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이 님, 답변을 드립니다.

 

답답이 님, 상담원입니다.

답변이 늦어도 너무 늦었지요.

지난 달 중순 경에 사연을 남기셨는데

벌써 십일 월도 마지막 주를 맞이했네요.

상담을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답답이 님 본인의 성향이 

뭔지 파악이 잘 안 된다고

자기가 부치인지 펨인지 전천인지 등에 대해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냐고 물으셨어요.

 

일상적인 태도와 행동이 기준인지

성관계에서의 역할 분담이 기준인지 

궁금해 하셨는데요.

 

사실 어떤 행동부터 어떤 행동까지가 부치,

어떤 스타일부터 어떤 스타일까지가 펨,

어떤 태도부터 어떤 태도까지가 전천인지를

칼로 무 베듯 똑 떨어지게 가르는 기준 내지는 법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든

성관계 시에든 말이에요.

 

대체로 

부치는 외양이나 태도나 역할이 남성적인 쪽에 가까운 퀴어,

펨은 외양이나 태도나 역할이 여성스러운 쪽에 가까운 퀴어,

전천은 남성적이거나 여성스러운 느낌을 오고 가거나 중성적인 퀴어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역시 몹시 느슨한 정의예요.

 

기본적으로 

뭘 남성성으로 보고 뭘 여성성으로 보고 뭘 중성성으로 볼 수 있는지

그 기준부터가 모호하잖아요.

 

사회적으로

남자같다 여자같다 혹은 중성적이다 통용되는 

일련의 특징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러한 특징들 자체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하고 

애초에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지요.

 

여자가 해도 되고 안 되는 거

남자가 해도 되고 안 되는 거를 가르지 않아도 되듯 (가르지 않는 편이 낫듯)

무엇이 여성적인 것이고 무엇이 남성적인 것인지 역시

꼭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거랄까요.

 

어떤 형태의 몸을 갖고

어떤 성별로 살며

그 성별을 어떻게 표현을 하거나 하지 않을지

어떤 식으로 연인과 관계를 맺을지 등이

성별 규범에 따라 꼭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아도 되고요.

 

사정이 그렇다보니

외양이든 태도든 역할이든 

때로 펨보다 더 여성스러운 부치도 있고

부치보다 더 보이시한 펨도 있고

그렇답니다.

 

이는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라 해도

외모, 태도, 역할에서 다 똑같은 특징이나 패턴을 보인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어떤 부치가

이게 바로 부치다움이지라고 주장하는 요소가

다른 부치가 보기에는

영 부치다움이 아닐 수도 있고

이는 펨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요.

 

답답이 님이 예를 드신 거 말예요.

 

집에 바래다 주고 싶고 

가방도 들어주고 싶고 

하여튼 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요.

 

그런 마음이라면

엄청 여성스럽게 꾸미고 다니는 레즈비언,

성관계시 주로 테이크하는 입장이길 바라는 레즈비언,

되게 와일드한 성격을 가진 레즈비언,

관계를 보통 리드하길 즐기는 레즈비언, 

누구하나 가릴 거 없이

다 가질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누가 가져도 이상하지 않고 말이어요.

 

그런 마음이 부치한테 필수라고 생각하는 성소수자가 있는 한편으로

그런 마음이 부치의 마음이고 부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라고 하는 건

불필요한 역할 고정 아니냐고 되묻는 성소수자도 있지요.

 

다른 예로

성관계시 기브 앤 테이크에서

주로 기브만 하는 게 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부치 성향은 성관계시 기브냐 테이크냐와는

아무 관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어차피 아무 상관없는 만큼 스스로를 부치로든 펨으로든

부를 필요 자체를 못 느낀다는 사람도 있고요.

 

또한

커플 관계 안에서 펨 부치 역할을 진지하게 나눠 맡는 커플이 있는 한편

가끔 장난으로나 그렇게 하고 특별히 심각하게 취하지는 않는 커플도 있고

아예 그런 이름붙이기 자체를 사절하는 커플도 있어요.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이나 양성애자 정체성에

부치냐 펨이냐 전천이냐가 굉장히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요. 

 

답답이 님도

잘 모르시겠으면 꼭 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 성향도 아니라 해도 괜찮답니다.

성향 그거 몰라도 되고 없어도 돼요.

 

레즈비언이거나 바이섹슈얼이려면

꼭 부치 쳄 전천 등의 성향 중 하나로

자기를 규정해야 한다는 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성향을 규정하지 않은 채로

무성향의 성향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꼭 이름을 붙이고 싶으시다면

답답이 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시면 돼요.

 

본인 성격이나 스타일이

자기가 이른바 남자같은 쪽인지 여성스러운 쪽인지 중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등을 살펴

그에 따라 성향 이름을 붙여준달까요.

물론 이때 남성성 여성성 중성성을 구분하는 기준도

커뮤니티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관찰하는 가운데

답답이 님이 직접 정하고요.

 

나중에 연애를 하게 되면

그 교제 관계 속에서

자기 성향이 어느 쪽인지를

조금 더 또렷이 규정짓게 될 수도 있어요.

연인과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얘기하며 맞춰가는 과정에서요.

물론 그 연애가 오히려 

성향은 따지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중요한 건

레즈비언이거나 바이섹슈얼이기 위해서,

퀴어이기 위해서,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향을 가져야 하는 건, 

전혀 아니라는 거예요.

 

성향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과연 무엇인지는

서둘러 파악하시지 않아도 괜찮은 문제이니

자기 자신과 주변 친구들을 잘 살펴 보면서 

스스로를 어떻게 이름 붙이거나 붙이지 않을지

찬찬히 고민해 나가시기를 바라요.

 

탐색 과정에서 궁금한 게 생기거든

언제라도 다시 사연 남겨 주시고요.

 

늦은 답변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오늘 상담글은 이만 마칩니다.

상담원이었습니다.

 

2016112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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