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 답변을 드립니다.


 

### 님, 답변을 드립니다.

구월 말에 사연을 남기셨는데

달이 두 번이나 바뀌고 벌써 많이 추워졌어요.

상담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답변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애인 분 부모님과의 상황은 어떻게 됐는지

애인 분과는 서로 다독이며 잘 버티고 계신지

여러모로 마음이 많이 쓰여요.

 

상담원이 무엇보다도 속상한 건

애인 분 부모님이 쏟아내는 비난 때문에

### 님이 절대 느끼지 않으셔도 되는 죄책감을

떠안고 마셨다는 거예요.

 

두 분이 사랑해서 소중하게 일구어 온 관계고

애인 분이 스스로 결정해서 참여해 온 관계일 터잖아요.

게다가 기본적으로 예쁘고 귀한 사랑이잖아요. 

나쁜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걸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모든 게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돼버리고

### 님이 모든 상황의 죽일 놈이 돼 버렸다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 님도 알고 계시리라 믿지만

상담원의 말로

제삼자의 말로

다시 한 번 들려드리고 싶어요.

 

두 분의 사랑은 ### 님이 

누구한테도 죄송해 할 일이 아니라는 거요.

 

자기 자신한테도

애인 분한테도

애인 분 부모님한테도

나아가 ### 님 부모님한테도

죄송해 할 일이 정말이지 아니라는 거요.

 

그리고

지금이 위기인 건 분명하나

애인 분과 쌓아온 애정하고 신뢰 자체에는

절대로 회의감 가지지 않으셔도 괜찮다는 것도요.

 

자식의 삶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자식의 연인을 괴롭히는

애인 분 부모님을 야속해하고 원망하실지언정

### 님이 주눅들고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지는 마셔요.

 

두 분은 

서로에게 끌려

사랑을 확인하고 

연인으로 지내오시는 동안

이미 충분히 용감하셨어요.

 

자기 감정을 가감없이 들여다보고 

그걸 고스란히 인정하고

연인과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죠.

 

여자는 어때야 하고 언제 결혼해야 한다는 규범에 맞서

두 분이 함께 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어요.

 

이미 그렇게 해 오셨기 때문에

지금의 고비도 결국 헤쳐 나가시리라 생각해요.

그러실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두 분 다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두 분 스스로 

우리는 당당하다

우리 사랑은 근사하다

우리 존재는 가엾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그렇게 믿으시기를 당부드려요.

 

알고 계실지라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흔들리실까봐

어느 순간 약해져버리실까봐

재확인 시켜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듭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힘주어 말씀드렸어요.

 

포기하자 놓아버리자 사라져버리자 죽어버리자

이런 심정이 돼 버리는 거

사실 십분 이해해요.

 

동성애, 동성교제를 용납 못하는 부모님이

자식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자식과 자식의 소중한 파트너에게

얼마나 지독하게 폭력적일 수 있는지 알기에,

지쳐가는 ### 님 마음

정말 이해해요.

 

애인 분 입장에서는

부모님과의 관계 문제인 만큼

아무리 억울하고 답답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그분들 말씀을 거스를 수 없을 터이기에

괴로워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 님 속은 더 타들어 갈 거 같고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두 분이 무엇을 원하는가예요.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관계를 놓고 싶지 않다면

저는 ###님이 포기하지 말고 놓아버리지 말고

도망가지도 말고 죽으려 하지도 말고

애인 분과 힘을 합쳐

싸우셨으면 좋겠어요.

싸워보셨으면 좋겠어요.

 

부모님께 맞서 싸우고자 한다면 

필시 고난이 따라오겠지요.

 

애인 분은 애인 분대로 가족들과 엄청나게 부대낄 터이고

행여 ### 님 부모님까지 아시게 될 경우

### 님도 만만치 않은 소동을 겪게 되실 거예요.

 

하지만 사랑하기를 그만두자고 마음 먹고

두 분이 헤어지는 건 더 힘든 일일 수 있어요.

 

인생에 너무나 중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헤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사랑하는데도 이별해야 하는 거잖아요.

부모님 때문에 말이어요.

내가 감당해야 하고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인데

부모님에 의해 결정당하는 게 돼 버리잖아요.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이에요.

원치 않는 삶을 강요당한다는 거

얼마나 숨막히는 일이에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는 과정의 고단함과

사랑하는 사람을 압박에 의해 놓아버린 뒤에 겪을 고단함을 

나란히 놓고 가만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는 과정의 고단함이

헤쳐 나가는 데 덜 어려운 고단함 아닐까요.

나를 받쳐 주는 게 있으니까요.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을 간다는 의미

그 길을 선택했다는 자긍심 말여요.

싫은 걸 억지로 하며 겪는 괴로움이 아니라

원하는 걸 지키기 위해 겪는 괴로움인 거잖아요.

 

그런데 

포기해 버리면

헤어져 버리면

그리고 사회가 맞다고 얘기하는 방식에

내 존재를 던져버리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힘든 것 뿐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힘들어져요.

 

편견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받고 괴롭힘 당하는 일은 없을지라도

그래서 덜 눈치보며 살 수는 있을지라도

내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한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

매일매일이 자기 부정의 날들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서글프고 고달파져요.

 

싸워보지 않고 물러서기에는

아까울만큼 소중한 관계를

애인 분과 그간 빚어오셨잖아요.

 

그렇다면 

두 분이 마음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고

헤쳐나갈 계획을 촘촘히 세워보는 거예요.

 

일단 헤어졌다고 하고

들키지 않게 살펴 만나시면서

두 분이 안정적으로 함께 할 기반을

착착 마련하는 방법도 있어요.

 

애인 분 부모님이 너무 길길이 뛰는 상황이니까

일단 진정시키고 넘어가는 차원에서

택하는 요령인 셈이지요.

 

우선 그렇게 넘겨 놓은 다음에

부모님 간섭 덜 받으며 두 분이 함께 할 길을

마련해 나간다고 할까요.

 

그 과정에서 

때가 왔을 때 어떻게 제대로 커밍아웃을 다시 하고

두 분 관계를 확실히 설명할지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더불어 해 나갈 수 있어요.

 

시간도 벌고

물리적인 여유도 조금이나마 더 만든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당장 더 큰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고려해 봄직한 선택지 아닐까 해요.

 

애인 분 가족이

애인 분의 생활에 간섭을 심하게 하는 편이고

그 검열과 통제를 여간해서는 거둬들이지 않을 기세라면

차차 물리적으로 거리를 조금 많이 두고 생활하는 방법 역시

고려해 보면 좋고요.

 

당장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어요.

 

이때 물론

두 분이 감당 가능하시겠는지

그러고자 마음이 먹어지시는지가 

제일 중요한데요.

 

마음 단단히 먹고

주먹 불끈 쥐고

싸워보자 싶다면

두 분이 그렇게 같이 결의만 된다면

사실 저는 정면 돌파도 꼭 고려해 보시기를

권해드려요.

 

언제든 터질 일이었다면

언제라도 한 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면

이렇게 상황이 벌어진 이상

고개 숙이고 비는 식으로가 아니라

정말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식으로

그렇게 맞서보는 거예요.

 

정말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이고

그간 실로 정성들여 가꾸어 온 관계이며

서로가 마음이 다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몰라도

지금 한창 사랑하는 중에는 결코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떳떳하게,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자식이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냐

이게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방식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요.

 

그러려면

애인 분 부모님이 소동을 피우시기 전에

### 님이 ### 님 부모님께

어떤 식으로든 먼저 언질을 주시는 게 좋겠지요.

 

갑자기 남한테 자식 욕을 들으면

너무나 놀라고 속상하실 테니

미리 상황을 설명드리는 차원에서요.

그리고 ### 님을 믿어달라고 부탁드리는 차원에서요.

 

어려운 고백이 되겠지만

어머니 아버지 딸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부끄러워 하시거나 움츠러드시지 않아도 된다고

제가 제 사랑 지키는 거 지켜봐 주시고

제 편들어 주시라고

제 애인 예쁘게 봐 주시면 안 되겠냐고

진심으로 호소하는 거예요.

 

만일 ### 님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시면

아마 이런 연락이 올 텐데

친구 부모님이 영 뭔가 잘못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

너무 놀라지 마셔라

내가 알아서 잘 해결하겠다

이런 식으로 준비시켜 드려도 좋고요.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대응하시든

두 분이 같이 고민하고 같이 결정하는 게 중요해요.

 

서로의 마음

서로의 사정을 지레 짐작하고 행동하기보다

두 사람 관계를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단단하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서로 충분히 대화하면서

결정해 나가시면 좋겠어요.

 

길이 없다

방법이 없다

도리가 없다

이런 생각에 휩싸여

의지를 잃고

귀한 인연을 놓쳐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요.

 

그리고

항상 매 순간 기억해 주세요.

 

### 님은 

절대로 그 어떤 의미로도 가식적이지 않다는 거,

기독인으로서의 삶과 여자로서 여자를 사랑하는 삶은

애초에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는 거,

이제까지 애인과 함께 한 시간은

부끄러워해야 할 개인사가 아니라

가슴 벅차게 기억하고 당당하게 이어갈

어여쁜 시간의 결이라는 거 말이어요.

 

싸움도 운동과 비슷해서

부대껴 나가다 보면

잔근육이 생긴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하나씩 둘씩 맞설 때마다

내가 믿는 걸 위해서, 

내게 소중한 존재를 위해서,

내가 원하는 관계를 위해서,

내가 스스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 될 거예요.

 

힘을 내서 싸우면

힘이 더 생기는 그런 효과라고 할까요.

 

싸워나가는 과정을

홀로 겪지 않으시도록

저희가 사연을 계속 들어드리고

대처 방안 또한 함께 고민해 드릴게요.

부디 용기를 내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 님이 누려야 마땅한 삶,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

포기하지 마셔요.

 

### 님 잘 계시는지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줄곧 마음쓰고 있을 테니

언제라도 다시 이곳 찾아서

근황과 고민을 남겨 주셔요.

소식 기다릴게요.

 

상담원이었습니다.

 

201611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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