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님, 최근에 다시 두어 차례 상담 요청 해 주신 그 R님 맞으시죠?
한 학년 위의 선배 좋아하신다는 말씀과 기타 정황상
같은 R님이 맞으신 것 같아요.
그 R님이라고 생각하고 상담할게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상담 들어가기 전에
날짜가 하루 지나서 답변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려요.
(그런데 혹시 '비밀글' 체크 하시는 걸 잊으신 건가요?
그냥 관계없이 공개로 올리신 건가요..
본인이 상관없으시면 괜찮지만
깜박하고 공개로 올리신 걸까봐 조금 걱정이 됩니다.)
늘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상태로
내내 살아 오셨다고 적어주셨어요, R님.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지 않으면
그때까지 좋아했던 사람을 잊기가 쉽지 않아
결국 연달아 누군가를 좋아하는 식으로
옛사랑을 잊어가고, 또 잊어가고
그렇게 지내오셨는가 봅니다.
상담원은요,
R님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타인에게 마음을 쏟을 수 있다는 것,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란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가지
감각의 파고들을 넘나들겠다고
의식중에건 무의식중에건
마음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실로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때문에 자꾸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건
그만큼 나에게 에너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누군가에게 감정을 실어 보낼 에너지, 그리고
그런 에너지를 싣고 가는 나 자신을 감당해 낼 에너지, 말이어요.
그래서 R님이 지금 또 새로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도
상담원에게는 반갑게 다가 옵니다.
최근까지 R님을 괴롭혀 온 아픈 사랑에 대해 전해 들으며
상담원도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여전히 마음 한 켠이 허허로우시겠지만)
그럼에도 어느새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쏟게 되셨네요.
그 감정 그 자체 그대로 격려하고 싶어요.
보기 좋습니다, R님.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R님이 좋아하는 선배분이
이반이 아닌 것 같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서로 더할나위없이 친한 선후배로 지내게 된다해도
오히려 R님은 더 어쩔 바 모르고 속상해지기 쉬운
그런 상황인 것이네요.
선배언니가 잘 해주면 잘 해줄수록
따뜻한 스킨십을 나누게 되면 나누게 될수록
R님 쪽에서 느낄 마음의 갈등이
점점 더 증폭될 수 있으니까요.
R님 마음과 같은 마음은 아니리라 짐작되는 선배 언니의
스킨십이나 웃음이나 말들에
벌써 상처를 받고 계신데
두 분이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마음 고생이 더 심해지지는 않을는지
걱정이 됩니다.
같은 이반끼리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고백이라는 걸 하기란 늘 쉽지 않게 마련인데
상대방이 이반이 아닐 거란 예상이 되는 상황이면
고백을 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가 되어 버리지요,
우리들 현실에서는요.
지금 R님이 얼마나 먹먹할지
그 맘 속속들이 다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깊이,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불과 얼마전까지 R님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했던
고등학교 때의 사랑도
두 분이 나눈 감정을 상대방이
부정함으로써 R님을 더욱 슬프게 했다는 걸
상담원이 알고 있다 보니
지금 R님이 또 그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되지는 않으실까
많이 걱정이 되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너무나 두근거리고 예쁜 일이라,
그렇게 좋아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고 신나면 좋을 텐데, 그러기보다는
안타깝고, 슬프고, 상처입고 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 아프게 다가와요.
R님,
그 언니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R님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을지,
그 언니와의 관계 속에서
R님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그걸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또 어떤 마음의 준비들이 필요한지,
천천히, 천천히 정리해 보시면 어떨까요?
계속 지금처럼 친하게 지낸다면
그 속에서 R님이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 나갈지,
고백을 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준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픔을 키우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고자 한다면 그 땐 또 어찌 하면 좋을지,
등의 다양한 갈래의 선택지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각각의 선택지를 둘러싼 고민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 보는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정답 같은 건 있기 어렵겠지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뒤따르는 상황들을 용감하게 헤쳐나가는 것,
그것이 밑바탕을 이룬다면,
튼튼히 버텨내실 수 있으리라고,
상담원은 믿어요.
고민해 나가는 과정에서
또 이야기 나누고 싶으면
상담소 다시 찾아 주세요.
오늘은 이만 상담을 마칠게요.
R님,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