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대유감님, 상담소에요. 어머니께서 시대유감님과 애인분께 상처로 남을 언행을 하셨네요. 집에 찾아와 애인분께 심한 말을 내뱉고 따귀를 때렸고, 이후에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말라며 협박을 하셨다고요. 님은 어머니로부터 도망쳤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애인과 헤어지게 되었고, 어머니에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마음이 많이 아프고 괴로우시겠어요.

시대유감님의 심정을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요, 상황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현재 님께서 무척 힘들어 하실 것이 짐작이 되어요. 그런 님의 마음에 공감하며, 상담원인 제 마음도 몹시 아프고 속이 상합니다. 시대유감님께서 현재 거처를 어떻게 하고 계신 건지도 걱정이 되고요.

예전에도 가출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때는 어떤 이유로 가출을 하셨던 건지 모르지만, 이제까지 님은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참 여러 일들을 겪고 많은 문제들을 풀고 견디며 살아온 것으로 여겨져요. 그러한 과정들을 겪으며 어머니와의 관계가 흐트러졌다가 다시 세워지곤 했을 테지요. 또한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있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기에, 두 분 사이에는 분명 뭐라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감정들이 존재할 것 같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딸들은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밉고 싫은 감정을 가지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어머니로부터 인정받고 이해받고, 또 격려받고 싶어하잖아요. 어머니를 향한 양면적인 애증의 감정 때문에 어머니와의 관계는 더욱 풀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레즈비언들에게 있어 어머니와의 관계는 특히 힘이 드는 경우가 많죠. 많은 어머니들이 딸의 정체성을 눈치채게 되지만,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오히려 모르는 척 하면서 은근히 남자를 만날 것을 강요하기도 하고, 대놓고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면서 딸을 비난하기도 해요. 어떤 경우에는 감금을 하고 정신과 치료나 결혼을 강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담소에도, 정체성을 둘러싼 가족간의 갈등 문제로 상담을 요청해오시는 분들이 참 많이 있답니다.

어머니의 마음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어머니도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모르기는 해도 님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기대를 하고 계실 거예요. 그래서 더욱 심하게 님의 생활에 간섭을 하시는 걸 수도 있겠고요. 어머니는 아마 딸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당신 스스로에게조차 용납이 안 되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겠죠. 동성애혐오가 큰 만큼이나, 딸을 잘못 키웠다는 스스로에 대한 책망도 클 수 있고요. 동성애에 대해 잘 몰라 그것이 끔찍하기만 하고, 그런 길을 당신 딸이 걷게 될 때 불행해질 게 분명하다고 믿으니까 아마 어머니도 무척 고통스러우실 거예요.

시대유감님. 님이 현재 느끼고 계신, 어머니가 원망스럽고 밉다는 감정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에요. 상담원도 님과 같은 상황에 있다면 당연히 그러한 감정이 들 것 같아요. 어머니가 시대유감님과 애인분께 한 행동은 무척이나 잘못된 것이니 말이에요. 그러니 어머니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감추거나 바꾸기 위해 억지로 노력할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대로 지켜봐주는 것이 낫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어머니도 많이 힘드실 거라는 점을 님이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나를 비난하고 욕했다는 이유로 쉽게 끊어버릴 수는 없는 게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보니까,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셨으면 하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어머니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님의 마음도 불행해질 수 있으니, 어디까지나 시대유감님의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결코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님이 이상하고 잘못된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에요. 제일 중요하게는, 먼저 님의 마음을 추스리고 보듬어주는 일이 필요하되, 어머니와의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드리고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더 고민해보셨으면 해요. 물론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고 관계가 회복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특히 현재 어머니는 매우 강렬하게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보이며, 시대유감님과 애인분의 관계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이별을 강요하고 계시네요. 이런 상황에서 시대유감님의 정체성을 받아들여달라고 어머니를 설득시키기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애인분에게 협박이 계속 되고 있고, 두분이 다시 만나게 될 경우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거나 더 큰 폭력이 있을 위험성도 커보이네요. 아무리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어머니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남을 강요하고 협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공포를 조장한다는 점에 있어서 분명 잘못이에요.

대화를 통해서 어머니를 설득시키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재 님은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고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고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겠네요. 혹시 어머니께서 폭력을 행사하실 경우, 만약을 대비해 잊지 말고 진단서를 떼어놓으시는 것이 좋겠어요. 그 점은 애인분께도 꼭 말씀해주시고요. 폭력에 노출되어 위급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주저하지 말고 <여성긴급전화 1366>을 이용하세요. 국번없이 1366을 누르면 된답니다. 이곳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상담 및 피해자의 임시보호, 의료기관 또는 피해자 보호시설로 인도를 맡고 있어요.

시대유감님. 현재 님을 무척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는, 어머니와의 문제 뿐 아니라 애인분과의 관계문제도 있는데요. 어머니와 있었던 일로 무척 힘이 들었는지 님이 싫어졌다고 했고,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애인에게 협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요. 다른 여자를 만나는 그 사람으로 인해 더욱 힘이 들고 멀리 떠난다는 말을 듣고 무척이나 슬펐을 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요.

님. 현재 님은 이별을 받아들이거나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무척 힘겨워하고 계시는데요. 님과 애인분의 행복을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 나을지,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 나을지를, 깊이 생각해보는 일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주변 상황 때문에 두분의 사이를 지속시키는 게 어려워도 서로 함께 하고픈 마음이 강렬하다면, 교제를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 좋을 수 있어요. 관계를 감춰야 할 때는 감출 수 있는 요령도 점차 생길 테고요. 하지만 그분이 정말 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이라면, 혹은 다시 관계를 시작해서 겪게 될 어려움들을 감당하기에 너무 지쳤다면 헤어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님과 그분의 행복을 위해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할런지요. 여러가지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해보시고 또 그분과도 대화를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관계란 혼자서 붙잡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두 분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기에, 그분의 솔직한 심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들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할 것 같네요.

지금 이대로, 두분이 별로 대화를 나눠보지 않고 님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그냥 멀어지게 된다면, 그 이별을 어머니로 인한 강제적인 것으로만 기억하며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지겠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시대유감님의 인생의 열쇠는 님이 쥐고 있는 것이잖아요. 지금 시기가 관계를 다시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버렸다고 볼 수는 없고, 설사 두분의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고 해도 함께 사랑하고 아꼈던 만큼 이별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지금 님께서 해볼 수 있는 고민과 노력을 다한다면 시간이 흐른 후에 되돌아볼 때 후회가 적어지리라고 생각해요. 어떠한 결정을 하든 어머니로 인한 것이 아닌 님 스스로의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다시금 용기를 북돋아 두분이 대화를 나누어보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님. 상담소가 당연히 집에 갈 것을 권할 거라고 하셨는데, 그렇지 않아요. 시대유감님의 선택을 대신해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님의 인생은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나가야 한다는 점이겠지요.

지금 당장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잘 지낼 자신이 없다면, 조금 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나쁘지 않아요. 4개월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수도 있겠지만, 님의 마음을 다잡고 결정을 내리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들 수도 있을 테니까요. 다만 상담원의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계시다고는 하지만 가족의 지원 없이 여자 혼자 살아간다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니, 거처문제 등이 잘 해결되고 있는지가 염려가 되네요.

그리고 시대유감님. 상담소에서 한 가지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그것은 지금 당장은 미쳐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태일 테지만, 그러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주되, 그 감정에만 매달려서 인생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점이에요. 여러 가지로 앞길을 생각하고 계획해나가야 한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동성애자란 이유로 욕하고 멸시를 할 경우에,자기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가치없게 느껴지게 되지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도 무력감에 빠지기 십상이고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욱하는 감정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적어도 시대유감님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주어야 해요. 만일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 한다해도, 나만을 나를 보살펴 주어야 하잖아요. 나를 아껴주고 존중할 수 있는 길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나 혼자 살 길을 찾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담소가 대신 판단해드릴 수는 없는 문제이고 님께서 더 깊이 생각해보시기를 부탁드려요.

우리 레즈비언들의 경우, 자립의 필요성이 매우 크지요. 가족들로부터 경제적인 부분에서 독립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요. 그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공간에서 사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고요. 또한 심리적이고 감정적, 정서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점차 거리를 두면서 독립을 해나가야 해요. 그것이 레즈비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길이니까요. 지금 님은 그러한 독립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토대를 마련해야 할 시기겠지요. 당장의 문제도 당장의 문제지만, 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 말이에요.

상담글을 통해 짐작되는 바로는, 친구분들과 연락을 하고 계신 모양이에요. 친구분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필요할 때 도움을 얻길 바랄게요. 그리고 이후에 상담소로도 소식 들려주시고, 새로운 고민 있다면 상담 또 올려주시고요. 원하실 경우 전화상담이나 면접상담도 가능하니 권해드려요. 상담 전화번호는 02-718-3542이고, 면접상담을 원하실 경우 이 번호로 연락 주신 후에 약속을 정하면 된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 줄 한 줄 글을 남기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상담소의 문을 두드려주신 님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님이 가진 용기가 크기에,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는 좋아질 거라고, 시대유감님께서 현명한 선택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아직 20대 초반이신 것 같으니, 앞으로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겪게 되겠지요. 그런 경험들이 다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님의 삶이 더욱 나아질 것을 믿어요.

이 상담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무엇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는 것, 잊지 마세요. 님의 인생은 님 스스로의 것이며, 어떤 결정이든 자기 자신의 행복과 성장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말이에요.

그럼 님, 이만 상담을 마칠게요.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다시 연락주시고요.

힘내세요!

-2006.01.07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상담내용을 옮기거나 이용하려는 분이 계시다면 사전에 상담소 측에 동의를 구한 다음,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셔야 합니다.>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