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룹 님, 상담원이에요.
아주 많이 좋아하는 동성 친구가 있고
심지어 그 친구가 왠지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여지도 주는 눈치였는데
알고보니 그 친구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었나봐요.
용기내어 진지하게 고백을 하려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셨으니
얼마나 충격이 크고 속이 상하셨을까요.
다른 이야기에 앞서 위로부터 해 드리고 싶어요.
말로나마 다독다독 해 드릴게요.
그 친구에게 애인이 있는 걸 알게 됐다고 해서
하룹 님 마음이 그렇게 쉽게 접히지는 않을 거예요.
정신을 온통 뺏길 정도로 좋아해 왔는데
그런 열렬한 마음이 어떻게 갑자기 정리되겠어요.
고백하기가 조금 더 어려워진 건 맞아요.
하지만 애인 있는 사람은 절대 좋아하면 안 된다는 법 같은 건 없어요.
고백하면 안 된다는 법도 없어요.
마음이 가는 만큼, 좋은 만큼 계속 좋아하셔도 괜찮고요.
억지로 마음을 접으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애인이 있는 만큼 하룹 님과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겠지만
그래도 하룹 님 마음을 전해 보고 싶다면
고백 역시 해 보셔도 돼요.
이때
상대방 뜻과 관계없이 내 감정을 강요하면서
부담을 주는 일만 피하면 되어요.
친구가 하룹 님을 거절하면
납득하고서 깨끗이 물러나면 된다는 뜻이지요.
좋아하는 마음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고
고백도 얼마든지 해 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고백 받는 친구 입장을 아울러 살피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달까요.
고백을 거절당하고서도
마음은 여전히 식지 않을 수 있어요.
그때도 막 일부러 그 마음을 억누르려 하지 않으셔도 돼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도 언젠가는 잦아들기 마련이거든요.
그렇게 될 때까지 자기 자신에게 여유를 주셔도 괜찮아요.
기다려 주는 거죠.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해서 애달프고 고달프지만
그게 바로 짝사랑인걸요.
일부러 억지로 감정을 눌러 담으려하면
그게 잘 안 될 때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가 있어요.
그러니 좋은 만큼 좋아하고
슬프고 아쉬운 만큼 슬퍼하고 아쉬워하고
애탔던 만큼 스스로를 보살펴주세요.
짝사랑으로 힘든 마음을 충분히 우울해하고 괴로워하셔요.
우울하고 괴로울만한 일이니까요.
힘든 게 당연한 상황이니까요.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아픔도 클 터이니
그러한 감정을 다루어 나가야 하는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넉넉히 주시면 좋겠어요.
찬찬히 마음을 다스려 나가다보면
뜨겁기만 하던 감정도 차츰 식어갈 거예요.
그리고
레즈비언 친구들을 만나서
속 얘기 다 꺼내 놓고 편하게 수다를 떨고
커밍아웃 부담 없이 연애도 시도해 보고 싶으시다 하셨지요.
그 마음, 진짜 멋져요.
상담원에게 여기서 털어놓은 이야기
또래 친구들하고 나누면
더 속시원하고 좋을 거예요.
하룹 님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분명 힘이 많이 날 거고요.
하룹 님 또래의 청소년 이반이
서로 교류하는 장은
현재 결코 적지 않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레즈비언 친구와 만날 수 있어요.
청소년 이반이 직접 만들어 운영해 온 모임으로
우선 라틴이라는 곳을 소개해 드려요.
청소년성소수자커뮤니티 라틴
성인의 검열이나 방해없이 운영돼 온 공간이고
지난 수 년 간 유익한 자료를 많이 축적해 온 모임이니
꼭 한 번 들러 친구를 만드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반으로서 위기에 처했을 때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띵동이라는 단체가 있으니
이곳도 마음 속에 잘 표시해 두세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트위터: https://twitter.com/DDingDong119)
하룹 님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으니
홈페이지나 트위터 잘 둘러보시고 용기내어
활동가들과 또래 친구들을 만나러 나서 보셔요.
어느 지역에 살고 계시는지 말씀을 안 하셨는데
서울-수도권에 거주하시거나
다른 지역에 계시더라도
서울에 방문하기 어렵지 않은 상황이면
저희 상담소로도 찾아 오셔요.
상담소는 여성 이반을 회원으로 하는 단체고
나이 상관없이 어울려 지낸답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회원가입 안내
하룹 님,
하룹 님은 동성을 좋아하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신 만큼
정말 무척 용감하고 근사한 분이에요.
누군가에게 흠뻑 빠질 수 있을 만큼
감정의 용량도 아주 큰 분이고요.
이반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너무 잘 알고 계셔요.
상담원은 하룹 님의 오늘이 자랑스럽고 내일이 기대돼요.
짝사랑의 상처를 회복하고 더 많은 레즈비언과 교류하는 과정,
상담원하고 앞으로 계속 나눠주세요.
하룹 님이 혼자 부대끼지 않게 꾸준히 도와드릴게요.
지지해드릴게요.
그럼
조만간 하룹 님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게 되기를 기대하며
오늘 상담은 이만 줄입니다.
20160521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