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입니다.
익명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고,
첫 여자친구와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주셨네요.
최근에 고등학교 후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도 써주셨고요.
친하게 지내던 후배였는데
어느 순간 호감의 마음으로 바뀌셨다구요.
그 후배의 예의바르고 성실한 모습이
익명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보네요.
졸업 할 때 찾아가기로 했는데
그 후배에게 고백했다 사이가 멀어질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으신 듯 해요.
나의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이
상대방과 멀어질 이유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것도 내가 호감을 느끼는 상대방이라면
그 안타까운 마음은 가중될 것이고요.
익명님과 같은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상담원은
익명님이 느끼고 있는 답답한 마음을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답니다.
일각에서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성에게 이끌릴 가능성과 이성에게 이끌릴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태어난다고들 말해요.
다만 우리 세상이
여성과 남성이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만이
당연한 것처럼, 올바른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
동성에게 이끌릴 가능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동성애라는 정체성을
비정상으로, 혹은 혐오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지요.
동성애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아예 없는 편은 아니지만
교육계나
법 조항,
사회적인 분위기 등등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오해들이 남아 있지요.
그래서 자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기도 하고
내 정체성으로 인해
상대방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어색해 질까봐
상대방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기도 하지요.
익명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은 거치신 것 같아요.
오랜 시간 혼자 생각한 시간들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 과정들을 잘 견디신
익명님께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익명님이 적어주신 글 처럼
내가 상대방에게 드는 호감의 감정은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혹여
정체성으로 인해 상대방과 멀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부분이랍니다.
익명님 혼자만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지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익명님.
누군가를 좋아하고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 상대가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떠나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한 거예요.
굉장히 멋진 경험이기도 하고요.
님께서 누군가를 향한 이끌림에 눈뜨고,
사랑에 진지해지고 있다는 건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랍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여자와 남자의 연애만 자연스러운 것처럼 생각하도록 배우게 되지요.
그래서 동성을 좋아하게 되어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기 어렵기도 하고
그 감정을 깨달아도
나 혼자 이러하다는 사실에,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결코 내보이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
막연하게 두렵고 외롭기도 하고요.
님도 그동안 여자친구에게 이끌려 온 경험이 있으니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누군가를 향한 설레임과 그리움이
님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했겠지만
동시에 어떤 두려움도 있었을 테니까요.
이렇게 님께 이야기를 전하곤 있지만,
상담원 역시 아직도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문득 두려워질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건
어려움만큼 특별한 자부심도 안겨 줘요.
내가 나에게 솔직하다는 당당함,
내가 나의 삶을 선택했다는 자긍심은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어 주죠.
또한, 내가 누구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여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위로받고 힘을 주고 받는 관계를 가질 권리가 있지요.
동성 간의 두근거리는 이끌림, 애틋한 그리움,
그 누구보다도 친밀해 지고픈 욕구,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비정상도 죄악도 아니에요.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하는 감정이랍니다.
이성에게 느끼는 끌림의 감정만큼이나
동성에게 갖게 되는 감정 또한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졸업식에 가서 졸업을 축하해 주면서
그 동안 익명님이 후배님께 든 호감의 감정을
고백하는 일은
고백의 관계가 동성 사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 잘못 되었다거나, 비정상적인 일은 아니라는 말씀을
거듭 드려요.
상담원은
상대방에게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자 생각하는 것이
참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요
그간의
내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기로 결심 하는 데는
내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는 일이고,
또한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말을 할지 생각하느라
노력이 드는 일이고요.
이렇게
익명님이 용기내고 노력하여
익명님의 마음을 전하셨는데도
상대방이 이를 거절하였다면
마음은 많이 쓰리겠지만,
익명님이 하실 수 있는 범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하셨다고 생각이 되어요.
최선을 다하면
행동을 실천하지 못하였을 때 드는
후회는 남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상담원은
익명님이 익명님의 마음에 대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대방이 익명님의 마음을
평가하는데 마음 쓰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드려요.
누군가에게
순수하게 드는 이끌림의 감정.
좋아함의 감정은
어떤 누구도
어떠한 잣대로도
평가 내릴 수 없는 것이랍니다.
그러니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에 대해
상대방이 내게 보일지도 모르는
불편한 반응을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내보일지
고백을 어떤 방법으로 해야
조금 더 쉽게 내 감정을 다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드려요.
예를 들어
그 후배와 더 친해진다거나,
그 후배가 동성애에 대해
평소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를 진행한다던가
등등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말이에요.
고백할 경우
익명님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니
상대방에게 커밍아웃을 할지 말지
상대방이 내가 커밍아웃을 해도 안전한 사람인지의 여부도
살펴 보시는게 필요하답니다.
오늘의 상담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익명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상황이 마무리 되면 좋겠지만
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익명님의 마음이 편안한 방향으로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모쪼록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상담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