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님 상담소에요.
강희님께서는 현재 애인이 있고
스스로를 이반으로서 받아들이신 상황이군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 힘든 일이 생겼나봐요.
특히 어머니가 정체성을 눈치챈 게 아닐까 싶고
어머니와 애인을 향한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고 계시다고요.
그래서 눈물도 많이 흘리게 되고요.
상담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먹먹했을 텐데,
상담소에 방문하여 상황을 잘 설명해주셨네요.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어 기쁘고 반가워요.
요즘의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하셨는데,
어쩌면 지금 답글을 읽고 있을 님의 마음도
먹먹하고 무거울 수 있겠네요.
상담원도 한 명의 레즈비언으로서
님의 괴로움이 잘 와 닿아
같이 속이 상하고 마음에 아프네요.
님께 위로의 말씀부터 전해드리고 싶어요.
강희님, 앞으로 더 나아질 거예요.
마음을 추스리고 희망을 품고
같이 대화 나눠 보기로 해요.
그럼 상담을 시작할게요.
먼저 현재 상황으로서는
어머니께서 두 분의 관계를 알고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르는 거군요.
강희님께서 남겨주신 글로 미루어 짐작하기로는
동생분과는 두 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던 것 같은데요,
혹시 동생이 어머니께 말을 전한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하지만 동생을 통해 정확히 확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어머니께서 두 분의 교제사실을 알고 있을 확률과
그렇지 않을 확률은 거의 반반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요 강희님.
사실 제가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어머니께서 두 분의 교제사실을 아냐 모르냐의 문제보다는,
강희님께서 어머니와 애인 모두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이 상황에 매우 곤란해하고 계시다는 점이에요.
님께서 남겨주신 글을 보면,
어머니께서 두 분의 교제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식으로 행동을 하거나
두 분에 대해 언급을 했던 것은 아닌 걸로 여겨져요.
님께서 두려움을 느끼고 계시는 건
어머니가 애매한 눈빛으로 님을 쳐다보기도 하고
어머니 사이에서 대화가 줄었다는 점 때문이지요.
그렇게 님께서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에요.
애인과의 관계를 밝힐 수 없어 마음 고생을 많이 하다보니
어머니 눈치를 보게 되고,
작은 변화에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어요.
하지만 교제관계를 감춘다고 해서,
그 이유가 결코 동성애 자체가 잘못 되어서는 아니잖아요.
오히려 동성간의 교제관계를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가 잘못된 거죠.
혹시 강희님께서는 그동안 교제사실을 숨겨오며
자주 어머니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셨는지요?
강희님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잘못처럼 여겨진 건 아닌지요?
상담원인 저에게도 자신을 미워하던 때가 있었어요.
내가 전생에 죄를 지어 이렇게 태어난 것만 같고,
아무래도 내가 가는 길은 위험하고 부도덕적인 것만 같았죠.
아무와도 교제를 해보지도 않았고
드러내지 않았기에 누구에게도 대놓고 비난을 듣지 않았음에도,
단지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그랬어요.
하지만 저는 조금씩 알게 되었답니다.
잘못은 레즈비언인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요.
어떤 사랑은 마냥 좋고 고결한 것으로 만들고
어떤 사랑은 무조건 나쁘고 타락한 것으로 만드는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누군가에 대한 이끌림이나 애정,
함께 있고 싶다는 욕구, 그립고 애달픈 마음들은
그 상대가 여성냐, 남자냐를 떠나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잖아요.
동성애는 결코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것이 아니랍니다.
세계 각지에서는 동성애자 권리를 존중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들이 있고,
법이나 제도를 통해 동성애자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죠.
한국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 법을 통해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고
사회에서 이러한 차별을 조장하기에,
레즈비언이며 상담을 하고 있는 저도
여전히 내 안에 동성애자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워낙 이성애만이 옳다고 말하고 있으니,
동성애자라고 해도 이러한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자연스럽게 내면에 갖게 되죠.
그러한 편견을 깨트려나가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켜나가고
긍정하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내 안의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을 거쳐야겠지요.
강희님. 님께서 자신감이 없고 떳떳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강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이유가 님이 이반이라는 사실 때문인지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해보세요.
조급하게 어머니나 애인과의 관계에서의
해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요.
이렇게 마음이 어렵고 슬플 때일수록,
한 발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고
님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행인 것은,
설사 어머니가 정말 두 분의 교제사실을 알고 있는 거라고 해도
강희님과 애인분의 사이를 강제로 갈라놓고
두 분께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만큼 님과 애인분께는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준비해둘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거겠죠.
이미 어머니께서 알고 계실 수도 있고
지금 당장을 모르더라도
앞으로 관계가 원치 않게 발각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때에는 어머니께 뭐라고 설명드리면 좋을지 고민해보셔요.
두분의 관계를 솔직하게 털어놓을지
아니면 속이 상하더라도 거짓말로 둘러댈지 등
여러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이 대해서요.
그 대처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 없고
님과 애인분의 상황에 맞추어서 준비해두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두분이 깊이 대화나누어 보는 것도 꼭 필요하겠네요.
그리고 강희님 스스로
이반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차차 고민해나가는 게 좋겠어요.
레즈비언으로 살아나가다 보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게 될 일이 생길 테니까요.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고,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심정적으로 불안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에요.
물론 그러한 상황들은 부딪혀봐야 아는 경우가 많지만,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받아들이고
그 정체성을 발전시켜나가면서
삶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남아있는 10대 시절동안 부모님과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두분의 교제관계를 먼저 커밍아웃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되도록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 좋을지,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고 살 확률이 훨씬 많은데
내 삶을 어떻게 영위해나갈지 등에 대해서
서서히 고민해나가기를 권해드려요.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강희님의 마음도 더욱 단련이 되고 강해질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강희님. 현재 애인분과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계시다고 했지요.
님께서 무척 괴롭다보니,
애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막막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애인분과 여러 대화를 나누어보고
도움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오해도 생기지 않을 테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관계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또한 주변에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들과도 이야기 나누어본다면 좋겠고요.
다시 상담소를 찾아주셔도 된답니다.
님께서 손을 뻗어오신다면
상담소가 꼭 그 손, 잡아드릴게요.
새로운 고민이 생기거나 궁금한 점 있으면
또 글을 남겨주세요.
강희님, 지금 무척 답답하고 혼란스러울 거라는 점 알아요.
하지만 지금의 경험들도 인생의 한 과정일 거예요.
앞으로도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될 테고요.
상담소에 글을 남겨주신 용기,
어머니나 애인분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랑...
님은 분명 지금의 모습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강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지나가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때마다,
그러한 일들이 강희님을 얼마나 더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줄런지요.
앞으로 어떠한 느낌을 갖고 무엇을 접하게 되든
강희님의 행복만큼 소중한 것은 없으며
스스로를 아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잊지 마세요.
그리고 한 발자국 떨어져 님 스스로를 바라봐주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고민해보며
애인분이나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어보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릴게요.
그럼 강희님, 이만 상담을 마쳐요.
강희님 화이팅!
-2006.1.21.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상담내용을 옮기거나 이용하려는 분이 계시다면 사전에 상담소 측에 동의를 구한 다음,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