 과정은, 언젠가 다 부딪히게 될 고민이기도 하니까
다급하게 생각해보라고 촉구하지는 않는 답니다.

님, 사람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깨닫게 되는 과정이 다르고요.
누구도 강요할 순 없는 문제에요.
많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경험과 느낌을 통해서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니까요.

사촌동생 분도 그런 과정을 거쳐갈 것이에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 생각해보게 될 거예요.
무엇보다, 선택은 언제나 스스로가 하는 것이죠.
주위에서 조언을 해줄 순 있어도
결국 인생을 결정하고 책임질 사람은 자기 자신이랍니다.

님, 사촌동생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대해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답답한 마음에 사촌동생의 친구를 불러내서
사촌동생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듣고 동생에게 다짜고짜 다그치셨다고 했죠.
공개적으로 처음 보는 여자와 키스했다는 얘길 듣고 야단치신 것 같네요.
물론 사촌동생의 행동이 님이 보기에 못마땅했겠지만
그렇다고 동생을 감정적으로 대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죠.

특히 "더럽다"거나 "쉽다"거나 하는 말들은
사촌동생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쓴 것도 아닌데
사촌언니 앞에서 죄인 취급을 받은 것 같아 억울할 수도 있겠죠.

동생은 이제 님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요.
자신에게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셨죠?
십대라 하더라도 자기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건데,
사촌언니가 자신을 감시하고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요.

님, 일단은 사촌동생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셨으면 해요.
누구라도 자신이 도움을 청하거나 대화를 시도하기 이전에
사촌언니가 자기 행동에 대해 이것 저것 알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러서 나무라고 야단을 치면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불쾌할 수 있을 거예요.

동생을 아끼는 만큼 동생의 감정에 대해서도 존중해주세요.
그래야 동생도 언니에게 자신의 솔직한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때 동생의 감정과 경험에 대해 잘 들어주고, 그 마음 이해해주고,
언제나 동생을 위해주겠다는 마음을 전해보세요.

그래야 님이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겠죠.
그 때에도 이건 나쁘다, 이렇게 하는 게 좋다라고 말하기보단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묻고,
의견을 조율하거나 조언을 해주는 방식이 좋겠어요.

지금은 때가 아닌데 하고, 사촌동생을 걱정하는 마음 이해해요.
그러나 앞으론 동생을 조금만 더 믿어주세요.
사람은 스스로 존중을 받을 때 책임감도 강해진답니다.
그러니 이제 충고하는 언니에서, 이해해주고 바라봐주는 친구가 되어주세요.

님, 동성애와 성정체성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상담소에 문의하세요.
사촌동생과 관련한 일도 언제든 상담소를 찾아 털어놓으시면
정성껏 답변과 조언을 드릴게요.

동생 분에게 상담소를 소개해주셔도 좋겠네요.
그럼 사촌동생과의 우애가 손상되지 않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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