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님,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립니다.

고요님, 상담소입니다.
남겨주신 글 잘 읽어보았어요.
그런데 답변이 많이 늦었지요,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어요.

글에서 고요님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장애인지 아닌지 궁금하다고 적어주셨어요.
고요님은 그것이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퀴어 도서를 읽다가 그것이 장애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을
몇 번 보게 되었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하셨네요.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이 되는
미국정신의학회(APA)의 질병분류(DSM)에
‘태어날 때 부여된 성에 불편감을 경험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성별 불편감’(Gender dysphoria)이 등재되어 있는 것이
현재로서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 자체로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장애임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다른 의료적 상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정신질환의 경우
어떤 상태가 장애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무엇이 정신질환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에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정상’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일 것’
이라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런데 무엇이 정상이고 정상이지 않은가에 대한 판단은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나 사회 구성원 등 많은 요인들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고 변화하게 된답니다.
한마디로 무엇이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을 뿐더러 많은 경우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그 기준이 결정되기도 하고 사회가 변화해가며
그 기준도 함께 변화하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DSM에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정말 장애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비슷하게 동성애의 경우에도 1970년대 전에는
정신질환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점차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합의가 이루어지자
1973년에 DSM에서 동성애 항목이 삭제되기도 했지요.
트랜스젠더 정체성 역시 아주 많은 사람들이 DSM에서
삭제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항목이랍니다.
특히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이
남성, 여성으로 이분된 성별 체계를 지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그 외의 성별을 병리화하고
트랜스젠더 개인들을 낙인 찍는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삭제를 주장하고 있지요.

삭제하는 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 중이지만
그간 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DSM-IV 까지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성주체성장애’(GID: Gender Identity Disorder)로
표현되어 ‘장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DSM-V에서는 ‘성별 불편감’(Gender dysphoria)이라는
보다 더 중립적인 명칭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사라졌듯
트랜스젠더 정체성도 더 이상 정신질환으로
불리지 않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리하자면,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지칭하는 상태가
가장 널리 쓰이는 정신질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장애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초에 무엇을 장애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기준 자체가
사람들의 편견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점차 그 명칭에서 편견을 없애는 쪽으로,
그리고 더해 목록에서 그것을 삭제해가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마냥 쉬울 것이라고는 예측할 수 없겠지만요.

고요님이 접하신 책들에서도 어쩌면 현재로서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DSM에 포함되어 있기에
그 사실을 그대로 적어두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고요님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을 바꾸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상담원도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장애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관련 책들도 읽어보시고 이렇게 상담소에 글도 남겨주시는 것을 보니
어쩌면 고요님에게 중요한 주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에는 적어주지 않으셨지만 관련해서 더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다시 상담소에 글을 남겨주세요.
그럼, 오늘 상담은 여기에서 마칠게요.

상담소 드림.


J_098_07_02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