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에서 답변 드려요.

좋아하던 사람과 사귀게 되었는데
자주 못 보게 되면서 허전함을 많이 느끼고 계신가 봐요.

함께 있어서 너무 좋고, 그래서 서로 함께하는 앞날을 상상하다가도,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몇 년 뒤에는 '우리도 다른 사람들 처럼 이성과 사랑하며 지내는 것이
맞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마 본인 스스로도, 스스로가 이해 안되는 상황이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갖고 있는 감정과 생각이 너무도 다르니 말이에요.

왜 그럴까요?
몇가지 생각해볼만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우선,
이성애자들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사랑하면서 행복한데도
한편으로는 '내가 이사람이랑 평생 같이 할 수 있을까?' 혹은 '결혼을
꼭 해야 하나?' 하면서 불안한 감정을 가질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님께서도 어느정도 느끼는 바대로,
동성을 사랑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이성애자들이 느끼는 불안함보다는 더 큰 걱정, 고민을 떠안게
만들지 않나 싶네요.

지금 당장의 현실을 생각하면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 편입되지도 않을테고,
가족, 친척, 친구, 동료 들의 반응도 겁이 날 수 있을 거예요.


두번째로,
문제는 이런 현실적인 것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귐' 이나 '관계'라는 것이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줄은 알아도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에 대해서는 경험해보지 않았기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남들처럼 1,2년부터 십여년에 이르기까지
함께 어떤 경험을 할 수 있고, 해야하고, 하고싶은지에 대해서도
그저 막연한 생각만 든다면,
둘이 함께할 먼 날에 대해 계획을 세워보거나
상상하기가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설사, 미래의 일을 충분히 상상하고 계획하는 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서로에 대한 확신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어요.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서로를 믿고, 함께할 확신이 드는 시기는 빨리 찾아오지는 않겠지요.

오히려 섣부르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먼 앞일을 고민하다가는
지레 겁이 날 수도 있을 테고요.


상담원은 아마도 이런 모든 생각의 지점들이 모이고, 꼬여서
님을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아마, 당분간은 그런 마음이 사라지 않을꺼에요. 너무도 당연히
걱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그런 마음을
'이러면 안돼' 하며 없애려거나, 애써 좋은생각만 하려 하지는
않아도 돼요.

다만, 마음을 조금 내버려 두었다 싶다면,
님 스스로 자신감도 얻고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희망도 갖도록 노력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세상엔, 레즈비언이 레즈비언으로 살기 여럽게 만드는
나쁜 이성애자들도 많고, 지독한 편견도 남아있기는 해요.

하지만, 그에 맞서서, 정말이지 당당하고 초연하게 사는
레즈비언커플도 무수히 많아요.

이성애자들의 시선이 불편하다며 레즈비언들과만 교류하며 사는
레즈비언도 많고,

어딜 가든 동성애를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일침을
놓아주며 사는 레즈비언도 많고,

조금씩 조금씩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난 레즈비언으로서,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는게 너무 행복하다"
는 커밍아웃을 하고, 그래서 지지받으며 사는 레즈비언도,

애인과 같이 살기 위해 상담소로 입양이나 외국의 동성결혼에 대해
문의를 하는 레즈비언들도 많아요.

이러한 레즈비언들이라고 걱정, 불안, 고민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고,
여자와 처음 사귀었을 때부터 그렇게 거리낌없기만 하지도 않았겠지요?


님,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맞닥뜨리고 살아야 하는 좋지 않은 상황들이 있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비정상'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수 있어요.

도대체 왜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정상, 혹은 이상한 성향이라고 생각하는지
오히려 반문하는 힘을 갖을 수 있어요. 

세상엔 이성애자가 다수이고, 그들의 삶의 방식이 보편적인 것으로
인정받기에, 아직까지 조금 힘들지만

레즈비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개개인과 여러 성소수자 단체들의
노력으로 상황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님께서 이렇게 상담소에 찾아와 고민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것
만으로도, 상담원은 님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리라 믿어요.
 


성전환수술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해서, 신체적으로도 남자의
모습을 갖추길 원할때 성전환수술을 하게 돼요.

만약 님의 상대방이 이러한 상황이라면 성전환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고 계획도 세워볼 수 있을 거예요. 수술을 하려면 어떠한
과정이 필요한지 트랜스젠더 단체나 병원에 문의해볼 수도 있구요.
다만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꼭 수술을 받아야만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 성별로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만약 여자로서 여자를 사랑하는데, 주변의 시선이나
상대방을 위해
성전환을 하겠다는 것은 또다른 고통일 수 있겠지요.

스스로를 남성으로 인식하지 않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남성으로 변하는 수술을 한다는 것 자체도 고통이고,
그런 경우에는 수술이 불가능할 뿐더러,
수술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수술 자체가 너무 힘든 과정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실제 트랜스젠더들도 수술까지 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이점을 잘 생각해보시고,
앞으로의 고민과 걱정을 차근차근 이겨내셨으면 좋겠네요.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상담소도 언제든 도와드릴께요.

상담소