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닠 님, 답변을 드립니다.

 

김닠 , 상담원이어요.

답변이 너무 늦었지요?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간 혼자서 감당해 오셨을 고민이 무겁고 막막하게 다가와요.

어렵게 몇 자 남기시기까지 얼마나 애써 용기를 길어올리셨을까 싶고요.

아직 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희망이 있다면 붙잡고 싶다는 마음을

김닠 님 사연에서 절절히 느낍니다.

 

더이상 외롭지 않으시도록

상담원이 같이 이야기 나눌게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길을 찾아

의연히 짚어 나가시도록

길잡이가 되어 드릴게요.

 

무엇보다도 말이지요,

본인이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어떠한 부끄러움도 검열도 없이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시라고 말씀부터

힘주어 드리고 싶어요.

 

이미 충분히 스스로를 관찰해 오셨어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바라고 누구에게 끌리는지

깊이 이해하게 되셨고요.

 

끝없는 자기 탐색으로

직접 도달한 결론인 만큼

소중히 여겨 주셔요. 

그러셔도 괜찮아요.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언지

자기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그걸 도무지 모르겠어서

답답한 사람이 많아요.

 

그런 경우 

자기 자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작업부터

진지하게 해 보아야 하지요.

 

그런데 김닠 님은 그 단계를 벌써 거친 셈이잖아요.

이미 자아 탐색의 굵직한 단계를 하나 넘기신 거랄까요.

얼마나 좋아요.

얼마나 근사해요.

 

여자한테 끌리는 마음을 부정하거나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억누르거나

마음 가는 여자와 인연이 닿아 사귀는 미래를 지레 포기하거나

그러지 마셔요.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그러지 않는 편이 김닠 님에게 훨씬 더 좋아요.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보살피는 마음,

거기서부터 현재와 미래를 구상하셔요.

그래도 돼요.

그게 김닠 님에게 한결 좋은 길이어요. 

 

여자에게 끌리는 경험을 접어 두고

일부러 굳이 남자를 만나려 애쓰지는 마시자고

단단히 당부드리고 싶어요.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거

그거 정말 힘든 일이니까요.

그러지 마시자고 말리고 싶어요.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로서 살아가기,

어떤 여자와 사랑하게 되어 깊은 관계를 시작하기,

그런 나 자신과 내 소중한 사람을 지켜나가기,

이게 쉽지만은 않은 거는 사실이어요.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끌림과 관계의 한 형태로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는 해도

이성애만을 바르고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형태로 보는 통념이

여전히 팽배하니까요.

 

사람들의 인식도 인식이고

차별을 막아주고 생활을 받쳐주는

제도나 법률 또한 턱없이 부족하지요.

 

동성애자 당사자가 

자기 부정 없이 안심하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녹록치 않은 게 맞아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로서의 자기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려는 시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간답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지역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고 어떻게 운신할지

비슷한 경험을 지닌 이들끼리

서로 지혜를 나누고 요령을 익히면서

그렇게 나아가고 있지요.

 

동성애자를 비롯한 다양한 성소수자와 교류하면서

일반 사회가 제공해주지 못하는

사회적 지지망을 경험하고,

일상에서 부대끼는 고민을 공유하며

성소수자로, 퀴어로 이 세상을 헤쳐갈 역량을

길러나간달까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우리가 틀린 게 아니라 

우리를 냉대하고 혐오하는 세상이 비틀린 것임을 알기에,

외로운 시간을 통과할 수 있고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울 수 있고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고 지켜낼 용기를 낼 수 있어요.

 

내가 아는 나,

내가 원하는 나로

미래의 시간 속으로 움직여 나갈

자신감을 채울 수 있어요.

 

그러니 김닠 님도

동성애자를 비롯한 다른 성소수자와

두루 알아 나가시기를 권해요.

 

성소수자들이 퀴어들이 어디서 무얼하며 어떻게 살아가나

다양한 경로로 자주 접하며

김닠 님 일상을

관련 내용으로 좀더 풍성하게

채워나가시기를 권해요.

 

우선

상담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즐겨찾기 (http://lsangdam.org/link) 통해서

여러 성소수자 관련 단체 누리집으로 건너가

자료도 얻고 행사 정보도 얻으셔요.

 

트위터(https://twitter.com/)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다음(http://www.daum.net/)이나 

네이버(https://www.naver.com/) 같은 포털,

유튜브(https://www.youtube.com/) 등의 동영상 사이트 같은 데서도

퀴어, 성소수자, 동성애, 레즈비언, 여성이반 등의 열쇠말로

이리저리 검색해 보시고요.

 

연애를 목적으로 한 만남을 원하신다면

레즈비언 데이팅 어플리케이션도 있으니,

그 또한 찾아 보시기를 권해드려요.

 

하나하나 살피다보면

또 거기서 건너건너 얻게 되는

새로운 정보가 있답니다.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와 퀴어가 

온/오프라인 세상에서

웅성웅성 활발하게 교류하고 활동하는지 아시면

놀라실 거예요.

 

마침 오는 7/15(토)에는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려요. (프라이드 퍼레이드=자긍심 행진) 

어디에 거주하고 계시든 이날 이동이 가능하시면

꼭 참석해 보시면 좋겠어요. 

 

수많은 성소수자 당사자와 지지자, 그리고

수많은 단체들이 한 데 어울려

수많은 이야기와 정보와 자료를 나누는

귀한 기회여요.

 

아래 주소를 누르면 나오는 안내 사항을 살펴 보시고

시간 내어 꼭 다녀오시면 좋겠어요. 진짜진짜요.

 

퀴어문화축제: http://www.kqcf.org/

 

혼자서 가더라도 구경할 게 많아

전혀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을 거예요.

방문하는 부스마다 지킴이들이 반갑게 맞이해 드릴테니

쑥쓰럽더라도 이곳저곳 들러 보셔요.

 

성소수자와 지지자의 당당하고 밝은 얼굴을 잔뜩 보시고 나면

다 접어 두고 남자를 만나며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

쑥 들어갈지도 몰라요.

 

나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

인연을 기다리는 여유와

인연을 찾아나서는 용기

둘 다 가져 보자,

이런 패기도 생길 거고요.

 

어디서 어떻게 여자를 만나야 하나,

일반 사회에서도 인연을 만나는 게 가능한가,

지금으로서는 영 막막하기만 할 수도 있는데요.

 

마음에 드는 사람은

그냥 일상 생활에서든

성소수자-퀴어 커뮤니티에서든

나타날 때에 나타나기 마련이랍니다.

 

그러니

누군가 내 마음에 훌쩍 들어왔을 때

그 인연을 잘 붙잡아 보자는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보셔요.

 

그리고 인연이란

꼭 둘 다 레즈비언일 때만

성립되는 건 아니어서요.

 

둘 다 

성정체성 고민 

전혀 해 본 적 없는데

서로를 좋아하게 되면서

교제와 더불어

정체성 탐색까지 새로이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로부터 고백을 받고

어떻게 반응할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을 새삼 살펴보게 되는 사람도 있어요.

 

한편,

서로 레즈비언이라는 걸 명확히 알지만

별로 타입이 아니라서

한쪽이 고백을 한들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당연하게도) 많지요.

 

그러니

누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좋아하는 마음을 키울지 말지 정하나 하는 고민이나,

저 사람이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고백을 할지 말지 어떻게 결정하나 하는 고민에 

너무 눌리지는 않으시면 좋겠어요.

 

일단 누가 좋아지면

그 감정에서부터

이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나가기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서로에게 끌려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보고 교제에 이르는 과정은

여자 남자가 서로 좋아해서 연인이 되기에 이르는 과정과

근본적으로는 전혀 다르지 않답니다.

 

그런데 또 인연이 나타나기를

누군가가 내 삶 속에 뛰어들기를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건

성격에 맞지 않는다 싶으시면

여러 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마음 맞는 매력적인 상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 보셔도 좋겠어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다보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기회도

많아질 테니까요.

 

김닠 님,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로 살아가는 삶이

아무리 평탄치 않고 때때로 고단할지라도,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에 공들이면서 부대끼는 것보다는

백배천배 좋다는 사실을

마음에 잘 간직해 주셔요.

똑같이 힘들다면
내가 나를 부정하지 않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힘든 게
억지로 다른 사람인 것처럼 사느라 힘든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거 아니겠느냐고
주문을 외우듯 생각해 주셔요.

 

앞으로 만들어 나갈 성소수자 친구들 퀴어 지인들이

김닠 님이 겪을 마음의 고비마다 힘이 되어 줄 거고,

언제라도 이곳 다시 와서 사연 남겨 놓으시면

그때마다 상담원도 김닠 님 고민

속속들이 나눠드릴 거니까요.

 

든든하게 생각하고

믿고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셔요.

 

이제 우리 말문을 텄으니

궁금한 거

답답한 거 있으면

혼자 붙들고 씨름하지 마시고

꼭 다시 오셔야 해요?

 

응원하는 마음으로

안부를 신경쓰며

그렇게 여기에 있을게요.

 

상담원이었습니다.

 

20170707H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