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님, 상담소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신라면님.
상담소입니다.

줄여서 라면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지금 많이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이신 것 같은데, 주변에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지 못하셨을 것 같아요.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렇게라도 상담소를 찾아오셔서 고민을 나누어주신 점 반갑습니다.

지금 한 후배를 진지하게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시면서, 관계에 어려움이 있으신 것 같네요.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후배 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더 나가서는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할까봐 무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레즈비언인지, 사춘기라서 그런 것인지 물어오셨구요.

먼저 상담원은 라면님의 그 감정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괜찮은 것이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남자를 한번도 좋아하지 않고, 오로지 여성에게만 끌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구요. 오히려 여자는 남자만 좋아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주입시키는 우리 사회가 억지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학교에서, 집에서 우리는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사랑의 한 형태라는 분위기를 접하지 못했고, 그런 교육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랍니다. 우정을 넘어서는 그런 감정은 사춘기 때의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라는 편견을 심어주구요.

그러다가 일상에서 동성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게 되면, 당황하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하게 되지요. 그 감정이 괜찮은 것이라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하고 자라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감정을 솔직하게 상대에게 고백하는 과정도 너무 어렵구요. 그러나 라면님의 지금 상태 소중하고 괜찮은 감정입니다.

상담원은 라면님에게 2가지 측면에서 고민을 해보시길 권유하고 싶네요. 하나는 그 후배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것과 다른 하나는 라면님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탐색해보는 여정을 이제 시작하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라면님, 성정체성은 상담원을 비롯한 다른 누군가가 님은 어떻다...라고 결정내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그래줄 수 있다면 편리하겠지만요. 그러나 자기 자신의 감정과 욕구, 소망들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라면님일테죠.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통해서 탐색하시고 결정하셔야 할 거에요. 급하게 생각하실 것 하나도 없습니다. 성정체성은 마감시간을 다투고 있는 무슨 일 같은 것이 아니에요. 지금 라면님께서 여성에게 끌린다고 해서 레즈비언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니구요. 한번 결정한다고 해서 영원히 변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그간 라면님께 있었던 감정, 이끌림, 욕구, 경험들...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히 되짚고 생각해보세요. 그런 감정들이 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하게 다가오는지, 선명하게 다가오는지, 앞으로의 삶에서 얼마나 추구하고 싶고, 가져가고 싶은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언제라도 라면님께 무언가 선명하게 이만하면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자신의 감정과 경험들이 중요하게 다가온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되면 그때 레즈비언 정체성을 선택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탐색 과정에서 레즈비언 관련 영화나 책, 드라마 같은 것들을 참고해보시는 것도 좋으실 거에요. 레즈비언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정보를 얻는 것도 방법이구요. 다음카페 이반, 레즈비언, 동성애.....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보시면 많은 카페들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레즈비언이 많이 사용하는 사이트 2곳을 알려드릴게요.
티지넷 http://www.tgnet.co.kr , 미유넷 http://miunet.co.kr 

이 정보들이 절대적인 것들은 아니니, 자신의 것으로 걸러서 소화하시는 것 잊지 마시구요.

라면님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알았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할 것들이 두렵다고 말씀하셨죠. 네... 그런 두려움을 상담원은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동성애자들이 살아가기에 그리 쉽지가 않거든요. 상담원은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이 쉽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솔직하고 편안한, 그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모습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그런 어려움들을 기꺼이 감당해나가실 선택도 내릴 수 있으리라는 점 말씀드리고 싶어요.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에 따르는 어려움 또한 감당하겠다는 선택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충분한 정체성 탐색 시간을 가지라고 권유해 드리구요.

어려움들이 있다면, 라면님 혼자 그것을 감당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이미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찾아서 어려운 세상에서 씩씩하게 살아나가고 있는 레즈비언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 힘주고, 버티어주면서 살다보면, 세상 속에서 혼자라는 느낌은 많이 가벼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용기 내보시길 바래요. 라면님.


다음으로 후배와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후배가 라면님을 피하는 것 같다고 느끼시는데요. 이를 직접 대화를 통해서 확인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솔직하게 ‘너가 나를 피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 하는 식으로 말을 걸어보는 것이죠.

라면님이 느끼시는 것이 오해일 수도 있을 것이구요. 반대로 만일 후배가 피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된다면, 후배가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놔두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라면님의 감정은 충분히 괜찮은 것이지만, 그것이 학교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왜곡되어서 전달되거나, 주변의 거부에 마주하게 될 때 라면님께서 겪으실 어려움이 클 수 있기 때문에요. 님의 감정들이 주변에 알려지는 데 있어서는 신중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이고, 거부당하는 것이 너무 싫고, 후배에게 대화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면, 일단은 마음을 좀 접는 것도 방법입니다. 어느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도 소중한 것이지만, 먼저 라면님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니까요.

라면님.
님의 글을 통해서 두려움과 고립감이 느껴져서 안타까운데요. 비록 학교에서는 혼자라고 느껴질지라도 님과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씩씩하게 살아나가고 있는 많은 레즈비언들이 있다는 점 잊지 마시고, 그 점을 통해 힘을 좀 얻어가셨으면 좋겠네요. 상담원도 라면님이 기운내시라고 응원하겠습니다.

또 궁금하시거나 어려운 점 생기시면 상담소 찾아주세요.
그럼 이만 상담을 마치겠습니다.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