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i님 반갑습니다.
님은 글을 올리시면서 지루할 것이라고 하셨지만요,
전혀 그렇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하늘i님이 겪으셨던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전달해주셔서
하늘i님이 어떤 심정이실지 동감할 수 있었어요.
물론 하늘i님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요,
외롭고 그립고 정체성에 있어서 혼란스러운
그 감정에 대해 공감이 갑니다.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렇게 상담소를 찾아주신
하늘i님의 용기에 박수 보내 드려요.
그리고 이별을 겪고 계신 님께
위안의 말씀도 전해 드리고요.
하늘i님께는 한 여성분과 사랑하고 교제를 했던 경험이 있지만
다른 여성이나 남성에게는 좋아하는 감정이 들지 않는다고요.
님께서는 자신이 그 한 여자만 사랑했던 것이고
결혼을 해 평범하게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레즈비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지
많이 궁금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계신 걸로 보여져요. 맞지요?
누구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을 거예요.
특히 내가 동성을 좋아하는 건가, 라는 질문이
막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런 고민을 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무섭기도 하지요.
그 낯설고 두려운 감정 때문에
더 빨리 '정답, 정답' 하고 찾으면서
맘을 서두르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루 아침에 결론이 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또한 누가 대신 답을 찾아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고요.
하늘i님, 자신이 레즈비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셔요.
과거의 경험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본다면
답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한편으로, 지나쳐온 삶보다
앞으로 살아갈 삶이 더 중요할 수 있기에
'미래의 나는 누구를 사랑하고
어떤 사람들과 친구를 맺으면서 살아갈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해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즉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거죠.
본인이 제일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요.
그리고 필요하시다면 도움이 될만한
동성애 관련 서적을 훑어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하늘i님께서는 미국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계시다고 했는데,
미국에서는 많은 동성애 관련 연구들이 있는 것으로 알아요.
동성애에 관한 공부를 하는 것은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 이성애 강요에서 벗어나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해줄 거예요.
이를테면 미국의학계에서 벌써 30여년 전에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했고,
호주에서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감정이야말로
병이 들었다고 해서 '동성애혐오증'을
정신질환 목록에 포함시키려는 운동이 있다는 등의
정보가 있어요. 레즈비언인 저조차도
동성애 권리 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정보이죠.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면서 저는,
저도 모르게 동성애에 대해 편견을 가지도록
사회화되어 왔던 것, 내면화시켜왔던 것들을
조금씩 깨트려나갈 수 있었어요.
하늘i님께서도 되도록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상황에서
레즈비언인지 아닌지에 대해 탐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 편이 훨씬 스스로에게 진솔한 대답을
찾도록 해줄 테니까 말이에요.
하늘i님께서 현명한 선택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하늘i님. 글을 통해서
님께서 이별을 하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사랑과 교제 경험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별의 고통과 동성애에 대한 금기 속에서
동성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졌던 일련의 과정들을
아름답게 간직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도 말이에요.
하늘i님,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지만요,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이란
그 상대가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떠나서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존중받을 만한 것이지요.
님께서 스스로의 감정과 경험을 부정하지 않고
아껴주는 모습이 인상 깊어요.
님은 참 용기 있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님께서는 남성도, 여성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이 상태 그대로를
지켜봐주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님께서 겪었던 지난 사랑처럼
찬란하고 충만한 느낌이, 언제 또
하늘i님께 찾아올지도 몰라요.
그때 더욱 당당하게 그 느낌들을 껴안을 수 있도록
지금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시간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실 것 같네요.
그리고 나에 대한 생각들과 미래의 상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시는 것이 좋겠고요.
하늘i님. 정체성은 누가 대신 결정해줄 수도 없고
단 한 번의 경험이나 감정만으로
결정내려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 주셔요.
그래도 고민하는 과정 중에서
혼란스러운 감정이 들 수 있겠지만, 그럴 때면
'지금은 나에 대한 탐색기'라고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하늘i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아껴주면서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구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상담소가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거나 상담이 필요하실 때면
언제든 상담소 찾아주시고요.
하늘i님.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