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답변 드립니다

님, 상담소입니다.
지난 번 상담이 도움이 되셨다니
기쁘고 다행입니다.

상담원이 지난 번에
그분과의 대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었지요.
그에 대해서 님은
대화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적어주셨네요.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게,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물어보고 듣는다는 게
얼만큼 힘든 일인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상담원도 잘 알고 있답니다.
님의 마음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깊이 동감이 되어요.

특히 그것이 동성의 상대에게 전하는 고백의 말이라면,
그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부터
상대방의 대답을 들은 후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너무나 고민이 많이 들수밖에 없지요.

상담원은 님께 지금 당장
대화를 나눠보셔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랍니다.

다만 님이 오랜 시간 그분을 좋아해오시면서
많은 괴로움과 어려움을 겪었기에,
앞으로 님의 마음이 보다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아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님의 마음을 정리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계속 좋아하는 게 좋을지,
혹은 교제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좋을지 말이에요.

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님의 마음이 좋아질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현재
그분은 님의 마음을 알고 있을 수 있으나
님은 그분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명확히 확인하는 것을 권해드리는 거랍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현실에서 만들어가는 관계란, 상대방의 마음이란,
혼자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서둘러 대화해야 할 필요도,
조급하게 님의 마음을 결정할 필요도 없어요.

특히 님은 그분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님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을 겪고 계신 것 같아요.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만나본 적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다거나
레즈비언임을 긍정하고 죄책감을 갖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함, 용기가 부족한 것 같다고 적어주셨네요.

상담원도 한 명의 레즈비언으로서
님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어요.

그리고 레즈비언임을 당당히 커밍아웃하지 못한다고 해서,
레즈비언인 님 자신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는다고 해서,
님이 나쁘거나 못난 것이 아님을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답니다.

커밍아웃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안전하지 못한 환경,
님 자신으로 하여금 자책감이 들게 만드는 이 사회가
나쁘고 이상한 거죠.

레즈비언임이 속상하고 불안한 것은
결코 님의 잘못이 아니지만요.
님이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님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레즈비언인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성애 중심적이고 동성애 차별적인 우리 사회에서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남들이 다 뭐라고 해도
나만큼은 스스로 아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지식,
주변의 믿음이나 지원은
님이 정체성을 긍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동성애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찾아 보고,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일단은 온라인 상으로라도
조금씩 활동을 해나가시기를 권해 드려요.
내가 이상하고 나쁜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나눌 사람들이 있다면
님께 큰 위로와 지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상담소 역시 언제나 열려 있으니
도움이 필요할 때는 주저말고 찾아주세요.
님이 내민 손을, 꼭 잡아 드릴게요.

물론 자신을 어느 정도 긍정하게 되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는 남을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현재 님께서 고민하고 계신
어머니와의 문제가 그렇겠죠.

상담원은 님께,
님이 레즈비언인 것은
어머니께 불효가 아님을 말씀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가 만약 님이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그런 길만이 여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고 계시기 때문일 거예요.

결혼을 해서 불행하는 사는 것보다
결혼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드리는 게,
어쩌면 효도일 수 있답니다.
가장 큰 효도는 님 스스로 행복해지는 거라는 점이에요.

굳이 효도냐 아니냐를 떠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님 자신의 평안과 행복이죠.
부모님이 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이전 상담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동성애는 질병도 부도덕도 비정상도 아니에요.
이끌리는 상대의 성별이 동성이라는 점에서
이성애와 차이가 날 뿐,
내 안에서 피어난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랍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그 상대가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떠나
모두 소중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감정이지요.

그 점을 잊지 말고
님이 오랜 세월 가져오셨던
죄책감, 자신에 대한 미움, 고립감을
조금씩 조금씩 줄여나가셨으면 좋겠어요.

상담원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고민이 있으시면 또 글 남겨주세요.
이만 상담을 마칩니다.

힘내세요!

-지난 번에는 '도와주세요...'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리셨지요?
이번에는 '포이즌..'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려주셨네요.
되도록 같은 이름으로 글을 올려주시는 편이,
상담원이 후속으로 이어서 상담하는 데 도움이 된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200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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