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님, 질문에 답변 드립니다.

 

고요 님, 상담원입니다.

질문을 남기신 뒤로 거의 이주 가량 시간이 흘렀지요.

답변을 너무 오래 기다리시도록 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많이 늦게나마 열심히 정성껏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동성애가 과연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물으셨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누구도 결정적인 답을 내 놓지 못하였습니다.

과학, 의학, 사회학, 신학…등의 분과 학문 중 어떤 체제도

그리고 그 어떤 개인 연구자, 활동가, 종교인도 해내지 못한 작업입니다.

 

선천적이라는 주장이나 후천적이라는 주장 모두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무수한 반례와 반증들로 

그 설득력을 매우 쉽게 잃고 맙니다.

 

동성애자 당사자들이

자기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방식도

개인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예를 들어

난 타고 태어난 게 분명하다는 사람이 있는 한편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한참 있다가 

굉장히 오랜 시간을 거쳐 차츰 

정체화 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의지의 개입도 없었지만

그냥 어느새 동성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성애자임을 알았다는 사람도 있는 한편

스스로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길 원했고,

동성과의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삶을 살길 바라서

동성애자로 살고자 했다는 사람,

즉, 본인의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변이 상당히 자유롭게 동성 교제를 용인하는 편이라

그 분위기에 아무래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사람도 있고

주변에 동성애자의 ㄷ자도 티나는 사람이 없었으며 

나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인 성장기를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동성애자인 걸 보면

환경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하든

다들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탐색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궁리하는 과정을 거치며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빚어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선천적인 것이든 후천적인 것이든 그 모든 것이든 상관없이

각자가 자기 자신이 느끼는 바, 자기 자신이 원하는 바,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바를

찾아내고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누구든 거친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마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는

어떤 원인, 어떤 영향도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도)

동성애자 정체성에 결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 줍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변수를 가지고 있고

그런만큼 모든 사람의 경험을 관통하는 

동성애의 원인 같은 걸 찾기란 

몹시 어려울 뿐더러 굉장히 무의미하다는 것이지요.

 

또한 

동성애 자체가 비정상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며

죄도 악도 병도 아니라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를 따지는 일이란 

더더욱 무의미할 터입니다.

 

상담원은 그래서

고요 님의 첫번째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드리기 보다는

질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자 제안하고 싶습니다.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가 중요한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물은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싶습니다.

안 중요하다, 고 말이지요.

 

고요 님의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한 데 아울러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면

동성애는 전혀, 절대로 고쳐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쳐야 할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관념입니다.

그러한 태도와 관념이 차별적인 사회제도를 재생산하고

그렇게 재생산된 차별적 제도가 

또 그와 같은 태도와 관념을 다집니다.

그 악순환을 끊어내야 합니다.

 

고요 님은 동성애자로서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신 상태이신 거죠?

“저는 제 스스로가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하는 말씀이

상담원의 마음에 무척 크고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고요 님이 그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본인 마음에 드는 본인 모습 그대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게 좋은 겁니다.

 

동성애를 고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말씀드리면

성정체성이란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이성애자가 양성애자로,

양성애자가 동성애자로,

양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동성애자가 양성애자로,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눈깜짝할 사이 간단히 일어나는 변화는 아닙니다.

저마다 어떤 계기를 거쳐 자기 자신을

다시 탐색하는 과정을 통과하게 되죠.

그 과정, 그 궤적을 토대로 재정체화를 하는 겁니다.

이 과정은 짧게는 수 주, 길게는 수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어떤 방향으로의 변화라도 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꼭 이 세 가지 정체성 중 어느 하나로

특정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정체성의 유동성, 변화 가능성이

동성애는 “치료 가능하다”라는 논리에 악용되는 일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동성애, 양성애, 이성애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유일하게 정상이거나

무엇이 무엇보다 조금 낫거나 한 게 아니므로

무엇으로부터 무엇으로 변하는 건 치료고

무엇으로부터 무엇으로 변하는 건 병이고

그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린 말씀들이

고요 님이 던지신 질문들을 스스로 해결하시는 데에 

유용한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요 님이 받고 계시다는 개인 상담에서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나

새로운 고민이 생기고 궁금한 게 떠오르거든

언제건 다시 이곳 상담게시판 찾아 주세요.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하시는 모습에서

자존감과 자긍심, 그리고 무한한 용기를 느낍니다.

고요 님 아주 멋지십니다.

 

그럼 오늘 상담은 이것으로 매듭 짓겠습니다.

나중에 또 찾아 오시면 반갑게 인사드리고 고민 나눌게요.

 

상담원이었습니다. 

 

201311H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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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 2

댓글 2개

고요님의 코멘트

고요
멋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용감하고 멋있게 살겠습니다. 상담은 아니지만, 재정체화에 대한 말씀을 듣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짝사랑이 생각났습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흑과 백의 그라데이션 위의 한 점에 서있을 뿐이라고. 성적지향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상담소님의 코멘트

상담소
그라데이션 위의 한 점이라는 말, 인간을, 개인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고 저마다의 고유한 위치를 고스란히 인정하며 살피게 해 주는 훌륭한 표현 같습니다. 맞습니다. 성적지향도 실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게 아닐까 합니다. 남겨 주신 감사 인사에 힘이 납니다. 저도 감사 드립니다.

한 가지 당부를 드리고 댓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용감하고 멋있게 살기, 좋습니다.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런데 누구든 살다보면 우울하고 힘들고 벅차고 쓸쓸한 경험 언제라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애써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할 테다, 멋져야 한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오히려 스스로에게 큰 부담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니 혹여 지치고 힘들 때면 지쳐 하고 힘들어 하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살펴 주세요. 억지로 무조건 씩씩하려고만 하시지 마시고요. 아플 때는 아픈 구석을 고스란히 들여다 보는 것, 그게 용감하고 멋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인사글 남겨 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오늘은 이렇게 간략히 줄이겠습니다.
상담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