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님,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려요.
이번에 대학생이 되시는군요.
그런데 고3때 고민 님을 아우팅 한
남자애와 같은 과가 되셔서
대학 진학 이후의 4년이란 시간 동안
또 그 아우팅이 계속 될까
무척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시는
그런 상황인가 봅니다.
상담원도 고민 님이 많이 걱정이 되어요.
무서운 마음에 전전긍긍 하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 친구 때문에
절친한 친구들과도 다 절교했을 정도로
힘든 고3 시기를 보내셨네요.
아우팅 자체도 말로 다 못할 정도로 괴롭고
그로 인해 소중한 친구들을 잃게 된 것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힘든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잘 버텨내고
이제 훌훌 털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자
마음 먹고 계셨을 터인데
그 친구와 또 다시 같은 공간에 있게 되셨으니
지금 고민 님이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며
겁을 먹고 계실지가
충분히 짐작이 되어요.
혼자 어떻게 하나 끙끙 앓지 않고
이렇게 상담 요청 잘 해 주셨어요.
두렵고 먹먹할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우리 같이 대책을 마련해 봐요.
법적인 대응도 가능할 것 같지만
되도록 얼굴 붉히지 않고
아우팅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게 훨씬 좋겠다 생각한다 적어주셨는데요.
상담원도 그런 고민 님 입장에 공감을 합니다.
사실 아우팅 그 자체로는 현행법 상 처벌 받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에요.
동성애자에 대한 아우팅이
피해 당사자를 어떻게 궁지로 몰고 나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조계 및 검찰, 경찰의 인식이란
여전히 매우 일천한 것이라서요.
명예훼손 죄 등으로 처벌을 요청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아우팅 그 자체만으로는
높은 처벌 수위를 보장할 수가 없답니다.
아우팅 외에 기타 협박 및 사기, 폭행 등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엄중한 처벌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요.
답답한 현실이고 바꾸어 나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법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면
또 그 과정에서 부딪쳐야 할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더 이상의 아우팅을
사전에 막는 것일 텐데요.
그러기 위해서 고민 님이 취할 수 있는 조치 중 하나가
그 친구에게 직접 더 이상 아우팅을 하지 말도록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리라 생각해요.
그 친구와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불편하고 압박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사자인 고민 님이 직접 그 친구의 입단속을 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친구에게
진지하게 대화를 청해
다음과 같은 내용 등을 담아
강경하게 말씀을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1. 직접 커밍아웃할 권리를 존중해 달라고 하셔요.
'내가 나의 정체성을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고 싶을 때
직접 커밍아웃 할 수 있게 해 달라.'
2. 아우팅이 얼마나 고민 님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를 알려 주세요.
'너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내가 이반인 걸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정체성이 알려졌을 때
나는 너무나 무섭고 힘들다.'
3. 아우팅은 인권 침해고, 고민 님은 이미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세요.
'아우팅은 명백한 인권 침해다.
이미 전문 기관에 상담을 요청했고
기관에서 자문을 해 준 바
그러한 아우팅은 그 자체로 굉장히 심각한 폭력이고
반드시 하지 않아야 할 일이라고 했다.
예전과 같은 일이 또 발생하면,
그 기관에서 나를 도와 주기로 했다.'
4. 고민 님이 꿈꾸는 대학 생활을 이야기하며,
그 친구에게 현명한 사람이라면 느껴야 할 책임감을 강조하세요.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눈치보지 않고
그렇게 대학 생활을 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나에게서 자유로운 생활을 박탈하지 말아달라.
또 다시 친구를 잃는 슬픔을 겪게 하지 말라.
네가 현명한 성인이라면, 나의 부탁을 당연히 들어줘야 마땅하다.
너를 믿고 부탁하겠다.
나의 부탁을 들어 달라.'
5.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또 아우팅을 한다면
그 때는 분명히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셔요.
'너를 믿고 부탁하지만
혹시 또 예전과 같이 나를 아우팅 한다면
그 때는 나도 강경하게 대응하겠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고민 님,
그 친구와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꺼려지고 싫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위와 같은 내용을 담아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과정을
최소한 딱 한 번은 가지셨으면 해요.
아우팅이 무엇이 문제고
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에 대해,
또 그럴 경우 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그 친구에게 명확하게 밝히는 거에요.
그렇게 그 친구에게 당부를 하는 것과 동시에
만약의 경우 아우팅이 언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그럴 때 고민 님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를 해 두시면 좋겠어요.
그 친구가 고민 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해서
되도록 그런 상황에 이르지 않아야 하겠지만
어떻게 될 지 정확히 짐작할 수가 없으니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답니다.
아우팅이 언제 일어날지 몰라
그 사이에 믿을 만한 친구들을 만들 수 있을지,
그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할지 안할지, 등에 대해
지금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학과 내에서 아우팅이 일어난다 가정하면
학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지
준비해 보는 거에요.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아우팅이 되면
'누가 그래. 나 이반 아니야. 이상한 소문이 났네.' 라고 하며
사람들에게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잡아 떼어 두는 것이 좋을 수 있어요.
소문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게 어디까지 확장이 될지
언제 무슨 피해를 입게 될지 알 수가 없어
학과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매일같이 불안한 날들을 보내야 할 터이니까요.
믿을 만한 사람이 생겨
나중에 다시 커밍아웃을 하게 되더라도
아우팅 자체가 가져올 파장은
되도록 막아 두는 것이 좋답니다.
그런 대응을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혹시 일어날 지 모를 그런 상황을
미리미리 떠올려 보면서
본인이 취할 태도를 연습해 보는 것,
그것을 고민 님에게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고민 님,
대학 입학 후 다시 그 친구에 의한 아우팅이 발생하면
절대로 혼자 겁먹고 어쩔 줄 몰라하시지 말고
또 상담 요청해 주세요.
그런 상황이 되면
상담원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고민 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 볼게요.
새로운 생활에 대해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을 더 많이 갖게 되셔서
많이 속상하고 괴로울 것 같아요, 고민 님.
그렇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힘 내셔요.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대학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자기 자신을 한 번 믿어 봅시다.
상담원이 드린 말씀들이
고민 님에게 지금 상황을 헤쳐나갈
유용한 실마리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면
언제든 다시 상담 요청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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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님, 힘 내셔요.
나는 헤쳐나갈 수 있다, 는 맘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상담을 마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