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기리죠님, 상담소입니다.

오다기리죠님 상담소입니다. 
 
먼저, 상담이 지연되어 죄송하다는 것 부터 
얼른 전해드립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곳에 하기 어려운 문제를 이렇게 나눠 주셨는데, 
이렇게 꾸물대는 답변을 내놓게 되어 
맘 상하시진 않으셨을지 정말 걱정입니다. 
 
상담으로 답변을 드리는 것이 우선 해야 하는 일 것 같아서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제목에서부터 마음 한 켠이 무너지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동성애자이기를 바랐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동성애자로 스스로를 정체화 한 분께서 직접 말한 다는 것 자체가 
 
오다기리죠님의 마음 한 켠 역시 
알 게 모르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행복합니다"라는 표현에서 한 번 더 
"그러나 외롭습니다"라는 표현에서 한 번 더 
마음의 무너짐을 확인했습니다. 
 
잠을 자고 먹고 웃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스치고
지인들과 말을 섞고 일정과 계획을 세우고. 
 
하지만 일상 속에 나를 무의식적(이지만 의도적으로) 
숨기는 내가 있다면, 그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커밍아웃이라는 것이 동성애자 모두의 당연한 의무는 아닙니다.
그걸 의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걸 의무라고 강요할 권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커밍아웃을 통해 동성애자가 얻고자 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부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커밍아웃은 누군가에게 
내 정체성을 선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에게 나의 진심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나에 대한 지지를 요구하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 아무나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선언에서 그쳐도 무방하지만, 
 
가깝고 특별한 지인에게 나를 알리는 것은 
입밖으로 꺼내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해서 
나를 이해시키고 설명하고 벽을 확인하고 다시 허물고 하는 과정 
모두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면서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큰 것도 큰 것이지만,
소중한 관계, 이제껏 쌓아 온 신뢰와 믿음 같은 것들이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한 몫을 하겠지요. 
 
그래서 꽤 많은 동성애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인정과 자긍심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지 않는 
어떻게 보면 "이중 생활"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이런 이중적인 "나"가 모순되는 존재이고 
서로 상충하는 자아라고 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요. 
 
동성애자이지만, 이런 나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그런 "나" 속의 여러 나인 것일 뿐이니까요. 
 
가족들에게는 좋은 딸이자 언니 혹은 동생이고 싶고, 
지인들에게는 신뢰가 가는 동료, 의지가 되는 친구가 되고 싶고, 
모두의 의지이고 바램이니까요. 
 
그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인 것이지요. 
 
하지만...
본인이 그런 생활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립감 속에 힘듦을 확인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는 조금 다른 생활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인정해 줄 누군가가요. 
 
레즈비언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지만, 
레즈비언인 친구는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애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중요합니다. 
 
여행을 같이 다니고 영화를 보러다닐 
여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실제로 지금 급히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오다기리죠님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암묵적 동의와 지지로 오다기리죠님의 정체성을 받아들여줄 
"친구"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맞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절대 쉽진 않지요.
그만큼 노력과 시도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즈비언인 나를 먼저 밝히고 만나는 게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하실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위험성도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내가 긴장하고 내가 상대를 의심하는 것 만큼, 
상대 역시 그 만큼의 위험성을 감수하고 나를 만난다는 것도 
기억하셔야 할 부분이 아닐가 싶습니다. 
 
이 문제는 동성애자 뿐 아니라, 
온라인을 이용해 관계를 맺는 현실 속의 여러 성인들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정체성 하나만으로 상대와 나의 선호가 맞는지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으니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문제라는 건 
확실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상상해 볼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가 될 것 같아요. 
 
하나는 인터넷을 통한 만남이 싫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노력과 시도 없이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으니 역시 시도를 해보시는 게 좋겠다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믿을 만한 지인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일이겠네요. 
 
나의 커밍아웃이 주변에 폐를 끼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내가 신뢰하고 의지하는 상대가 
나의 정체성만을 이유로 나를 예전과 다르게 대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혼자서 감당하면서 지내시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나 가혹하나 일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폐를 끼치는 것은 그렇다면, 
이런 나를 숨기게 만드는 사회적 편견과 그런 사회적 편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르는) 상대겠지요
 
커밍아웃은 항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해 보고 반응에 대처할 방법까지
같이 고민해 보시고 시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래서 평소 상대가 동성애나 인권 문제에 
어떤 관심을 얼마나 두느냐를 먼저 알아볼 수도 있고, 
내 얘기라고 곧 바로 얘기하기 보다는 
제 3자의 이야기인것 처럼 말문을 여는 것도 방법입니다. 
 
커밍아웃에 웬 안전까지 고민하나하실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안전은 여러가지 의미일 것 같습니다. 
 
내가 받게 될 심적 상처로부터 나를 단단히 붙드는 안전이기도 하고, 
내가 처할지도 모르는 곤란한 상황에서 나를 지키는 안전이기도 합니다. 
 
어떤 결과든 오다기리죠님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겠지요. 
 
뭐가 됐건 간에 나를 잘 알면서 나와 잘 맞으면서 
나의 정체성을 좀 이해해줬으면 하는 상대에게 솔직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 스스로를 숨통트이게 할 방법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시도해 보시는 것도 가능하는 부분을 알려드리면서 
염두에 놓으셔야 할 것들도 같이 말씀드리는 것이랍니다. 
 
의외로 상대가 쿨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일이라는 건 알 수 없으니까요. 
 
어떤 선택지를 결정하실지 몰라 이런 저런 경우들을
이것저것 예로들어 설명을 간략히 해봤습니다. 
 
커밍아웃은 사전 준비도 중요하지만, 
사후에도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할 엉뚱한 질문이나 상상들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일이 발생하기도 하기도 하니 이런 부분도 
예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안전망은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할 사람들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은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중요한 거고요. 
 
오다기리죠님이 하고 계신 고민은 아마 레즈비언이라면 누구나 
하고 있을 문제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인과 자긍심과는 또 별개로 
일상을 버텨낼 에너지를 나 혼자 만들어내는 데에 
어느 순간에는(혹은 가끔은) 힘에 부칠 때가 있기 마련인 것 같아요. 
 
어떤 방법으로 지금의 상황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혼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시게 되면
언제든 오셔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되지 않은 채로라도 
남겨놓고 하시는 것도 방법인 것 같습니다. 
 
오다기리죠님의 삶과 선택을 지지합니다. 
아마 어딘가에 저와 같은 생각을 지닌 분이 계실거에요. 
주변에 있을 수도 있고요. 
 
내적 갈등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실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이나 사회의 지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오다기리죠님의 삶과 일상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충분히 존재만으로도 의미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힘을 내셔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필요한 정보나 궁금한 것들이 있을 땐 알려주세요.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답변을 통해 도움을 받으셨을지 걱정이네요. 
지연된 상담이라 시기의 적절성을 놓쳤을까도 걱정이고요.
상담 지연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면서, 
이번 상담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상담소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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