쥰 님, 상담원입니다.
지금 사귀고 계신 여자 분과의 관계가
쥰 님 인생 최초의 동성 교제로
그에 무척 정성스럽게 임하고 계신가 봅니다.
우선은 그토록 마음을 다해 열과 성을 쏟을
소중한 사람을 만나셨다는 사실에
축하의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상대 분은
쥰 님이 모든 것을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실 만큼
분명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고 근사한 분이리라 짐작해 봅니다.
마치 임자를 만난 듯한 압도적인 경험을
고스란히 지탱해 내신 쥰 님의 용기에 대해서도
무한한 격려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전에 다른 사람과 교제해 보신 경험도 없고
특별히 여자에게 끌린 적도 없는 가운데
지금의 애인을 만나 그토록 강렬한 사랑에 빠진 거라면
설레이고 두근거리면서도
내심 겁 또한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자칫하면
감정이 너무도 크고 싶다는 사실
상대가 동성이라는 사실 모두
쥰 님을 주눅들게 하기 쉬웠을 터라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쥰 님은
참으로 적극적으로 그 감정을 받아안고
상대와의 본격적인 만남으로
거침 없이 뛰어 드셨습니다.
자기 감정을 스스로 존중하고
그 감정을 토대로 적극적이셨던 쥰 님도
쥰 님이 사랑에 빠진 상대 분 만큼이나
멋진 분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거리를 안고 계시네요.
애인 분이 가까이 지내는 동성 친구들이
하나하나 신경쓰이고 의심가고 불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까닭으로 애인의 확고한 레즈비언 정체성을 언급하셨고요.
상담원은 쥰 님이 어떻게 하시다가
애인 분과 애인 분의 동성 친구들 사이를
의심하기에 이르셨는지가 조금 궁금합니다.
혹시 그럴 만한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싶어서 말입니다.
두 분이 교제를 시작한 뒤로
쥰 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발생해 왔던 것인가요.
남기신 글의 내용에는
그러한 계기들에 대한 말씀은 따로 없이
다만 믿음을 잃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라는 요지의
말씀만이 담겨 있어
저간의 사정이 궁금해집니다.
만일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면
단지 애인 분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쥰 님으로 하여금 애인 분과 친한 모든 여자들을
경계하도록 하는 거라면
저는 쥰 님께 단호하게 강조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불안해 하시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모든 여자에게 유횩당하거나
모든 여자를 끌어당기는 건 아닙니다.
이성애자 여성이라고 해서
모든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거나
모든 남자를 사로잡는 건 아닌 것과 다르지 않지요.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누군가를 깊이 좋아하고
그토록 좋아하는 상대와 교제를 한다면
무엇보다 그 관계에 공을 들입니다.
누군가가
교제 관계에서
애인을 상처입히고 배신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동성애자라서거나 이성애자라서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성실함이나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부족해서인 것입니다.
이성애자가 이성과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것만큼이나
동성애자도 동성과 친구로 지낼 수 있어요.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영 아닌 것 같다 싶으시면
애인 입장에서 쥰 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쥰 님이 레즈비언인 애인이 동성 친구들와 갖는
교우 관계를 걱정하시는 논리대로라면
쥰 님 애인 분 입장에서 봤을 때
바이섹슈얼인 쥰 님은 이성과도 동성과도
친한 친구로 지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애인 분에게는 여자건 남자건
다 경계 대상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막상
애인 분이 그런 입장을 보이면
쥰 님은 펄쩍 뛰실 거예요.
나는 당신만 보고 있으며
이 관계에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한데
대체 무슨 말이냐고 말이지요.
친구는 친구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애인 분이 쥰 님에게
네 마음이 내 마음이라고 하셨다면
애인 분 역시 쥰 님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쥰 님이 소중하고
쥰 님과의 관계가 귀한
그런 애인 분 마음 말입니다.
애인 분이 쥰 님과의 관계에 충실하고
쥰 님을 대할 때 충분히 따뜻하고 정성스럽다면
쥰 님이 달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생각합니다.
저는 쥰 님이 애인 분과의 관계를 고민하실 때
애인 분과 애인 분 친구들의 관계를
일일이 신경을 쓰시기 보다는
오히려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애인이 나에게 소홀한가 열심인가
무심하기 짝이없나 내가 애정과 관심을 느끼도록 해 주는가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진심으로 반응해 주는가 나를 무시하는가
등과 같은 두 분 관계 그 자체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아무쪼록
쥰 님과 애인 분이
서로 좋아하고 아끼는 만큼
교제 관계를 잘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 말씀 전하면서
상담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걸 걸고 하는 사랑,
인생을 다 바쳐 내 모든 걸 투자하는 사랑,
나쁘지 않습니다. 로맨틱하고 멋져요.
그렇지만
사랑만이 삶이라고는 믿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관계를 위해 무얼 하든
상대를 ‘위한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라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내가 희생하고 있다, 는 느낌이 들면 거기서 멈추세요.
그런 느낌은 결국 상대를 원망하는 데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열정적인 연애란 이따금씩
내 삶의 페이스를 놓치게 하기 쉽습니다, 쥰 님.
상담원은 쥰 님이 삶 속에
사랑 외의 여분 에너지를 가지고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놓치지 않고 가져가셨으면 좋겠어요.
사랑과 관계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삶은
사랑과 관계의 양상이 달라짐에 따라
너무도 극심하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생활을 잘 조율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교제해 나가시는 중에
또 나누고 싶은 고민이 생기거든
언제라도 다시 이곳 게시판 찾아
글 남겨 주세요.
살펴 읽고 열심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상담원이었습니다.
201311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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