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붐님, 상담소입니다.
어릴 적 성폭력을 당한 경험으로
레즈비언으로서의 경험이
많이 혼란스럽고
괴로우시군요.
또한 자신이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어떤 사실을 숨겨야한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고민이 되시는 것 같아요.
또한, 이런 고민은
주위 친구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
더 힘드셨을 것 같아요.
상담소에 잘 찾아오셨어요.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상담소를 방문해
고민을 털어놓은
라붐님의 용기에 격려를 보냅니다.
그럼 이제부터 고민을 하나씩 짚어보도록 할게요.
많은 레즈비언들이
성폭력 경험 때문에
레즈비언이 된 것은 아닌지
고민도 하고
죄책감도 가지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성폭력의 경험 때문에
남성혐오가 생겨
레즈비언이 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레즈비언 정체성은
복합적인 경험으로
생기는 것이에요.
이 설명을 하기 전에
상담원이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먼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은 누구나
동성과 이성에게 이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에요.
동성에게 이끌리는 감정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비정상적인 것도 아니에요.
동성애라는 것은 동성애 상대에게
감정적, 사회적, 성적 이끌림을 말해요.
그리고 동성애자는
이러한 이끌림을 가지는 사람 중에
자신의 이끌림을 받아들여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을 이야기한답니다.
즉 레즈비언 정체성은
누군가 규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동성애자라고 하면
동성 간의 성행위부터 생각하고는 해요.
이것은 그릇된 생각이에요.
동성에게 성적인 이끌림만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하죠.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해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잘못된 생각들이 팽배해 있는
우리 사회는 동성을
좋아할 수 있다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이성만을 사랑하길
강요하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성과만의 사랑이
정상적이라고 몰아가는
이 사회가 오히려 이상한 거예요.
오히려 호주 의학회에서는
동성애를 비정상이라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등의
동성애혐오증을 정신질환목록에
올리려는 움직임도 있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는데도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동성애가 비정상적이며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한 것으로 여기고는 하죠.
하지만 이러한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해요.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고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물론 이러한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어요.
서두르지 않으셔도 되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알아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에요.
레즈비언으로 정체화 하는 것은
자신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에는 어떻게 살고 있고
미래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아보는 과정과도 같아요.
이것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고민이에요.
그러니 자신이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천천히 차근차근
알아 가시면 되요.
어쩌면 이것은
금방 나오는 답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렇게 더더욱
급하게 생각 안하셔도 되요.
그리고 라붐님께서
자신이 남성에게 맞아본 적도 있고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어
남성혐오가 생겨
레즈비언이 된 것은 아닌지
고민하셨는데요.
앞서 이야기했듯
레즈비언 정체성은
복합적인 경험으로 생기는 것이에요.
하나의 경험으로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가 되지는 않는답니다.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경험으로
레즈비언이 된다면
한국사회의 레즈비언 인구는
이보다 더 많아야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사회는 남성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해있어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남성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라붐님께서
자신이 레즈비언이 된 이유가
왠지 남성혐오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레즈비언이 비정상이고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조금 재밌는 점은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레즈비언이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반면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남성이
게이가 된다고들 이야기해요.
참 아이러니하죠?
또, 아무도
이성애자에게
왜 이성애자가 되었는지 묻지 않아요.
어릴 적에 이성에게 혹은 동성에게
성폭력을 당해서
이성애자가 되었냐고 묻지는 않죠.
몇 가지 이야기만 보아도
레즈비언의 원인을 묻는 질문은
억지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예전에 사촌언니와
성적인 장난 때문인지,
누군가와 사귈 때
성적으로만 기쁘게 하려는
그런 마음이 든다고요.
그것 때문에
합의가 된 관계에서도
성적인 행위 이후
죄책감이 드시는 것 같아요.
라붐님의 기분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떤 마음인지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라붐님,
상담원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수치심을 가질 필요도 없으며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요.
사촌언니와의 일 또한
라붐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어린 라붐님을
사촌언니가 강제적으로
상처를 준 것이지요.
그러니 라붐님,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죄책감을 가지지도 마세요.
성적인 행위로 인해
죄책감이 들거나
자신이 그것만으로 애인에게
잘해주려는 것 같다면
그 점을 애인과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아요.
상담원에게 털어놓았듯이
내가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점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상대방의 이해를 받고
자신도 조심씩 그 점을
고쳐나가면 되는 거예요.
현재 애인이 있는데
그 점으로 문제가 있다면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좋고,
현재 애인이 없어도
이후의 애인과 이런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게 오해가 쌓일 수도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없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당당히 여기지 못하는 것 같아
슬프다고 하셨어요.
네, 맞아요.
많은 레즈비언들이 또,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어요.
커밍아웃을 못하는 사회 때문에
답답해하고
반면, 아우팅이 될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하죠.
하지만 라붐님,
자신이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당당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라붐님은 자신은 레즈비언이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인데
평범하지 못한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당당하지 못해 슬프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상담원은 다르게 생각해요.
남들과 같다는 것,
남들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내보이고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저 사람과 같기 때문이 아니라
저 사람과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상담원은 생각해요.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두가
다 달라요.
모두가 특별하고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각자 나름의 당당함을 뽐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다름으로
커밍아웃을 하며
살아야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 라붐님께서
자신이 남들과 다른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자체의 자신을
당당하게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이라고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고,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동성애자들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라붐님,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하셨어요.
여건이 되신다면,
레즈비언 활동가를 만나보고 싶으시거나
레즈비언 인권운동에 대해
생각이 있으시다면
상담소로 연락을 주셔도 좋아요.
그럼 이만 상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라붐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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