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 담당 상담원이 답변을 드립니다.

 

- 님, 담당 상담원이 답변을 드립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 글 남겨 주셨는데, 

시간이 일주일 넘게 지나서야 이렇게

뒤늦은 상담글 드리게 되었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닥이 좁은 직업군 내에서 일해 오고 계시는 가운데

- 님에게 악의를 품은 같은 직종 종사자로부터

난데없는 공격을 당하셨으니

당혹스러울 뿐만 아니라

겁도 나고 화도 나실 것 같습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경우

직업군 내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는 일인만큼

많이 불안하시리라 짐작되고요.

 

사실 내가 

남들에게 "동성애자"라고 일단 추측되어 버리면

여지없이 손가락질 당하기 마련이라거나

실제로 "동성애자"라는 것이 드러날 경우

당장 구설수에 오른기 쉽다거나 하는 현실 자체가

개탄스럽지요.

 

누군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약점으로

그 사람의 신용과 업무 능력 평가에 불리하게 적용될 요소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정말이지 뿌리부터 잘못되었다는

증거이겠고요.

 

- 님과 상담원이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이 

동성애자를 그저 있는 그대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시공간이라면

애초에 내가 동성애자인게 알려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부터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동성애자라는 존재에,

부끄러워해야만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나 스스로는 나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떳떳하고 당당하기 그지없다 하더라도,

남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엄혹한 현실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것이

바로 동성애자들이 마주하는 삶인 것 같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아웃팅 행위 혹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추측성으로) 누군가가 동성애자라는 

발설/유포 행위 (-님 경우가 여기에 해당) 에는

아웃팅 당한 동성애자 당사자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죄가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데요.

 

이러한 법적용 및 처벌 가능성은 한편으로

아웃팅 이후 뒤따르는 피해에 노출된 피해자를 

도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동성애자 정체성을 타겟으로 삼아 공격하는 일을

문제삼게 해 주는 역할로서도 중요하겠고요. 

 

그러나 다른 한편 

동성애자 정체성 자체가

이른바 수치스러운 것, 숨겨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적인 조건에 정확히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성애자 정체성=격 떨어지는 이상하고 우습고 더러운 무언가, 의 등식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렇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참 민망한 사실이지,

그러니까 그 사실을 공연히 퍼뜨리는 건

당사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일 거야,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그 사람의 평판은 나쁘지 않은 셈이니 말이야,' 와 같은

내적 논리가 작동해야만 가능한

법적용/처벌이기가 쉽기 때문이지요.

 

참으로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상담원은 그래서 동성애자 정체성과 아웃팅, 그리고

명예훼손에 대한 고민을 할 때면

늘 생각이 복잡해지곤 합니다.

 

각설하고, 그럼 이제부터는

적어 주신 글 내용상의 어떤 사람을 A,

o o 씨를 B 라고 칭하며 글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A 가 - 님에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욕을 했다면

여기에는 "모욕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 님이 걱정하고 계시는 바대로

만일 A 가 - 님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

여기에는 "명예훼손죄"가 적용되고요.

 

그리고 B 가 A 에게

- 님이 동성애자라는 식으로 말했다면

확실히 알고 말한 것이든 대략 짐작으로 말한 것이든

공히 "명예훼손"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만일 A 가 - 님에게 

입에도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 님이 동성애자라는 점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커밍아웃 하신 상태가 아니므로) 을 약점삼아

무언가를 요구하며 협박한다면

그때는 "협박죄" 역시 적용 가능하게 되겠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 중요한 건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정확히 무어라고 말했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가 구체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A 가 상습적으로 직접적인 공격을 시도해 온다면

그것의 상습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마련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 때

- 님 스스로 충분히 고민해서 결정하셔야 하는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즉, 고소를 할 때, 이 상황을 - 님 입장에서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동성애자인데 B 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알리지도 않았고 알리고 싶지도 않았던 그 사실이

B 에 의해 유포되어 A 가 그걸 악용해 나를 괴롭힌다, 는 식으로 서술할지 아니면 

나는 동성애자가 아닌데, B 가 제멋대로 짐작해서

그걸 A 에게 말했고 이후로 A 가 그걸 매개로 나를 공격한다, 는 식으로 서술할지도

중요한 고민의 지점입니다.

 

말하자면 이는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갈지, 

허위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갈지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경우라고 해도

경찰과 대면해서 정황과 증거들을 두고 얘기를 나눈다는 건

경찰/형사라는 존재들에게 - 님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 없기에

단단히 마음을 먹으셔야 합니다.

 

동성애자 인권이나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기본적인 감수성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찰/형사들이 대부분인 만큼

고소/조사 과정 자체가

- 님 입장에서 불편한 일들의 연속일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약간 각도를 바꿔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면

A 와 B 가 퍼뜨린 소문으로 인해

- 님이 향후 커리어나 취업에 영향을 받게 된다면

소문을 낸 사람들인 A 와 B 보다도

성정체성을 매개로 한 차별 행위를 저지른 '갑' 측을

문제삼을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동성애자라서 우리는 당신하고 일 못해, 

라는 식으로 대놓고 차별하는 사람/직장보다

다른 우회적인 이유를 들어 밀어내는 사람/직장이 더 많을 터이기에

정황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성정체성을 매개로 한 차별이

존재했다는 걸 증명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증명만 할 수 있다면 고용 차별로 

문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절: (…) 성적지향 (…) 

관련 링크-> http://www.law.go.kr/법령/국가인권위원회법/(11413))

 

글 남기신 뒤로 제가 답변 드리기까지

일주일 가량 시간이 지나는 동안

혹시 A 가 또 공격을 해 오지는 않았는가

걱정이 많이 됩니다, - 님.

 

그리고 솔직히 말씀 드리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고소까지 가지 않고서도

이 상황을 종료시키고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법적 절차라는 게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보다 

때로는 더 큰 무게로 당사자를 힘들게 만들 수 있는 

긴 싸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보니

상담원으로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우선 A와 B에게 모두

다시는 이런 식의 추측성 소문을 내지 말 것,

한 번 더 욕설을 퍼붓는 등 공격을 하면 반드시 

적극적으로 문제 삼겠다는 것,

이미 관련 기관에 상담 요청을 해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 등을

강력하게 전달해 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위축되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가 아니라 

흔들림 없는 단호한 태도로 

당신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일이 얼마나 

유치하고 경박하고 무례하고 잘못된 행위인가를

따끔하게 지적하는 겁니다.

맞장뜨기라고 할까요.

 

약점 잡아 공격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은

상대방이 겁먹는 모습을 보면

자기 전략이 먹히는구나 싶어 쾌재를 부르며

숨통을 더욱 조여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 A 라는 비겁한 사람에게 

그런 기쁨을 안겨주지 말도록 해요.

 

오늘은 여기서 상담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만

- 님과 함께 상황을 지켜 보며 

같이 대응책을 고민해 나갔으면 합니다.

가능한 만큼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러므로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업데이트를 해 주시고 싶으시거든,

언제든 다시 이곳 게시판 찾아 주세요.

 

무소식이라면, 상황이 잘 결론났으리라고 믿고

- 님 커리어의 미래가 밝기만을 기원하겠습니다.

 

응원을 전하며,

담당 상담원 드림

 

2012-6-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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