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코 님, 답변을 드립니다.

 

고양이코 님, 상담원입니다.

지난 유월에 남기신 글에 이렇게 두 달이 더 지나서야 답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수시로 접하는 동성애 혐오 발언에 몹시 부대끼시다가 하소연 하셨어요.

바로 힘을 드렸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맞아요.

 

동성애를 사람 사이에 자연스레 존재하는 이끌림의 형태로 받아들이고 

동성애자를 마땅히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참 많아요.

 

예를 들어 여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에는 당연히 반대하면서도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마치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인 양 

딴판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지요.

 

부당하고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마구 던지는 사람도 적지 않고요.

 

중립이나 균형을 운운하면서

동성애자의 권리 주장과 동성애자를 혐오할 자유 주장을 

다 보장해야 한다는 턱없는 상대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도 있어요.

 

누가 동성애자로 살아가든 동성과 섹스를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만

공적으로 존재와 행위를 드러낸다면 그건 문제라는 식으로

매우 교묘하게 편견을 내보이는 이들도 상당해요.

 

이 모든 종류의 혐오적 행태가 일상에 만연하니

아무리 무시하고 내 보조대로 살아가려 해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어요.

 

힘겨워 하시는 고양이코 님을 정말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상담원도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커피숍 옆자리 사람들, 지하철 승객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못 진지하게 저런 태도로 이야기 할 때마다

번번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요.

 

한 번은 옆자리 사람들이 

지극히 터무니없는 편견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늘어 놓는 데 

듣다 듣다 너무 화가 나서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틀렸는지를 장황하게 적은 쪽지를

그 사람들 앞에 탕 놓고 자리를 뜬 적도 있답니다.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종이만 놓고 나왔죠.

아마 저 인간 대체 뭔가 했을 거예요.

 

이런 분노는

동성애자로 정체화를 한 지 얼마나 되었는가와 상관없이

다들 번번이 겪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속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나 자신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드는 걸요.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정체화 하고 자긍심을 다지는 과정을 거치며

똑같은 상황에서도 

더 잘 그런 발언을 무시하거나,

덜 마음을 다치거나, 

더 잘 싸우는 요령을

익혀 나갈 따름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상처가 되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 물으셨는데요.

상담원은 세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해요.

 

첫째,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긍정을 

뒷받침해 줄 충분한 정보를

꾸준히 끊임없이 모아 나가셔요.

 

남들이 어떤 혐오발언을 하든

그 발언에 담긴 동성애의 문제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

동성애를 반대하거나 그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사용하는 자료란 다 그릇된 거라는 것을

나 자신부터가 명확히 알고 느낄 수 있도록 말예요.

 

동성애에 대한 편견없는 정보,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여러 문헌들,

페미니즘과 퀴어를 연결시켜 작업하는 사람들의 작업들을 두루 접하면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지켜낼 힘을 스스로 길러요.

 

나라는 존재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존재를

당연하게 마땅하게 긍정하고 

우리의 이야기에 섬세하게 접근하는 내용을 담은 각종 자료들을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바로 그러한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질 수 있게 된답니다.

 

말하자면

사방에서 동성애 혐오발언이 들려오면 올수록

내가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동성애 긍정발언이 

더욱 많아지도록 하는 게 좋다고 할까요.

 

번번이 사람들과 싸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번번이 속상해 어쩔 줄 모르기도 싫잖아요.

예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안 예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혐오발언의 대상이 되는 내가 아니라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문제있는 거라는 점을

그때그때 명료히 떠올릴 수 있다면

덜 상처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둘째, 

굳이 커밍아웃 하지 않고도

혐오 발언에 문제제기하고

발언의 당사자와 다툴 수 있는

(심지어 이길 수 있는) 요령을 익히셔요.

전략을 짜는 거예요.

 

이는

동성애에 대해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고,

만일 사람들이 그 지적을 하는 사람 자체를 당연히 성소수자 당사자라 생각하는 것 같다면

그런 태도 자체가 편견일 수 있다는 것까지 

의연히 지적할 수 있는 단단한 용기를

길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얼떨결에 열어 보이며 감당 못할 상황에 던져 넣지도 않으면서

어이없는 상황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고양이코 님만의 요령을

관계맺고 있는 중요한 인물들 중심으로

하나씩 하나씩 마련해 나가 보셔요.

 

화날 때마다

하나하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재치있게, 때로는 가볍게 

한 두 마디 던지고 돌아서는 방법도 있고요.

아예 작정하고 상대방을 붙잡아 앉힌 뒤 

그 사람의 혐오 발언이 왜 문제있는지에 대해

낱낱이 따져 주는 방법도 있어요.

 

상대방과의 관계의 성격에 따라

혐오발언이 나온 상황의 특성에 따라

고양이코 님이 상대방에게 가진 애정의 정도에 따라

구체적인 방법들은 달라질 거예요.

 

셋째,

레즈비언들과 교류하셔요.

가급적 폭넓게 다양한 레즈비언들과 만나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일상 속에서

어떤 싸움을 어떻게 해 나가고 있는지 들으며

생존의 지혜를 나누는 거예요.

 

상담소 홈페이지의 “즐겨찾기” 부분을 보시면

LGBT 인권과 커뮤니티 범주가 있는데

거기 소개된 링크들 중심으로

레즈비언이나 다른 성소수자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도모해 보시기를 권해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 즐겨찾기

http://lsangdam.org/link

 

사람들을 알아나가다 보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기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 보이기를

상황과 장소와 관계에 따라 조율해 나가며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접하고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고양이코 님이 여기 털어놓으신 바로 그 고민

벽장 상태에서 살아가는 동성애자로서

동성애 혐오적인 상황을 어떻게 살아낼 건가 하는 고민 또한

정말 많은 사람들과 밀도 높게 나눌 수 있을 거고요.

 

고양이코 님, 

 

1993년 초동회라는 동성애자 인권 단체 하나로 시작된

한국 사회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2015년 지금은 양 손으로도 다 꼽기 어려울 만큼의 수와 규모로 성장했어요.

 

국가인권위원회 법에 성적지향을 매개로 한 차별금지 조항도 포함이 되었고요.

성적 지향을 매개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학생인권조례들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십여 년 전 같았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나 

지금은 교육청 학생상담 센터 같은 곳에서도

성소수자 단체에 자료 요청을 합니다.

 

일선 경찰과 언론도 성소수자 인권 보호 지침에 따라 수사하고 취재하게 되었어요.

 

실제 실천이 썩 잘 되고 있지는 않다 해도 최소한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며

이들을 함부로 비하하거나 이들의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시한

근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있지요.

 

방송 환경도 조금씩 달라지는 중이어요.

예를 들어 커밍아웃 한 이후 활동을 잠시 쉬었어야 했던 홍석천 씨가

최근 몇 년 들어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요.

 

느슨한 의미에서

레즈비언 커뮤니티라고 부를 수 있을 관계망의 범위도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이고

일상에서 친구며 가족에게 자기 성정체성을 드러내고 살아가는

성소수자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답니다.

 

성소수자들의 가족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지지하는 가족모임들도 형성돼 있고

십대 성소수자들을 위한 쉼터도 생겨났어요.

꿈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도 꾸준히 변해 갈 거랍니다.

 

동성동본 금혼이 폐지되고, 호주제가 폐지되고, 간통죄가 폐지되었듯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생겨날 거고요.

학교와 직장에서 성소수자들이 자기를 편안히 드러내고도

남들과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이 마련될 거예요.

 

더 많은 당사자 자조 모임들이 생겨나고

관련법이 만들어지고

전문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하고 활약하는 이들도 하나 둘 늘어날 거예요.

소설, 음악, 영화, 연극 등의 예술 매체가 성소수자를 다루는 태도도

차츰 더 다양해질 거고요.

 

미래를 낙관할 힘은

각자 자기가 있는 곳에서부터 변화를 위해

가능한 만큼씩 노력해 나가는 데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 작업, 같이 해 나갔으면 해요.

 

상담소는 상시 회원가입을 받고 있으니

이곳에 오셔서 외롭지 않게 같이 고민해 보셔도 좋겠어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 정회원 가입 안내

https://lsangdam.org/?p=120

 

상담소에서는 현재 내년도 진행을 예정으로

벽장 탈출 프로그램이란 기획을 하는 중이기도 하니

궁금하시면 언제든 자세히 문의해 주시고요.

 

프로그램 홍보를 해 드릴 수 있게

고양이코 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시면 더욱 좋아요.

 

언젠가 꼭 뵙게 되기를 바라요, 고양이코 님.

답변이 너무나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전하며

오늘 답변은 이만 마칩니다.

 

20150815H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