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님, 상담소입니다.
님이 올려주신 글을 꼼꼼하게 잘 읽어보았어요.
님의 글 중반까지는
자신이 여성이면서 여성에게 성적으로 이끌리게 되어
정체성을 탐색하게 된 내용인데요.
후반에 가면 '아무리 동성애도 괜찮아 이야기 해도
정말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남자를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까봐
무섭습니다'라고 적어주셔서,
님이 남성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님이 여성인지 남성인지가
상담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데요.
이것이 확인되지 않아서
상담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만약 님이 남성인데
여성을 향한 성 욕구 때문에 고민이 드는 거라면
다른 성 상담소를 찾아서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혹은 님이 남성인데
양성애자인지 정체성이 고민되는 것이라면
우리 상담소의 링크란을 참고하시어
게이 상담소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고요.
그럼 일단은 님이 여성이라고 간주하고
상담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님께서는 음란물을 접하게 되며
여성에게 성적인 이끌림을 갖게 되셨다고 하셨지요.
물론 누구나 다양한 성적인 판타지가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성적인 판타지를 갖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답니다.
순결을 교육하고
이성애 부부의 침실에서의 성관계만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우리 사회에서,
성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기란 어려울 수 있어요.
성은 억압해야 할 것으로 이해하고
성욕을 갖는다면 순결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등
왜곡된 성 인식을 갖기 쉽지요.
님께서도 성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고 말씀해주셨네요.
하지만 님.
성에 대한 욕구를 갖는 것이나 판타지를 갖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랍니다.
성 욕구가 있다고 해서 자신을 비하하거나
스스로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이처럼 성적인 판타지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상담원은
음란물을 매개로 성적인 판타지를 키우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음란물에는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방식이
그대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님께서는 여성의 성기를 가리켜
'조가비'라는 말을 쓰셨는데요.
그러한 말들도 주로 음란물에서 많이 나오죠.
그것은 여성의 몸을 곧바로 자연, 생물로 연결시키고
여성을 열등한 것으로 비하하며 쓰이는 단어에요.
이런 표현은 앞으로 쓰지 않기를 권해 드려요.
이렇듯 음란물에는
여성의 몸과 성을 존중하는 않고 비하하는 태도가 그려지고
여성에게 폭력적이고 불쾌한 방식의 성관계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음란물을 매개로
성관계에 대한 판타지를 키우다 보면,
남성 중심적인 시선과 방식에 익숙해지겠지요.
결국 다른 여성들을 볼 때 뿐만 아니라
님 자신을 바라볼 때도
성적으로만 가치를 매기게 되고
비하하게 되면서
점점 고통스러워질 수 있어요.
많은 남성들이 음란물의 영향을 받아
자극적이고 일방적인 성관계에 대한 판타지를 키워요.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방도가 없자,
성폭력이나 성매매를 통해
자신의 판타지를 강제하고 있는 현실이에요.
음란물을 매개로 성적인 판타지를 키우는 것은
아주 위험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말씀드려요.
또한 님.
음란물이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만큼,
음란물을 보고 느끼는 감상이
상담소 게시판에 공개글로 올라왔을 때,
이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불쾌해질 수 있어요.
상담소는 고민을 안고 계신 분들이
보다 쉽게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함께 찾아 보는 곳이랍니다.
상담소가 욕구의 배출구나 일상을 나누는 곳일 수는 없어요.
이 점을 명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님에게 음란물에 대해 적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님께서는 음란물을 통해
여성의 몸과 여성과의 성관계에 관심이 생겼고,
그것이 님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고 계시니까요.
하지만 님.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게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것만으로
님이 레즈비언이라거나 양성애자라고 결정짓기는 어려워요.
우리 사회는 매우 이성애자 중심적이지만,
이성애자들도 동성인 상대에 대해서
성적인 이끌림을 느낄 수 있어요.
성적인 이끌림뿐만 아니라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이끌림을 느낄 수도 있지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끌림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요.
한 번의 이끌림이나 호기심만으로
정체성을 판단하기는 어렵지요.
시간을 가지고 님이 동성에게 느끼는 이끌림이
일시적인 것이고 단지 호기심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동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길 원하며
동성애자로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ing님.
동성애자는 동성에게
성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사람으로 알려져있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편견이고 잘못된 정보랍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성적인 이끌림만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지요.
저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
저 사람이 누구와 만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보고 싶고 그립다, 등등의 여러 마음이
복합적으로 드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랍니다.
동성애자는
사랑하는 상대가 동성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인해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억압당한다는 점에서,
이성애자와 차이가 날 뿐이에요.
님. 상담원이 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누구든 동성에게 이끌림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단지 성적인 이끌림만으로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어렵겠지요.
님이 갖게 된 동성을 향한 이끌림은 존중하되,
그 감정이 일시적이거나 호기심인 것은 아닌지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서는
님이 동성을 향한 이끌림을
님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님은 어떤 성별의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한고 즐거운지,
앞으로 어떠한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등등을 고려해
찬찬히 탐색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ing님.
상담원의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만약 이번 상담으로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있거나
또 고민이 생기신다면 상담소를 찾아주세요.
상담소는 언제나 열려 있답니다.
다음 번 상담 때 성별을 명시해주신다면,
상담원이 더욱 구체적으로 답변을 달 수 있겠고요.
그럼 이만 상담을 마칩니다.
건강하세요!
-200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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