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이야기나누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올려주신 내용과 관련하여 몇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성적소수자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며,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드리기 위한
단체입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한 고민들,
주변에서 받는 시선들,
사회적 차별들을 해결해나가는 데에 있어
상담을 통해 조금이나마 어려움을 덜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곳 상담게시판은 일종의 '포스팅' 을 하는 공간은 아닙니다.
이곳은 내담자가 성정체성과 관련된 특정한 고민이나 문제가 있어
상담원으로부터 답변을 듣고자 할 때,
그에 맞는 도움을 드리는 곳이지요.
그래서, 내담자께서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예를 들면
동성을 좋아하게 되면서 내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 고민하게되거나,
지인에게 커밍아웃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거나
누군가로부터 아웃팅 협박을 받고 있다거나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져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다거나,,하는
특정한 사례를 나름대로 정리하셔서 올려주셔야
상담원이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같이 수다떨듯이
이러저러한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겠지요.
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보면
구체적인 고민하고 계신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추행 경험과 남성혐오에 관한 것들
현재 좋아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것들, 그리고
내가 남성에게 더 끌릴지 여성에게 더 끌릴지 시험해보려고 했던 경험들이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내가 레즈비언인가?' 하는 정체성 고민을 하고 계시리라 짐작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어렸을 때 겪은 성추행 경험들로 남성에 대해 혐오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A님께서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피해를 당했던,
그것은 상대방의 잘못이지 A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또한
A님뿐 아니라, 비슷한 피해를 입은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그 가해자는 딱 보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질환자'같은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고,
'변태같은' 사람도 아니었으며
그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남성 중에 한사람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보면
피해 경험이 단 한 차례였더라도
내 주변의 모든 남성들을 경계하게 되는 것은
참 당연하지요.
내가 받은 피해를 떳떳하게 하소연하고 도움을 요청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면,
그리고 여성의 몸을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해
가해자인 남성이 비난받거나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저 내가 경계하고 피하는 것이
내 몸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에도
이르게 될 수 있고요.
한편, 내가 받은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남성에 대한 나의 경계심과 혐오적 감정이
뭔가 '과한 것'이나 '오버한다' 는 식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내 마음을 추스리고, 다독일 시간도 부족하게 되지요.
무엇보다,
누군가를 혐오하고 경계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경험이 자꾸만 떠오르고
그것이 누구보다 스스로를 계속 힘들게 만들면서
앞으로의 삶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상담원은 A님께서
그런 혐오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혹여나 본인 스스로를 질책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설사 지속적으로 적대심을 갖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은 있는 그대로 존중할만 한 것이니,
굳이 애써 풀어내야한다는
압박을 가하지는 않으셨으면 하고요.
그보다는 혐오감과 부대낌을
A님 자신을 갉아먹지 않는 방식으로,
바깥으로 조금씩 표현하도록
노력해보셨으면 합니다.
A님의 피해경험이, 성정체성 고민을 하는 데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셨을 수 있는데
우선
자신의 성정체성을 결정하는 일은 사람마다,
각자 본인의 해석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러한 경험 때문에 레즈비언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경험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레즈비언 정체성을 좀 더
확실하게 인식시켜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러한 피해경험 때문에 더 좋은 ‘남자’ 를 만나서,
이성애자로 살아가고, 살아가길 원하기도 하고요.
이 중에 어떤 결론이 옳고 어떤 결론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포르노를 보지 않아서, 어떤 성행위를 보면 더 흥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수많은 판단 기준 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누구나 여성-여성 간의 성행위장면을 보고
즐기지는 않습니다.
이성애자라고 해서 모든 여성이 이성애 포르노를 보고 즐기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희안하게도) 그 반대의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을
알게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계실텐데,
성정체성은 짧은 시간 내에 결정되는 것도,
한번 결정하면 평생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굳이 당장에
내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지금 좋아하고 있는 친구분이든, 앞으로 좋아할 누군가이든
그 좋아하는 감정 자체에 집중하셔서
어떤 상대와의 경험이 더 나를 행복하게 하고,
어떤 상대와 연애한다면 내가 받아들일만 한지
어떤 상대가 나를 참 괜찮은 존재로 만들어주는지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보신다면 언젠가는
확신이 드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201004
우선, 올려주신 내용과 관련하여 몇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성적소수자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며,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드리기 위한
단체입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한 고민들,
주변에서 받는 시선들,
사회적 차별들을 해결해나가는 데에 있어
상담을 통해 조금이나마 어려움을 덜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곳 상담게시판은 일종의 '포스팅' 을 하는 공간은 아닙니다.
이곳은 내담자가 성정체성과 관련된 특정한 고민이나 문제가 있어
상담원으로부터 답변을 듣고자 할 때,
그에 맞는 도움을 드리는 곳이지요.
그래서, 내담자께서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예를 들면
동성을 좋아하게 되면서 내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 고민하게되거나,
지인에게 커밍아웃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거나
누군가로부터 아웃팅 협박을 받고 있다거나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져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다거나,,하는
특정한 사례를 나름대로 정리하셔서 올려주셔야
상담원이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같이 수다떨듯이
이러저러한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겠지요.
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보면
구체적인 고민하고 계신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추행 경험과 남성혐오에 관한 것들
현재 좋아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것들, 그리고
내가 남성에게 더 끌릴지 여성에게 더 끌릴지 시험해보려고 했던 경험들이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내가 레즈비언인가?' 하는 정체성 고민을 하고 계시리라 짐작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어렸을 때 겪은 성추행 경험들로 남성에 대해 혐오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A님께서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피해를 당했던,
그것은 상대방의 잘못이지 A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또한
A님뿐 아니라, 비슷한 피해를 입은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그 가해자는 딱 보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질환자'같은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고,
'변태같은' 사람도 아니었으며
그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남성 중에 한사람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보면
피해 경험이 단 한 차례였더라도
내 주변의 모든 남성들을 경계하게 되는 것은
참 당연하지요.
내가 받은 피해를 떳떳하게 하소연하고 도움을 요청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면,
그리고 여성의 몸을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해
가해자인 남성이 비난받거나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저 내가 경계하고 피하는 것이
내 몸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에도
이르게 될 수 있고요.
한편, 내가 받은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남성에 대한 나의 경계심과 혐오적 감정이
뭔가 '과한 것'이나 '오버한다' 는 식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내 마음을 추스리고, 다독일 시간도 부족하게 되지요.
무엇보다,
누군가를 혐오하고 경계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경험이 자꾸만 떠오르고
그것이 누구보다 스스로를 계속 힘들게 만들면서
앞으로의 삶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상담원은 A님께서
그런 혐오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혹여나 본인 스스로를 질책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설사 지속적으로 적대심을 갖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은 있는 그대로 존중할만 한 것이니,
굳이 애써 풀어내야한다는
압박을 가하지는 않으셨으면 하고요.
그보다는 혐오감과 부대낌을
A님 자신을 갉아먹지 않는 방식으로,
바깥으로 조금씩 표현하도록
노력해보셨으면 합니다.
A님의 피해경험이, 성정체성 고민을 하는 데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셨을 수 있는데
우선
자신의 성정체성을 결정하는 일은 사람마다,
각자 본인의 해석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러한 경험 때문에 레즈비언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경험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레즈비언 정체성을 좀 더
확실하게 인식시켜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러한 피해경험 때문에 더 좋은 ‘남자’ 를 만나서,
이성애자로 살아가고, 살아가길 원하기도 하고요.
이 중에 어떤 결론이 옳고 어떤 결론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포르노를 보지 않아서, 어떤 성행위를 보면 더 흥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수많은 판단 기준 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누구나 여성-여성 간의 성행위장면을 보고
즐기지는 않습니다.
이성애자라고 해서 모든 여성이 이성애 포르노를 보고 즐기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희안하게도) 그 반대의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을
알게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계실텐데,
성정체성은 짧은 시간 내에 결정되는 것도,
한번 결정하면 평생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굳이 당장에
내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지금 좋아하고 있는 친구분이든, 앞으로 좋아할 누군가이든
그 좋아하는 감정 자체에 집중하셔서
어떤 상대와의 경험이 더 나를 행복하게 하고,
어떤 상대와 연애한다면 내가 받아들일만 한지
어떤 상대가 나를 참 괜찮은 존재로 만들어주는지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보신다면 언젠가는
확신이 드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20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