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루 님, 답변을 드립니다.

룬루 님, 상담원입니다.

 

유월 초순에 글을 남기셨으니

답변을 제때 드리지 못한 채로 흘러버린 시간이

벌써 한 달 반 가량이네요.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면서

상담글 시작할게요.

 

남겨주신 고민, 혹은 질문이라고 해야할까요, 은

열심히 읽어 보았어요.

 

나는 레즈비언일까 양성애자일까

내게는 둘 중 어떤 정체성의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일까 고민하고 계시는데요.

 

적으신 말씀들을 읽으며 상담원은 사실 

룬루 님이 본인이 이미

자기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깊이 받았어요.

 

"저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라고

첫 문장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적으셨지요.

 

그러실 수 있었다는 건

여자, 즉, 동성의 상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룬루 님 마음 속에 아주 또렷이

새겨져있음을 증명하는 거라 생각해요.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만은

본인이 확신하는 거죠.

 

그런데 상대적으로

남자, 즉, 이성에 대한 마음이란

이성을 직접적으로 사귀어 본 경험까지 돌이켜봐도

영 애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그 가운데에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게 한 가지 있지요.

 

남자친구를 한 번 사귀긴 했지만 그건 

단지 호기심의 발로였던 것 같고

스킨십 등이 영 싫었던 걸 보면

우정에 가까웠지 싶다고 말예요.

 

가만 보면 내가 당시에 걔를 

그렇게 많이 좋아해서 사귄 건 아니다.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 건 이게 다가 아니네요.

하나가 더 있어요.

 

현실에서 남자들은 잘생겨봤자

돌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반면

미드나 웹툰 등의 등장인물 중에는

남자도 있다고 하신 부분 말입니다.

 

이처럼

룬루 님은 자기 자신이 

어떤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끌리는지

이미 충분히 잘 알고 계셔요.

 

여자를 좋아한다는 그 확실한 자기 해석과

남자에게 관심이 가는 경우는 일상 생활 자체가 아닌

픽션의 세계에서 뿐이라는 인식이

룬루 님 내면에 잘 통합돼 있는 걸요.

 

자, 그렇다면 그러한 해석과 인식을

룬루 님 본인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이 바로 지금 룬루 님 고민의 키포인트입니다.

 

적어도 세 가지 갈래의 정체화가 가능합니다.

 

남자는 그저 캐릭터나 연예인이 좋을 따름이므로

나는 아무래도 레즈비언에 가깝겠다는 정체화가 가능할테고요.

 

아무리 연예인 외에는 

별로 관심가는 남자가 없다해도

남자가 아예 안 좋은 건 아니므로

양성애자라고 정체화 하는 편이 어울릴 것 같다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테고요.

 

여자가 좋은 건 확실한데

남자에 대해서는 아직 좀 더 지켜 보고 결론짓고 싶으니

일단 두고 보겠다는 식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는 작업을 유예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난 레즈비언, 난 양성애자, 난 이성애자

이런 규정을 스스로 확실히 내린 상태에서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거나 하는 법은 없어요.

 

확실하지 않은 상태, 고민되는 상태로

자기 자신의 경험과 변화를 지켜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도 좋답니다.

 

어떤 갈래를 택해 정체화 하시더라도

각각 그 자체로 다 옳아요, 룬루 님.

 

또한

성정체성은 십대 때 꼭 규정을 완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규정한다고 해서 평생 그대로 

변함없이 살아가게만 되는 것도 아녜요.

 

누구나 언제나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자기 자신을 재탐색하는 과정을 거쳐

성정체성을 새로이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지금 어떻게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규정하시더라도

내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여기 

붙박여 살아가야만 하리라는 데 대한 부담 역시

너무 압도적으로 가지지 않으셔도 괜찮은 것입니다.

 

고민해 나가시는 과정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거든

언제라도 다시 이곳 게시판 찾아 상담요청 해 주세요.

 

꼼꼼히 귀기울이고 섬세하게 나누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으실 때는 답변이 이렇게 늦어지는 일도 없도록 할게요.

 

상담원이었습니다.

 

201307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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