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J님께

LHJ님 일단 상담이 늦어진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글을 올리고 답변을 기다리느라
초조한 마음은 아니셨는지 걱정이 되네요.
상담이 늦어진 만큼, 알차고 튼실하게
도움이 될만한 말씀을 드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상담을 시작할게요.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해 고민하고 계시나봐요.
님과 동성의 친구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이 마음이 우정인지 사랑인지부터 헷갈리고
고백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져
여러 가지로 힘드신 것 같아요.
이렇게 상담소를 방문하여
그 힘든 마음을 글로 적어주신
LHJ님의 용기에 박수 보내 드려요.
참 잘 오셨어요.

사춘기라고 하신 걸로 보아,
현재 10대이신가봐요.
우리 사회에서는 10대 시절에
동성의 친구에게 갖는 마음들을
무조건 우정으로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커요.
열정적인 우정이나 또래집단의 동질감일 뿐
사랑이 아니라고 가르치지요.

하지만 누군가가 갖고 있는 감정이 우정인지 사랑인지는
그 감정을 몸소 느끼고 있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랍니다.

LHJ님은 '친구로써 좋은 건 아닌 것 같다'고 표현해주셨지요?
아직은 확실하게 우정이다, 사랑이다 말할 수 없으시다면,
시간을 가지고 그 감정을, 흘러가는 대로 지켜봐주세요.
그 분에게 느끼는 감정이
다른 친구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어떻게 다른지,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인지 차근차근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LHJ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요,
동성애는 나쁜 게 아니랍니다.

미국의학계에서는 벌써 30여년 전에
질병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했어요.
그리고 호주의학계에서는 동성애에 대해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동성애자를 무조건 싫어하고 죄악으로 간주하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야말로 병들었다고 해서
'동성애혐오'를 정신질환 목록에 포함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세계 각지의 이러한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의 법에
동성애자를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고 말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존중받을만한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 이 사회가 이상한 거지,
동성을 사랑하는 감정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에요.

이러한 정보들을 갖고 계시면서
님께서 그 분에게 갖게 되는 감정들을 소중하게 아껴주셔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잖아요.
그 감정들을 애써 덮어버리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
고민을 이어나가신다면,
그것이 우정인지 사랑인지에 대한
보다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도,
고백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내리는 것은
모두에게 어려운 일일 거예요.
특히나 동성애자에게 있어서 '고백'이란
자신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현재상태에 대한 인정과
고백으로 인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에
부딪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라서
더더욱 어렵고 중요한 문제이지요.

실상,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많은 동성애자들이
영영 고백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 분들은 상대방과 이제껏 맺어왔던 관계를
고백으로 깨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에요.

한편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서 고백을 하기도 해요.
고백을 한 후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으로부터
동성애자는 싫고 무섭다는 말을 들어서 많은 상처를 입고
상대방과 유지해오던 친구관계마저 절교당하기도 해요.
또 다른 사람들은 잘 되어서 교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죠.
간혹 상대방이 동성과 교제한다는 사실이 무서워서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백하고 서서히 친해져서 결국 사귀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LHJ님, 고백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에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보면 어떨까요?
일단 그 친구가 동성애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인지,
그래서 내가 고백을 하면 나에게 너무나 심한 욕을 해서
내 마음에 큰 상처를 줄 사람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분명 고백을 하는 게 좋을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점들도 생각해보세요.
고백 후 친구와의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잖아요.
나는 그 사람과 친구관계로라도 남아있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이후 친구 관계는 멀어지더라도
지금의 감정을 전달하고 내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더 절실한지 말이에요.
어떤 선택을 하든 아쉬움이 남겠지만,
그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후회가 적을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요.

만약 고백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다면요,
무턱대고 폭탄처럼 고백하지는 말아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나는 생각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고백해 온다면
당연히 거절하겠지요?
이건 비단 동성 간의 고백에서 뿐만 아니라
이성 간의 고백에서도 마찬가지인 얘기이지요.

친구분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들을 만들어 보세요.
그렇다고 해서 친구분이
님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요,
친구분이 님에 대해 호의와 신뢰를 느낄만큼
친밀한 관계를 맺은 후에 고백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랍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요,
고백을 하게 된다면 그 친구분에게
LHJ님이 자신에게 고백해온 것을 소문내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소문이 퍼지면 동성애를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그런 사람의 귀에도 들어갈 수 있는 일이라
님께서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지금 당장은 고백을 할지 안 할지의 문제가
다급하게 느껴지실 거예요.
그러한 마음가짐이 나쁘다거나 옳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더 멀리 내다보는 일도 중요하답니다.
무작정 '동성친구에게 고백하는 건 안 돼'라거나
'지금 당장 내 마음을 전달해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답을 내리려고 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미련이 많이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레즈비언 중에는
고백을 하는 사람이 있고 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고백 후에 겪게 되는 상황들도 각기 다르지요.
어떤 선택을 했든 후회가 적은 경우는,
고백에 대해서 미리 깊은 고민을 했고
고백 이후의 상황에 대한 대처법에 관해 여러 시나리오를 짜본 후
고백을 할지 말지 결정하고,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더라고요.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고백을 하는 게 좋을지 안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보고
고백을 한다면 무슨 말로 어떤 방식으로 할지도 준비하고
고백 이후의 상황도 떠올려보시길 권해드려요.

LHJ님, 지금 많이 지치고 괴로우실 것 같아
상담소도 염려가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여요.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에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바로 LHJ님 자신이랍니다.
님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미래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위에서 말씀드린 여러 고민들을 해보신 후에
현명한 판단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고백을 하든 안 하든
님께서 좋은 선택을 하고 정리를 해나가신다면
분명 지금보다 마음이 한결 나아지실 거라고 믿어요.
상담소가 열심히 응원 보낼게요.

지금 이 상담만으로
LHJ님이 원하는 결과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상담소의 입장에서도
님께서 올려주신 글만으로 모든 정황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님께서도 이번 상담을 통해 얻고 싶었던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셨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든지 또 상담소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셔도 좋답니다.
님께서 마음을 다잡고 좋은 선택을 하시는 길을
상담소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참 기쁜 일이지요.
힘들거나 궁금한 점이 생길 때면 언제든지 상담소 찾아주세요.

그럼 LHJ님, 이만 상담을 마칠게요.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고민의 과정들이 쉽지는 않겠지만
현명한 선택을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답니다.

힘내세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상담내용을 옮기거나 이용하려는 분이 계시다면 사전에 상담소 측에 동의를 구한 다음,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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