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제 지향성 좀 알려주세요

고1  여학생이고요 지향성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고민의 정도가 이제는 정신병을 넘을 만큼 집요해져서 여기에 글을 남깁니다. 상담 답글이 안 올라온 지 꽤 된 것 같은데 그냥 제발 누가 보고 답 좀 주세요. 미칠 것 같습니다.

고민한 지는 3년 됬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동성애라는 것 자체를 팬픽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었고, 그 전에는 동성애가 가능한지조차 몰랐습니다. 이게 문제에요. 저는 제가 팬픽이반일 수도 있다는, 그저 동성애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이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전부 착각이 아닐까.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유치원 때를 떠올려 보자면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여자애가 있습니다.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아요. 그냥 친해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은 걸지도 몰라요. 분명 공학을 다녔는데도 이상하게 기억나는 남자애가 하나도 없어요.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연애가 친구들 사이에 유행을 했습니다. 저학년이었는데도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만들어서 자랑스럽게 다니는 애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좋아하는 남자애를 만들어야만 했고, 동성의 친구들과 비밀얘기를 털어놓으며 놀 때 저는 관심받는 것이 좋아서 일부러 남자애들의 이름을 많이 댔습니다. 얘도 좋아하고 아 사실 쟤도 좋아했었어.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의문이 남았습니다. 나는 왜 남자애들한테 전혀, 전혀 관심이 없지? 왜 다른 여자애들은 다들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는 걸까, 다들 나처럼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하고요. 그리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좋아했던 언니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동경이었는지 호감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신경쓰이고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기다려지고 그 정도의 감정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전혀 남자를 의식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제가 이성애자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여자도 의식했습니다. 앞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까, 무슨 표정을 지을까 이런 고민들. 게다가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던 남자애 중에 신경쓰였던 애가 한 명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막 엄청까지는 아니었어도 걔 앞에서 의식을 했던 기억은 나요. 

중학교 올라오고 나서, 2차 성장을 하고 나서 저는 지향성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가 접한 팬픽이 너무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고, 제 얘기 같았으니까요.

그 뒤로 저는 사람이나, 그림이나, 사진 따위를 볼 때마다 미친 듯이 고민을 합니다. 방금 내가 남자를 보고 설렜나, 여자를 보고 설렜나. 그 남자를 보고 내가 감정을 느꼈나? 저 여자는?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남자를 보고 설레는 것을 강요하는 것 같다가도, 여자를 보고 설레는 것을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해요. 무의식이. 

여자 동성애물을 볼 때만 성적 자극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게 영상이 아니라 문자로 된 것이라서, 이것만으로 제가 레즈비언이라고 하기엔 애매합니다. 그리고 여자를 좋아했다고 생각한 적이 이제까지 세 번 있는데, 정말 좋아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모르겠어요 친구를 보면 별로 스킨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않아요 걔네들이 못나서 그런가. 하지만 제 자신이 여자와 성적 접촉을...하는 건 상상할 수 있지만 남자와 하는 것은 그냥 상상이 안 되고 거부감이 들어요. 남자혐오는 없는데. 

게다가 저는 굉장히 평범합니다. 남성스럽지도, 딱히 여성스럽지도 않은 평범한 학생이에요. 퀴어이면 뭐 예술계통에 재능이 있다거나 스타일이 튄다거나..하는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만 파는 고등학생이에요...게다가 짧은 머리 여자 보면 설레지도 않아요. 부치랑 팸?그런 게 있다던데 저는 그걸로만 보면 확실히 부치는 아닌 것 같거든요. 하지만 여성스러운 여자가 좋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동경이 아닐까요.

양성애자가 아닐까. 양성애자라고 하기엔 그냥 뭔가 들어맞지가 않습니다. 범성애자라기엔 제가 상대의 성을 의식하고요. 동성애자라고 하기엔 완전히 남자를 의식하지 않는 게 아니고 이성애자...이성애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팬픽이반인걸까요. 혼란인지 뭔지 이제는 너무 많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서 진짜가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해지고 싶은데 솔직한 게 뭔지도 모르겠고 제가 진짜 동성애자라면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하지 않지 않을까요? 그냥 딱 깔끔하게 답이 나올 것만 같아서요. 이성애자라면 그것도 아니고 양성애자...양성애자라기엔 모르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