믈룽 님, 또 오셨네요 🙂


상담소에요.

지난 번 두차례 글을 남겨 주신데 이어 이번이 세번째 상담이네요.
이렇게 다시 믈룽 님의 고민을 나누게 되어 반가워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기숙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될 예정인가 봐요.

그래서 기숙사 생활은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보니
여자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씻고 옷갈아입고 자는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고요.

믈룽 님 자신이 느낄 불편함에 대한 걱정과
친구들이 믈룽 님에게 느낄 불편함에 대한 걱정이
다 된다고 적어 주셨네요.

상담원으로서는요,
정확히 왜, 어떻게 불편할지에 대해 자세히 적어주지 않으셔서
믈룽 님의 걱정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상담원 역시
남들이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보게 되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남들의 몸을 보게 되는 것이 그리 편치만은 않아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은지 무척 오래 되었거든요.

그렇다보니,
'어쩐지 서로 아무렇지 않게
씻고 옷갈아입고 같은 공간에서 자는게
왠지 안 괜찮을 것 같다' 는
믈룽 님의 걱정 자체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답니다.

또한 상담원은 믈룽 님이
'나는 괜찮다해도 친구들이 불편해하면 어떻게 하나'
라고 적어주신 부분으로부터
지금 고민하고 계신 문제가 어떤 것인지도
짐작을 할 수 있었어요.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사실 때문에
여자 친구들과의 밀착된 공동 생활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된 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같이 지내되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애초에 자기 스스로가 먼저 몸둘 바를 모르고
불편해질 것에 대한 예상.

그에 더해
만일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알려진다면
친구들이 자기와 같은 공간에서 자고 씻고 옷갈아입는 것을
꺼려할 확률이 높다는 예상.

만일 상담원이 짚어 본 이러한 예상들이
믈룽 님이 고민하는 것의 핵심이라면 말이죠.
저는 믈룽 님에게 그것은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왜냐하면
동성 친구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을 하건
이성 친구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을 하건
이성애자 친구들끼리만 모여 살건
동성애자 친구들끼리만 모여 살건,
동성애자인 친구들과 이성애자인 친구들이 섞여 살건,
또 다른 조합으로 누구와 함께 살건
다 같이 서로를 배려하는 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 때 배려란 것에는
옷 갈아입는 경우, 씻는 경우, 자는 경우
등을 비롯한 모든 생활의 측면에서
서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들과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들 간의 약속이
다 포함이 되는 것일 터이고요.

그냥 자매지간이거나 모녀사이에서도
서로 편하고 거리낌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옷갈아입고
속옷바람으로 집에서 돌아다니고
또 같이 씻을 수도 있지만
그걸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땐
또 그러한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 믈룽 님이 만일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아무렇지도 않게 옷갈아입고 씻고 하기가 꺼려지면
화장실에서 따로 갈아입고 혼자 씻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공간을 분리해서 쓰면 될 것 같고요.

친구들이 불편해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건
믈룽 님이 같이 생활하게 될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것을 전제로 하는 예상이잖아요.

그런데 커밍아웃이란 건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만나게 될 친구들 중
마음 맞는 친구, 믿음이 가고, 날 믿어 주는 친구에게만
하게 될 터이니까요.

믈룽 님이 동성의 상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만일 밝히지 않고 생활하게 된다면
룸메이트 친구들이 특별히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리라 생각해요.

물론 믈룽 님이 룸메이트들 모두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만약
믈룽 님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믈룽 님이 아무 여자한테나 다 성적인 관심을 갖고
달려들지는 않을까 겁을 먹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자기 몸을 보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해 버리고는 믈룽 님을 불편히 여기는 친구가 있다면요.

그 친구는 정말 동성애에 대해 근거없는 편견을 갖고서
동성애자를 완전히 성적으로 과잉된 존재로만 여기는 가운데
그러한 혐오 반응을 보이는 것일 거에요.

당연히도 이 때
문제는 커밍아웃한 믈룽 님에게 있는 게 아니라
믈룽 님을 불쾌한 존재로 여기는
그 상대방 친구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고요.

(동성애자는 좋아하는 사람이 동성의 상대일 뿐
여느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성의 화신처럼 여겨지는 현실이
무척 씁쓸하지요.)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룸메이트들에게는 최소한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지내는 방법도 있지만
믈룽 님이 판단하기에 내 얘길 솔직히 털어놓아도 좋겠다 싶을 수 있고
본인이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지 않다면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더라도
커밍아웃을 감행하게 되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 - 그래서 믈룽 님이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건,
룸메이트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지내건 안 하고 지내건
어떤 선택을 하건 그것은 전적으로 믈룽 님의 자유라는 것 하나하고요.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지레 딴 친구들이 불편해 할까 신경쓰거나 미안해하거나
자기 자신마저 불편해져버리거나 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에요.

앞서서 저는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건 제가 레즈비언이라서가 아니라
워낙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사람들 많은 데 가는 걸 싫어하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씻고 싶어하기 때문이에요.

저의 레즈비언 친구들 중 상당수는
자기들끼리 또는 이성애자 친구들과 섞여서도
대중목욕탕이니 수영장이니 하는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잘 다닌답니다.

같이 수영장이나 목욕탕을 가거나,
한 집, 한 방에서 생활하거나 할 때 중요한 건
저마다의 습관과 방식을 서로 어떻게 맞춰서 배려하느냐, 이지
친구들 사이에 누가 동성애자냐 아니냐가
문제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해요.

걱정이 조금 덜어졌을는지 모르겠어요, 믈룽 님.
고민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상담 청해 주세요.
오늘은 이만 마칩니다.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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